SF 소설 좋아하시나요? 최근 들어 다양한 SF 소설이 소개되고 점점 더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죠. 그럼에도 SF 소설은 과학을 잘 모르면 이해하기 힘들다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으로 인해 몰입이 어렵다는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오늘 소개할 SF 소설집은 낯선 과학 지식보다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상상에서 시작한 기발한 미래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뿐만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인물들의 비범한 행동에 마음을 빼앗기고 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김원우 작가의 SF 소설집 『좋아하길 잘했어』입니다.
2022년 문윤성SF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을 받으며 데뷔한 김원우 작가의 첫 소설집인 이 책에는 총 세 편의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수록작 <당기는 빛>, <내부 유령>, <좋아하길 잘했어>는 각각 시간 여행과 초능력자, 우주 팽창을 다룹니다. 주요 설정은 다르지만 인물과 메시지 측면에서 작품들을 잇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 번쯤 해봤을
상상에서 나아간 기발한 설정
의식의 시간 여행, <당기는 빛>
각별했던 친구 윤수의 부고를 받고 장례식으로 향하는 길, ‘나’에게 동료이자 천재 과학자 안미래의 안부 전화가 걸려 옵니다. 그가 만든 타임머신의 실험 대상이 된 ‘나’의 뇌에 1년 후의 기억이 계획대로 잘 들어온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아직 실험의 성공도 실패도 확신하지 못한 채 윤수와 함께한 시절을 추억하며 장례식장에 도착한 ‘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맞닥뜨리고, 점점 심해지는 두통에 괴로워합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어? 한 번쯤 생각해 본 질문일 것입니다. 보통 이 질문은 돌아가고 싶은 과거를 묻습니다. 살면서 누구나 후회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겠죠. 소설 속 ‘나’ 역시 돌아가고 싶은 과거를 회상하지만, 작품은 과거보다 다가올 미래에 초점을 맞춥니다. ‘육체의 이동이 아닌 의식의 이동’을 실현하는 타임머신을 설정함으로써 인물이 다른 시공간으로 옮겨가는 전형적인 시간 여행을 벗어납니다. 미래를 현재로 당겨오는 장치 덕분에 자연스레 소설에서 다루는 시간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회상으로 존재하는 과거를 포함해 ‘나’의 현재와 미래가 교차하며 이야기는 마치 퍼즐을 맞추듯 깊은 몰입을 선사합니다.
다른 존재를 위해
움직이는 인물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내부 유령>
신경 과학을 전공한 박사 출신인 ‘나’에게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조직에서 연구소 일자리와 함께 그곳에 갇힌 영이라는 소녀를 빼내라는 임무를 전합니다. 가진 것이 없었던 ‘나’는 일단 일자리를 받아들입니다. 연구원으로서 ‘나’의 연구 목표는 초능력 소녀 영이의 투시력을 군사력으로 개발하는 것이지만 영이의 초능력은 기대보다 실망스러웠고, 아이는 갈수록 통제 불능이 되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지부진한 연구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마약류의 약물 실험을 검토하라는 지시가 떨어집니다.
대단한 사명도 목적의식도 없이 평범히 살아가던 ‘나’는 고민 끝에 옳은 선택을 결심하고 앞으로 나아가려 애씁니다. 결과를 예상할 수 없을지라도 혹은 어떤 결과가 펼쳐질지 뻔히 보이더라도 옳다고 믿는 곳을 향해 몸을 내미는 ‘나’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여긴 나한테 맡기고 먼저 가”라는 대사를 할 기회가 없었던 것도 이해가 갔다. 그건 그냥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의 대사가 아니다. 남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의 대사다. 어쩌면 내가 변할 걸지도 모른다. 그게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봤다.
_<내부 유령>, 165p
점처럼 작은 인간의 선택과 행동이 모여 세상이 바뀐다는 사실을 우리는 오랜 역사를 통해 배웠을 뿐만 아니라 매일 삶을 통해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제쳐두고 옳은 것을 좇는 이들의 선택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압니다. 소설은 그리하여 바뀐 미래를 보여주는 대신 주목하지 않으면 간과하기 쉬운 한 사람의 아름다운 용기와 의지를 보여줍니다.
세 편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메시지
우주를 구하는 개의 사랑, <좋아하길 잘했어>
우주의 가속 팽창 탓에 1400억 년 후, 생명의 소멸이 예상되는 세상. 감정에도 질량이 있다는 사실과 인간에 대한 개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에 질량-에너지 보존 법칙을 초월한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우주의 종말을 막기 위해 개의 사랑을 우주에 가득 채워 팽창을 더디게 하는 계획이 실행될 예정입니다. ‘나’의 친구이자 오랜 짝사랑 상대이기도 한 수현의 반려견 복실이는 우주로 보내지는 개로 선정되지만, ‘나’와 수현은 가족과도 같은 복실이와의 이별을 떠올리기 어렵습니다.
사랑에 대한 이 소설을 읽으며 수록작 세 편이 모두 한 편의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다른 존재를 생각하고, 걱정하고, 구하려는 마음은 사랑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세 작품을 한 권의 책으로 엮고 싶었다고 밝힙니다.
타임머신이 나오고 초능력을 쓰고 개가 세상을 구하는, 서로 전혀 다른 세 가지 이야기지만 사실 모두 한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_’작가의 말’ 중에서
어쩌면 이 이야기들은 모두 SF이면서 SF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는 세상에 필요한 말을 아직은 비현실적일지도 모를 상상을 통해 전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SF 적으로 표현한다면 세 편의 소설은 모두 작가가 2024년의 지구를 향해 반복해서 발신하는 신호인 것이죠.
작품을 읽으며 당겨오고 싶은 미래와 우주를 구할 만큼 큰 사랑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SF 소설이란 작가의 색다른 상상을 통해 독자들을 오늘보다 나은 미래로 한걸음 더 가까이 데려다 놓는 것인가 봅니다. 복실이의 즐거운 모험을 바라는 마음이 담긴 표지 해설 또한 이 작품을 더 많은 사람에게 친절하게 소개하는 안내서가 되어줍니다. 가까운 미래에서 책장을 덮으며 ‘좋아하길 잘했어’라고 되뇌는 수많은 얼굴이 보이는 듯합니다.
해당 아티클은 인플루엔셜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