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주거환경인 아파트는 대한민국의 도시경관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건물입니다. 지난번 아티클을 통해서 아파트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진정한 주거의 의미를 몇 가지 사례를 통해 돌이켜봤습니다. 아파트는 우리의 삶과 거주환경에 깊이 뿌리 잡게 되었고, 그 배경에는 개발이라는 과제를 앞세운 정책과 대형 자본이 투입된 건설회사의 사업추진이 있었죠. 삭막한 도시풍경, 진정한 의미의 거주, 지역 커뮤니티의 부재와 같은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건설기술의 발전과 다양한 공동주택의 유형 개발에 많은 성과가 있었습니다. 이에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국내 유수의 건설회사가 해외의 랜드마크 건설사업에 참여하는 소식을 심심치 않게 접하곤 합니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아파트는 그 시작이 어디였을까요? 세계 최초의 아파트라 불리는 건축물을 필자의 답사기를 통해 만나보시죠.
르코르뷔지에
– 유니테 다비타시옹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라는 도시에 위치한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효율적인 주거공간을 신속하게 공급하기 위해 고안된 공동주택이며, 최초의 근대식 아파트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근대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에 의해 설계되었죠. ‘주거의 단위’라는 뜻을 가진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비슷한 형태로 베를린, 파르미니 등 다른 지역에도 건설되었고, 이는 곧 사회적 요구에 대한 건축가의 새로운 답변이었던 셈이지요.
이 건물은 식당, 체육관, 유치원 등이 함께 결합된 주상복합형 아파트의 형식을 갖추었습니다. 이는 당시 다양한 사회 구성원이 함께 공동체를 구성하여 지낼 수 있는 일종의 소셜믹스의 개념이 적용된 것이죠. 이 건물의 또 다른 특징은 복층형으로 구성된 아파트라는 것입니다. 2세대가 니은, 기역 자로 결합되고 하나의 복도를 공유하는 구조는 공용공간을 최소화하고 다양한 평면구성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오늘날에도 많이 차용되는 건축개념이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많은 건축적 개념과 철학이 담긴 작품이며, 그러한 디자인이 어디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찾아가는 흥미로웠던 기억을 공유해 드릴게요.
1) 복합용도의 공동체 주택
유니테 다비타시옹의 상업시설 중에는 호텔의 기능이 있었고, 현재에는 르코르뷔지에 호텔이라는 이름으로 변형되어 운영 중입니다. 필로티로 구성된 1층의 진입부를 통해 건물에 들어서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 도착하면 소박하면서도 품격있는 호텔 로비를 맞이하게 됩니다. 간단한 음료를 즐길 수 있는 공간도 함께 마련된 로비에서 체크인하고, 호텔 이용수칙에 관한 안내를 받게 됩니다. 안내를 받으며 투숙객의 대부분이 건물 답사 목적으로 방문한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어요.
호텔 뿐만 아니라 식당, 서점, 사무실, 갤러리 등의 시설도 여전히 운영 중이에요. 상업공간은 복층형의 복도로 구성되어 쾌적하고 밝은 모습을 띠고 있지요. 공실이 많고, 이용객이 굉장히 드물었지만, 북적거리지 않고 한산하여 건물 내부에서도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또한, 특정 시간대에 아이들을 자주 보게 되었는데, 유치원으로 계획되었던 시설이 모종의 교육시설로써 여전히 사용 중임을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2) 신체 치수에 의해 설계된 객실
다소 낮고 어두운 복도의 양옆으로 호텔의 객실이 위치합니다. 일반적인 호텔의 복도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데요, 이는 르코르뷔지에가 제시한 ‘모듈러(Modulor)’라는 인체 비례에 근거한 개념이 적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개념은 객실 내에서 더욱 명징하게 보여집니다. 그가 신체 치수의 분석을 통해 만들어 낸 최적화된 비례에 의해 공간의 규모가 결정되었지요. 그 치수는 7.5m x 1.8m x 2.2m의 직육면체임을 확일 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객실도 좁고 아담하여 여타 호텔과는 거리가 있지요. 또한, 취약한 벽간소음, 삐걱대는 바닥과 손잡이는 편안한 숙박의 경험을 제공하기 어려웠지만, 역사적인 건축물을 오롯이 만끽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3) 다양한 이벤트를 수용하는 옥상정원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면서 마주친 거주민들을 통해서 주거공간 역시 잘 쓰이고 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투숙객과 거주민의 동선이 따로 분리되지 않아서 꽤나 자주 마주치게 되었고, 모두 반갑게 인사를 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반 호텔에서는 겪기 힘든 경험이었지요. 그리고 한 아주머니는 방긋 웃으시며 옥상정원에 가봤느냐고 물어보기도 하셨어요.
르코르뷔지에는 근대건축의 5원칙(자유로운 평면, 자유로운 입면, 수평 창, 필로티, 옥상정원)을 발표하였는데, 그 중 하나인 옥상정원은 이 건물을 빼놓고는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유니테 다비타시옹의 옥상정원은 그의 생각이 잘 표현된 대표적인 작품이에요. 이 옥상정원은 투숙객에게는 24시간 개방되는 혜택이 있어서 주·야경을 동시에 즐길 수 있었습니다. 옥상에는 수영장과 조형성을 띠는 구조물, 벤치 등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공동주택에서의 커뮤니티의 활성화를 위해 계획된 장치입니다. 현재는 사무실로 쓰이는 옥상의 일부 공간이 초기에는 유치원의 용도였고 아이들의 야외활동 공간으로도 유용하게 쓰였다고 합니다. 안전상의 이유로 높게 계획된 난간으로 인해 마르세유 도시의 전경을 조망하기는 불편했지만, 이는 옥상정원의 쓰임을 더욱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느꼈습니다. 이곳에서 최근 샤넬의 런웨이 행사인 크루즈쇼가 진행되어 화제가 되기도 하였지요.
4) 곳곳에서 발견되는 건축적 조형미
건물 내외부에서 발견되는 조형적인 요소들을 찾아내는 것도 해당 건물답사의 재미입니다.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필로티의 구조 역시 근대건축의 5원칙 중 한 가지로, 그의 다양한 건축물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요소입니다. 이 건물 역시 필로티의 기둥이 직설적으로 드러나며, 조형미가 함께 가미되어 진입의 경험을 다채롭게 부여하지요. 또한, 비상동선으로 이용되는 계단실에서도 건축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독특한 벽체의 재질과 강한 색채로 구성된 난간의 디테일을 통해 건축가의 세심한 디자인을 엿볼 수 있지요.
무려 70여 년 전에 지어진 이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우리나라의 도심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아파트의 외관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규격화된 공간의 조합으로 구성되는 아파트의 특성상 수직과 수평이 만들어내는 그리드 체계를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단순한 반복과 중첩에서 탈피하고자 하였습니다. 다양한 색채의 사용, 층고의 변화, 필로티 및 옥상의 조형성 등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었지요.
최초의 아파트라는 역사적인 공간에서의 하룻밤은 무척이나 이색적인 경험이 되었습니다. 이른 아침 발코니에서 맞이하는 지중해의 광경은 여전히 생생한 기억이지요. 조금은 이색적인 유럽 여행지를 원하신다면, 지중해를 품은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마르세유, 그리고 최초의 아파트인 유니테 다비타시옹의 방문을 고려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