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가두는 정교한 규칙
당신 곁의 아날로그 시계

무형의 자원을 지각하는
간편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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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활동이나 상태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는 지각은 어디서부터 올까요? 필자는 ‘그것’을 시작했던 시점를 뒤돌아보고 ‘벌써 이만큼이나 시간이 지났어?’라는 생각이 들 때라고 생각합니다. 지속을 증명하는 물리적 증거는 오직 시간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시계는 ‘지속성’을 체감할 수 있는 제일 원초적인 물건입니다. 무형의 시간을 움켜쥔 브랜드 시계들을 소개합니다. 손목, 벽, 침대 머리 맡 등 우리의 시선이 닿는 곳에 둘 수 있는 시계들입니다.


Watch

손목시계

놋트(Knot)

시계 놋트
이미지 출처: 놋트(Knot) 공식 홈페이지

손목시계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스마트 워치가 기능적으로 그 자리를 너무나도 완벽하게 대체하고 있거든요. 스마트 워치는 시계 본연의 역할을 물론, 편의성 측면에서도 자신의 조상들을 아득히 뛰어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목시계는 만들어지고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름다우니까요. 스마트 워치만큼 편리하진 않지만, 심미적인 면에서는 다채롭습니다. 마치 스마트폰의 형태가 고착화되면서, 과거 2G 시절 피쳐폰의 과감한 시도들이 참신하게 가다오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미지 출처: 놋트(Knot) 공식 홈페이지

놋트(Knot)는 2014년에 설립된 일본의 시계 브랜드로, ‘매듭짓다’라는 브랜드 이름처럼, 장인정신으로 만든 시계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것을 모토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럭셔리 브랜드와 비교했을 때, 너무나도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손목시계를 ‘하나의 패션 도구’로 바라보는 소비자라면 혹 할만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요. 바로 취향껏 시계를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는 ‘커스터마이징 워치’를 전개한다는 점입니다.

시계 작동 방식(쿼츠, 솔라, 오토매틱)을 결정짓는 헤드와 모양을 고르고, ‘줄질’이라 불리는 스트랩을 결정한 뒤, 버클의 형태, 시계의 뒷면인 워치 패드를 부착하면 나만의 시계가 완성됩니다. 국내 플래그십 스토어는 수원 스타필드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니, 천편일률인 스마트 워치가 아닌 유일무이한 아날로그 시계를 가지고 싶으시다면 한 번 방문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Clock

벽시계

비트라(Vitra)

비트라
이미지 출처: 비트라(Vitra) 공식 홈페이지

필자는 물건을 고르는 기준을 ‘실용성’에 둡니다. 그래서 디자인 오브제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데요, 아무래도 오브제는 ‘아름다움’에 방점이 찍혀 있는 물건이니까요. 그렇습니다. 필자에게는 실내 인테리어 감각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절망적인 수준이라고 해도 반박의 여지가 없습니다.

삭막한 눈썰미의 소유자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공간에 가면 벽시계를 제일 먼저 찾습니다. 벽시계는 시간을 표시하는 실용적인 물건이라 생각하거든요. ‘지금 몇 시지?’ 싶으면 눈에 띌 수밖에 없는 물건이기도 하고요. 실용적인 디자인 오브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트라
비트라
이미지 출처: 비트라(Vitra) 공식 홈페이지

스위스의 미드 센추리 모던 디자인 브랜드 비트라(Vitra)의 벽시계 컬렉션에는 숫자가 없습니다. 츄이스티 도넛처럼 생긴 모델도 있는가 하면, 어떤 모델은 직선만 죽 그어져 있어 별가사리 같아 보입니다. 디자이너 조지 넬슨(George Nelson)이 사람들이 시계를 읽을 때, 숫자가 아닌 시침과 분침의 위치로 시간을 가늠한다는 점에 착안해 디자인했기 때문입니다.

컬렉션 중 하나인 Eye Clock은 사람의 눈을 형상화한 실루엣인데요, 양 옆으로 폭이 긴 타원형의 벽시계가 걸린 공간에 입장한다고 상상해 봅니다. ‘지금이 몇 시더라’ 시선을 돌려 벽시계를 찾으니, 외눈이 필자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아마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벽에 걸린 눈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불친절한 시계네. 그래도 디자인 하나는 신박하군. 실용적인 오브제로 합격이야.’


Mantel clock

탁상시계

브라운(BRAUN)

브라운
이미지 출처: MoMA Design Store

‘찌르르릉, 찌르르릉’. 요란하게 울리는 탁상시계를 ‘텁’하고 손으로 덮어 알람을 끕니다. 베개를 끌어안고 아직 가시지 않은 잠을 더듬는데, 다시 시계가 시끄럽게 울려댑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요? ‘탁상시계’하면 떠오르는 장면을 마음대로 그려봤습니다.

탁상시계를 썼던 때가 뚜렷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탁상시계로 아침을 맞이했던 적이 있던가 싶기도 한데요, 스스로 아침을 맞이한 때부터는 머리맡에 핸드폰이 놓여있었거든요. 하지만 매일 ‘5분 뒤 알림’을 터치하는 아침을 맞이하다 보니, ‘딱 한 번의 기회만 주는, 옹골찬 알람 시계 하나 있으면 상쾌하게 일어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움트기도 합니다.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요.

브라운
이미지 출처: 브라운(BRAUN) 공식 홈페이지

면도기로 유명한 브라운(BRAUN)에서 시계도 만들고 있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미니멀하고 깔끔한 디자인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도요. 브라운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디터 람스(Dieter Rams)가 만든 시계 컬렉션을 보시면 납득이 가실 겁니다. 디터 람스는 미니멀리즘에 기초해 사물의 본질을 응축시킨 기능적인 다지인을 추구했는데요, 그의 디자인 철학은 무인양품과 애플 등 산업 디자인에 큰 획을 그은 브랜드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브라운의 탁상시계가 정직한 이유입니다. 모양과 크기, 용도는 조금씩 다를 지더라도, 시계 본연의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는 디자인 철학은 그대로 녹아 들어 있습니다. 침대 옆, 사무용 데스크 위, 소파 앞 선반 그 어디에서도 제 몫을 톡톡히 해낼 것 같죠. 필자가 주목한 모델은 ‘BC05’입니다. 여행용 알람 시계 모델인데요, BEAMS 매장에 진열되어 있어 눈여겨본 제품입니다. 낯선 여행지의 호텔에서도 아침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정직한 디자인이지 않나요?


스마트 워치를 포함한 디지털시계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럭셔리 시계가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는 워치 메이킹 때문이라고 합니다. 시계가 작동하는 원리를 설계하고 조립해 움직이게 만드는 워치 메이킹은 장인 정신과 아날로그 기술의 집약체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 정교하죠.

필자는 그 정도로 집요하게 만든 시계를 차본 적은 없습니다만, 스마트 워치보다는 과거의 시계들을 좋아합니다. 오토매틱 정도의 기술은 아니더라도, 손으로 붙잡을 수도, 눈으로 볼 수도 없는 시간을 물리적인 규칙으로 붙잡아 둔다는 게 매력적이거든요.

올해 초, 군 입대 선물로 받았던 지샥 시계의 배터리를 손수 갈았습니다. <미션임파서블 1>에서 에단 헌트가 차고 나왔던 DW-290 모델입니다. 몇 안 되는 부품을 분해해 배터리를 갈아 끼우니 LED 화면이 켜졌고, 버튼을 눌러 시간을 맞추었습니다. 간단한 과정이지만, 잠시 시간을 매만진 기분이었죠. 이렇듯 스마트하지 않은 물건은 이따금씩 자신들의 존재 의의를 사용자에게 건네주곤 합니다. 여러분들도 아날로그시계로 시간을 쥐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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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현

새삼스러운 발견과 무해한 유쾌함을 좋아하는 사람.
보고, 듣고, 느낀 예술을 글로 녹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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