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세계로 향한
힐마 아프 클린트

미래를 향해 쏘아진
최초의 추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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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야든 ‘최초’는 대단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처음으로 무언가를 고안하거나 달성한 자들은 역사에 아로새겨집니다. 바실리 칸딘스키는 역사상 최초의 추상화가로 알려져 있고, 화가 자신도 그렇게 확신했습니다. 1935년 뉴욕 화상 제롬 노이만에게 보낸 편지에도 자신의 그림이 세계 최초의 추상화이며, 역사적인 그림이라고 칭한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죠. 그러나 그도 몰랐던 사실이 존재합니다. 그보다 한참 앞서 미술계의 변방에서 추상화를 그렸던 화가가 있다는 사실을요. 여성 예술가로서 겪었던 모든 거절을 하나의 시작으로 만들었던 힐마 아프 클린트의 기록을 찬찬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술가를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

힐마 아프 클린트
이미지 출처: 힐마 아프 클린트 재단

예술가 힐마 아프 클린트(Hilma af Klint)를 알아가기 앞서, 그녀의 생애를 아는 것뿐만 아니라, 그 시대와 사회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러한 서사가 그녀의 과거와 현재를 통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기 때문이니까요.

19세기 스웨덴 출신 힐마 아프 클린트는 유복한 환경에서 그림과 자연과학, 그리고 인문학을 배웠던 지식과 소양이 높은 예술가였습니다. 당시 유럽 미술 아카데미에서는 여성의 입학을 거부하는 경향을 띠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웨덴은 예술의 선진국이었던 프랑스나 이탈리아, 독일보다 먼저 여학생의 미술대학 입학을 허용했던 나라였기에 클린트는 스톡홀름 왕립미술원에서 정규 미술교육을 학습하게 됩니다. 5년간의 학업을 마친 클린트는 초기 활동 당시 풍경화가와 초상화가로 활동하며 꽤 인정받게 됩니다.

힐마 아프 클린트, “쿠스트란드스카프”, 1889
힐마 아프 클린트, “쿠스트란드스카프”, 1889

사실주의 회화에서 주목받던 그녀가 추상의 세계를 접하게 된 것은 사실 미대 입학 전부터 시작이 됩니다. 19세기 말의 예술가와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보이지 않는 세계는 탐구의 대상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발전이 그러하였듯이 그녀에게도 보이지 않는 세계의 가시화는 그녀의 관심사였습니다. 1880년, 그녀의 여동생 헤르미나의 죽음을 접하면서 인간의 정신과 영혼을 연구하는 종교적 사상인 신지학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개신교도였던 그녀는 동생의 죽음 이후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화폭에 담고자 시도하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구현하다

힐마 아프 클린트, <원시적 혼돈>연작 중 “No.16”, 1906-7년
힐마 아프 클린트, <원시적 혼돈>연작 중 “No.16”, 1906-7년

그녀의 시도는 명암법과 원근법 등 서양 미술의 전통과 규범을 벗어던진 새로운 형식의 추상화였습니다. 물질 세계 너머의 고차원적인 존재와 소통하면서, 그것을 예술로 표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06년 11월부터 4개월간 생애 첫 추상화 연작인 ‘원시적 혼돈(1906-07)’을 완성하게 됩니다. 이 연작들은 기하학적인 상징이나 나선 모양 기호, 알파벳 문자 등을 빠른 붓질로 시각화한 것이었습니다. 작품 속 기하학적 형태는 그녀의 복잡한 철학적 아이디어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 당시 유럽 전역에서 신성의 영역과 연결되어 삶에 영감을 주고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원천이라고 여겨진 영성주의가 예술계와 문학계에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시대적인 흐름과 그녀의 생애를 고려하면 ‘원시적 혼돈(1906-07)’은 영성주의에 참여하게된 그녀가 가지고 있는 영적 세계를 시각화한 그림이라고 이해할 수있습니다.

힐마 아프 클린트, 〈열개의 가장 큰 그림>연작 중 “No. 2, 아동기”, 1907
힐마 아프 클린트, 〈열개의 가장 큰 그림>연작 중 “No. 2, 아동기”, 1907

이듬해 ‘열개의 가장 큰 그림(1907)’이라는 기념비적인 추상화 연작을 제작합니다. 유아기부터 노년기까지 삶의 단계들을 표현한 작품으로 화면마다 자연에서 따온 곡선과 상징, 기하학적인 기호와 문자로 가득한 작품들입니다. 해당 연작의 경우 폭 3미터가 넘는 대형 캔버스 10개에 그려진 연작인데, 클린트가 캔버스를 바닥에 둔 채 그렸다고 합니다. 클린트의 창조적인 열정, 삶의 순환과 흐름을 담아낸 작품으로 예술적 시각과 영적 신념을 표현하는 중요한 작품으로 남아있습니다.

힐마 아프 클린트, 〈열개의 가장 큰 그림>연작 중 “No. 7, 성년”, 1907
힐마 아프 클린트, 〈열개의 가장 큰 그림>연작 중 “No. 7, 성년”, 1907

클린트의 그림은 북유럽 작가들이 내는 독특한 색채와 기하학적인 모양에 상징을 담아냅니다. 그녀에 대한 연구가 최근에서야 진행되어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다만 현재 진행되는 연구에 따르면 나선형은 진화를, U자는 영적 세계를, W자는 물질을, 겹친 동그라미는 단결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노랑과 빨강은 즐거움과 남성성을, 파랑과 라일락색은 섬세함과 여성성을 의미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성인 단계를 표현한 7번 그림은 여성성과 남성성의 조화와 단결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림에는 여성성을 상징하는 거대한 라일락색 안에 남성성을 상징하는 노란 꽃잎 같은 형상이 가운데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로 하여금 주변에는 활기찬 다양한 생명체들이 즐거운 노래와 춤으로 두 성의 결합을 축복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처럼 클린트는 인간의 내면과 우주의 신비를 담아내면서 당시의 미술 경향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무의식과 영감에 따라 작품활동을 이어나갑니다. 이러한 방식은 수십 년 후, 초현실주의자들이 자신의 잠재의식을 활용하기 위해 사용한 오토마티즘 기법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이해 없는 세상 속
미래를 위해 봉인해 둔 작품들

그러나 미술사학자인 린다 노클린의 유명 서적인 <왜 위대한 여성 예술가가 없었는가?>에서 알 수 있듯이 르네상스 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활발하게 활동한 여성작가는 다수이지만 미술사에서 여성의 이름을 남기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클린트도 이를 피해가 갈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남성이 지배하는 미술계에서는 그녀를 위한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작품 중 단 두 점이 전시장 가장 후미진 구석인 계단과 비상구로 밀려났던 일화를 고려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비평과 해석을 기대했던 새로운 형식에 돌아온 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위험한 그림이라는 충격적인 충고였습니다.

힐마 아프 클린트, <지식의 나무>연작 중” HaK137”, 1913-15
힐마 아프 클린트, <지식의 나무>연작 중” HaK137”, 1913-15

낙담한 클린트는 미술협회를 탈퇴하면서 예술과의 작별을 고하는 듯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4년 후 다시 붓을 잡고 자신만의 예술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평생 은둔하며 고독하게 후원자나 비평가, 화상도 없이 가난하고 힘든 예술가의 삶을 그저 묵묵히 견디며 살아냅니다. 이해 없는 세상 속 클린트는 향년 81세로 1000점이 넘는 그림을 홀로 실험하다 1944년 세상을 떠납니다.

〈힐마 아프 클린트 - 미래를 위한 회화〉 전시 장면, 2018년
〈힐마 아프 클린트 – 미래를 위한 회화〉 전시 장면, 2018년, 이미지 출처: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조카에게 남긴 유언에서 그녀가 고독한 창작을 이어 나간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작품이 세상에 공개될 준비가 되지 않았으며, 알아봐 줄 안목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말이죠. 그렇게 작품은 타임캡슐에 담겨 미래를 향해 쏘아 올려졌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기다림 덕분에 클린트의 예술은 여성 예술가가 존중 받기 시작한 시대, 비이성적인 예술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시대에 공개될 수 있었습니다. 2018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그녀의 개인전이 열렸을 때, 개관 이래로 가장 많은 수인 60만 명의 관람객이 전시장에 몰려들었습니다.

다큐 <힐마 아프 클린트 - 미래를 위한 그림> 스틸
다큐 <힐마 아프 클린트 – 미래를 위한 그림> 스틸, 마노엔터테인먼트

작품은 미술관뿐만아니라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게 됩니다. 그녀의 작품과 자료, 그리고 자료를 보관하던 조카의 증언을 토대로 그녀의 생애와 작품이 담긴 다큐멘터리 <힐마 아프 클린트 – 미래를 위한 그림>로 제작되었습니다. 또한 아리 에스터 감독의 <미드소마(2019)> 중 춤추는 주민들의 동심원은 클린트의 그림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고, 영화 <퍼스널 쇼퍼(2016)>에서도 그녀의 그림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최근에서야 클린트의 추상 미술은 미래의 대중들에 의해 봉인이 풀렸고 그녀의 끝없어 보였던 기다림은 오롯한 인정으로 끝맺어졌습니다.


폄하되고 은폐됐던 클린트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는 지금에 와서야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흔들고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녀의 그림은 미래의 관객을 위한 그림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클린트가 지속했던 창작은 회화사에 한 자리를 확고히 자리 잡는 것보다 더 큰 의미를 도모하지 않았을까요? 미숙하고 어수룩해 보이는 첫 발걸음의 가치를 차마 함부로 예단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아무도 향유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창작을 멈추는 것을 택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우주를 넓혀갔던 클린트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이해 없는 시대는 조금도 예측할 수 없음을, 나의 첫 발걸음이 적절한 시기에는 누군가에게 큰 울림을 가져다 줄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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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바람들을 느끼며
예술의 향유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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