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24년의 하반기도 꽤 지나갔습니다. 얼마 전 친구로부터 이런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8월은 다시 한번 힘을 내 달리기 좋은 시기인 것 같아. 남은 하반기도 힘내 보자!”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새로운 다짐으로 이겨 내자는 응원이었습니다. 올해 목표했던 바를 찬찬히 돌아봅니다. 남은 시간을 아쉽지 않게 보내기 위한 각오가 필요할 듯합니다. 오늘 소개할 세 권의 만화책은 만사에 의욕이 떨어지는 요즘 같은 더위를 잠시나마 잊게 해줄 흥미진진한 이야기이자 꿈을 향한 인물들의 꾸준한 의지가 감동을 선사합니다.
변명 대신 자신을 마주보기,
『동경일일』
주인공 시오자와는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베테랑 만화 편집자입니다. 자신이 담당한 잡지의 폐간을 책임지며 퇴직한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던 만화책을 버리고, 만화와 결별하려 하지만 끝내 그 마음을 거둬들입니다. 그는 다시 한번 만화 잡지를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회사의 울타리 없이 혼자서 그동안 마음에 담아둔 대작가들을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지금 유행에는 어울리지 않을지 몰라도 자신의 마음을 움직인 원로 작가들의 만화를 엮어 스스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잡지를 만드는 것이죠.
그중에는 만화를 더 이상 그리지 않는 만화가, 빛나던 과거와는 다르게 타성에 젖은 만화가 등 그가 동경하는 모습 그대로의 작가들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오자와만은 만화에 대한 한결같은 애정으로 난색을 보이는 작가들에게 과거 그들의 만화가 얼마나 훌륭했는지 진심으로 전합니다. 시오자와의 술수 없이 투명한 순수함이 오히려 작가들을 움직입니다. 그들은 마치 느슨한 한 팀처럼 그렇게 서로를 지탱합니다.
시오자와는 매사 차분하고, 감정 기복이 크지 않은 인물입니다. 남탓 할 것 없이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며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회피하지 않는 점이 가장 멋집니다. 때로는 스스로를 설득하고 움직이게 하는 것이 가장 어렵지 않던가요? 시오자와는 부정적인 생각과 불안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틈을 주지 않습니다. 과연 누가 만화를 그려줄까?, 서점에서 이름 없는 책을 입점시켜 줄까?, 얼마나 팔릴까 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내가 만들고 싶은 만화 잡지를 만든다.’ 그를 움직이는 단 하나의 목표입니다.
소중한 사람의 믿음에 기대어,
『그리고 또 그리고』
유명 만화가 히가시무라 아키코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이 만화는 작가가 순정 만화가가 되기 위해 미대 진학을 꿈꾸던 고등학교 시절에 만난 화실 선생님과의 추억을 다룹니다. 작가는 철없던 학창 시절을 회고하며 오래전 선생님이 해준 말들이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 선생님은 조그마한 시골에서 화실을 운영하는, 미대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예술계의 아웃사이더였지만 그림밖에 모르는 뛰어난 화가였습니다. 그러한 선생님의 미술에 대한 열정과 제자에 대한 진심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던 작가는 만화가라는 자신의 꿈을 숨기기에 급급했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슬프게 하지 않기.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가장 큰 동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만화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작가는 자신이 늘 선생님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했지만, 사실은 그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고 소중했음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힘들게 미대에 진학했으나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방황할 때도, 미대를 졸업하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백수일 때도 자신을 꺼내준 것은 화실 한편을 내어주며 그저 그림을 그리라던 선생님이었습니다. 가장 절망적인 그때, 작가는 꿈을 위해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 시절이 발판이 되어 작가는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만화가가 되었죠.
누구에게나 인생의 은인이라고 할 만한 스승을 만나는 행운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겠지요. 나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무엇을 끊임없이 요구하며 자극하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낍니다. 부모, 친구, 직장 동료 등 누구든 될 수 있겠지요. 의지가 부족하거나 방향이 잡히지 않을 때, 나의 성장을 진심으로 바라는 타인의 조언과 비판을 믿어봐도 좋지 않을까요? 덤으로 작가가 과거 자신에 대해 퍼붓는 신랄한 비판과 자조에 정신이 번쩍 들지도 모릅니다.
단 하나의 꿈을 위한 삶의 여정,
『신들의 봉우리』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만화는 1924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코앞에 두고 실종된 산악가 조지 맬러리의 비밀을 추적하는 실화 기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첫 등반의 타이틀을 놓고 경쟁하는 산악계에서 꿈을 좇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얹어지며 실제와 가상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됩니다.
작품에서 가장 주요하게 소개되는 인물인 하부 조지는 산밖에 모르는 대단한 집념의 산악가입니다. 첫 등반의 타이틀을 얻기 위해서라면 남들이 말리는 위험한 산행도 포기할 줄 모르고, 일부러 어려운 코스를 선택할 정도로 고지식하고 자존심 센 외골수입니다. 다른 사람의 눈치 따위는 보지 않는 언행으로 수많은 동료와 조력자를 잃기도 합니다. 원대한 목표에 사로잡혀 조금의 요령은커녕 자신의 삶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죠. 조지 하부의 삶은 꿈이란 때때로 한 사람의 인생을 집어삼키고 모든 것을 지배할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에 반해 하부 조지의 경쟁심을 자극했던 하세 츠네오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일부러 어려운 코스를 선택하는 무모함에 도전하지 않고 가장 빠르게 올라갈 방법을 선택합니다. 결국 하세 츠네오는 위대한 산악가 중 한 명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하세 츠네오 역시 첫 등반의 기록을 위해 떳떳하지 못한 방식을 선택하기도 했습니다.
만화 속 인물들은 목표를 좇는 과정에서 위험에 처한 동료를 구하는 의인이 되었다가 조력자의 노력을 무시하는 몰염치한 인간이 되기도 합니다. 눈앞의 이익 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의 마음을 입체적이고 현실적으로 표현합니다. 언제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산봉우리를 정복하겠다는 목표를 위해 수십, 수백 번씩 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꿈을 좇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는 것인지 말입니다.
올해 목표는 잠들기 전 스마트 폰을 보지 않기, 일과 후 나만의 루틴 만들기였습니다. 책을 읽고 글도 쓸 계획이었죠. 잘 되지 않았습니다. 세 작품을 읽으며 무엇을 끈질기게 해내는 일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느꼈습니다. 올해의 목표를 돌아보며 다시 한번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아무리 도달하기 어려워 보일지라도 어떻게든 시작만 한다면, 그리고 반복한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