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지속가능한 인물 3선

인류 너머까지 헤아리는
소설 속 인물 큐레이션
Edited by

여러분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고 있나요? 타인을 마주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세상입니다. 주문도 비대면, 배달도 비대면. 하루의 끝에서 마주하는 건 알고리즘이 모아준 내 취향의 총집합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소설을 읽는다는 건 무슨 의미를 가질까요? 여기 네 명의 인물이 있습니다. 이들은 관심의 대상을 나를 넘어 이웃까지, 넓게는 인류 너머까지 확장했지요. 한 가지 특이점이 있다면 네 명 모두 실존하는 인물이 아닌, 소설이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숨을 쉰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서사를 통해 소설의 세계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지향점은 무엇인지 돌아봅니다.


아침마다 꿀벌 실종 기사를
스크랩하는 인물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속 곽주호, 문희주

이미지 출처: 문학동네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일이 아님에도 제 일인 것처럼 크게 공명하는 사람들이요.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속 곽주호가 그런 인물입니다. 플라스틱 화분 받침대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던 주호의 사업장에서 사람이 죽습니다. 끼임 방지 센서가 있었지만 작동하지 않았죠. 벌금을 냈을 뿐, 사고 후에도 공장은 예전과 다름없이 돌아갑니다. 피해자는 주호와 친한 사람이 아닙니다. 주호는 사고에 책임이 있는 관리자도 아니죠. 하지만 주호에게는 사고가 그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가동되던 기계를 툭 꺼버리고, 결국 김부장은 그를 호출합니다.

주호는 점점 뉴스를 볼 때조차 숨을 쉬기가 힘들어집니다. 결국 휴식기를 갖던 중 도시가 물에 잠기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성인 기초 수영반에 등록하죠. 그곳에서 문희주를 만납니다. 희주는 십년 동안의 교사 생활을 마무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퇴직금으로 생활을 꾸리고 제과 제빵 등 온갖 취미를 배우며 천천히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죠. 희주의 하루 일과는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점차 사라지는 도시들과, 집단으로 사라진 꿀벌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면서 시작됩니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잠겨가는 도시에서 그저 가라앉지 않고 떠오르기 위해, 주호와 희주는 수영을 배웁니다. 희주와 주호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원거리의 슬픔을 근거리에서 느낀다는 점일 것입니다. 다른 존재의 고통에 내 것인 양 아파하는, 그래서 가끔은 유난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 바로 희주와 주호입니다. 나의 아픔에만 집중하기 쉬운 세상입니다. 하지만 모든 이가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면 세상은 서서히 잠겨가겠지요. 우리가 희주와 주호에게서 배워야 할 점은 나를 넘어 조금 더 먼 곳으로 시선을 던지려는 노력, 그곳을 향해 팔다리를 움직이려는 성실한 사랑 아닐까요.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구매 페이지


슬로우 패션을 지향하는
채식주의자

『지구에서 한아뿐』 속 한아

이미지 출처: 난다

한아는 옷을 수선합니다. 패스트패션에 대항해, 하나의 옷을 오래 입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옷을 다시 만들어 주지요. 한아를 찾아오는 이들 중 많은 경우는 사랑하는 고인의 옷을 고쳐 입고 싶어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한아의 손길을 거쳐 탄생한 옷은 환경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이야기를 가진 사랑의 증거물이 됩니다.

그런 한아에게 진정한 사랑이 찾아옵니다. 놀랍게도 정체는 ‘외계인’이지요. 저 멀리 별에서 한아를 발견한 그는 무려 2만 광년을 넘어 한아의 곁으로 옵니다. 한아를 두고 떠나버린 남자친구, 경민의 외양을 한 채로 말이지요. 수많은 지구인 중 왜 하필 나였냐는 한아의 물음에 경민은 답합니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한아와 경민은 조금씩 서로의 일상에 스며듭니다. 그렇게 사랑이 시작되지요. 둘은 결혼식도 남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준비합니다. 한아는 의뢰인들의 옷에서 떨어져나온 하얀색 자투리 천으로 본인이 입을 드레스를 직접 만듭니다. 그들이 함께 사는 빌라 옥상에 정원을 가꾸고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만 식에 초대하죠.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음식도 탄소 배출량을 고려해 메뉴를 정하고, 신혼여행지에서는 바다 산호를 고려해 선크림을 바르지 않고 물놀이를 즐깁니다.

아무리 일상 속 작은 선택일지라도 우리가 결정을 내리는 모든 순간은 조금씩 세상에 영향을 미칩니다. 새 옷을 살지 말지, 음식은 무엇을 먹을지, 선크림을 바를지 말지 같은 아주 사소한 결정조차도 말이지요. 늘 선택의 무게감을 인식하고 다른 생명체를 염두에 두는 한아의 모습은 그래서 분명 귀감이 됩니다. 쉽고 간편한 무심함의 방식을 넘어 끝끝내 다정함을 지키려는 한아와 같은 이들이 있기에 오늘도 지구는 조금 덜 소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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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이 필요한 어린 아이를
지나치지 못하는 인물

『이처럼 사소한 것들』 속 펄롱

이미지 출처: 다산책방

마흔을 목전에 둔 펄롱의 하루는 꼭두새벽 석탄과 장작을 배달하며 시작됩니다. 딸 셋과 아내 아일린까지 총 다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기에 아무리 고단해도 펄롱은 매일 아침 석탄 야적장으로 발걸음을 옮기죠. 장대비 속에서 땔감을 줍는 아이들에게 주머니 속 잔돈을 쥐여줄 정도의 다정한 마음은 있지만 추운 아침 어린 남자아이가 고양이 밥그릇에 담긴 우유를 마시는 광경은 못본 체 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형편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던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수녀원으로 석탄을 배달하러 간 펄롱은 단단하게 빗장이 걸린 석탄 광에 여자아이가 홀로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아이. 머리까지 엉망으로 깎여있는 것을 보아 이곳에서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죠. 수녀원은 펄롱의 야적장에서 늘 최고급 석탄을 주문합니다. 펄롱이 몸담은 마을에서 수녀원의 영향력도 상당하지요. 가족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에게 등을 돌리려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할까요? 결국 펄롱은 수녀원장이 쥐어준 봉투만을 들고 가족들이 기다리는 따뜻한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지켜야 할 것이 있을 때 인간은 비겁해지지요. ‘우리 애들’과 수녀원 아이들을 구분 짓는 경계 앞에서 펄롱은 더 이상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도움을 요청한 아이를 외면한 채 번듯하게 크리스마스 미사에 참석하고 있는 스스로를 견디지 못한 펄롱은 수녀원의 석탄 광 문을 다시 한번 열어젖힙니다.

펄롱과 그의 식구들이 앞으로 어떤 일을 겪게 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아마도 평온한 일상은 아닐 테지요. 하지만 한 가지 꽤 분명한 사실은, 어린 소녀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오늘은 분명 인생의 전환점이자 기적일 텝니다. 펄롱 가족의 절망과 소녀의 기적이 합쳐진 삶은 어디로 흐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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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의 물음으로 되돌아가 봅니다. 이런 세상에서 소설을 읽는다는 건 무슨 의미를 가질까요? 우리는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내가 겪어보지 못한 삶을 살고, 타인을 이해합니다. 만약 소설 속 그 인물이 먼 곳의 아픔마저 내 것으로 느끼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그들의 손을 잡고 더 멀리까지 가게 되지요. 오늘도 소설을 읽으며 다른 존재를 이해해 보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그 다짐이 오늘의 안온함을 조금 더 지속시킬 거라고 믿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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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

파주출판단지 노동자
무해한 삶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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