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기술의 호러
김희천의 ‘스터디’

데이터 세계의
‘진짜’ 공포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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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명품 매장의 지하로 내려가면, 온통 암흑뿐인 낯선 공간이 등장합니다. 한 발짝 내딛는 순간, 갑자기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발걸음을 주춤하게 하죠. 순간적으로 감각을 자극하며 불안함과 공포심을 극대화하는 것은 관람자로 하여금 공포영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잠시 뒤 나타난 저화질의 두 비디오 속에는 기다랗고 음침한 학교의 복도가 나타나며 이야기가 다시 전개되는데요. 바로 김희천 작가의 영상 작품 <스터디>입니다.

김희천, <스터디(Studies)>, 2024
김희천, <스터디(Studies)>, 2024, 이미지 출처: 아뜰리에 에르메스

‘나’라는 데이터가 삭제된다면?

나에 대한 모든 데이터가 갑자기 삭제된다고 상상해 봅시다. 이 세상에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그 어떤 정보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김희천, <스터디(Studies)>, 전시 전경
김희천, <스터디(Studies)>, 전시 전경, 이미지 출처: 아뜰리에 에르메스

고등학교 레슬링 코치인 ‘찬종’은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KBS에서 주관하는 레슬링 대회가 끝나면 삶을 포기하기로 결심한 ‘찬종’은 곧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될 자신의 삶을 계속해서 상상하죠. 그러던 중,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사건의 실마리를 따라 훈련하는 장면을 담은 cctv를 분석하던 찬종은 기이한 장면을 목격합니다. 사라진 선수와 스파링을 했다던 다른 선수들은 녹화 영상 속에서 상대 없이 홀로 스파링을 하고 있었죠. 게다가 찬종의 기억 속에는 사라진 선수들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궁에 빠진 사건으로 인해 찬종은 환영에 시달리며 불안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김희천, <스터디(Studies)>, 2024
김희천, <스터디(Studies)>, 2024, 이미지 출처: 아뜰리에 에르메스

<스터디>에서 선수의 실종은 곧 데이터의 삭제와 훼손을 은유합니다. 영상에는 이를 나타내는 힌트가 등장하는데요. 레슬링은 두 명의 선수가 서로 겨루는 경쟁 스포츠이지만, cctv에 녹화된 레슬링 훈련 장면에서 선수들은 홀로 허공에 레슬링 기술을 시도하고, 바닥을 구릅니다. 게다가 녹화된 화면은 선수의 얼굴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흐릿하며 마치 오류가 난 것처럼 픽셀이 깨져 있죠. 간혹 버퍼링이 걸려 선수의 형상이 여러 겹으로 겹쳐 보이기도 하고, 얼굴은 점점 뭉개지고 늘어집니다. 이는 작가가 기술의 허점을 의도적으로 재현한 장치인데요. 고도로 발전한 기술을 사용해 역으로 구현한 아날로그적 오류는 기괴함을 극대화합니다. 이를 통해 완벽할 것 같던 데이터의 세계도 불완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각종 정보가 촘촘히 저장된 세상에서 스스로에 대한 의문을 품고, 개인적 서사를 만들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인간 존재마저 저장된 정보로 완벽히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데이터가 뒤틀리고 훼손된 찬종의 세상에서는 내가 ‘나’로써 존재한다는 것이 점점 불확실해집니다. 영원할 거라고 믿었던 완벽한 데이터 스토리지가 허점을 드러내면서부터요. 이렇게 의도적으로 구현한 <스터디> 속 기술적 취약함은 불확실성을 일깨웁니다. 김희천 작가는 바로 이 점을 공포의 소재로 사용합니다.


불완전함이라는 균열

<스터디>는 작가가 스스로의 모습을 추상적으로 떠올릴 수 없다는 데에서 무력함과 답답함을 느낀 데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예전의 공포영화에 비해 고화질로 렌더링 된 요즘의 공포영화가 ‘미지의 세계’를 구현하기 어려운 것처럼, 데이터값으로 확정된 나의 모습에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자아를 탐구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죠.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너무 없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이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확실하게 설명되어 있기에 정보 값의 일부로 존재하는 개인은 진짜 ‘나’를 상상해 볼 수 있는 자유를 가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김희천, <스터디(Studies)>, 2024
김희천, <스터디(Studies)>, 2024, 이미지 출처: 아뜰리에 에르메스

영상에 나타나는 불확정성의 요소는 이를 해소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매번 상대를 바꿔가며 겨루는 레슬링 대회, 이유를 알 수 없이 사라진 선수들의 모호한 행방, 그리고 깨진 픽셀과 뒤틀린 신체 이미지의 생경함은 미지의 세계가 불러오는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하죠. 즉 <스터디>는 실체를 알 수 없는 막연한 불안을 구현하는 공포 영화의 문법을 차용하여 안정적 세계를 의도적으로 훼손합니다. 정보와 기술이 빈틈없이 메꾼 완벽한 현대 사회에서 자신을 경험하기 위한 돌파구가 마련되길 바라면서요.

김희천, <스터디(Studies)>, 2024, 이미지 출처: 아뜰리에 에르메스

게다가 작품은 일부는 암전 된 상태에서 음향만을 송출합니다. 보이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흘러나오는 찬종의 독백과 공포영화의 클리셰적 사운드는 순간적으로 내면의 취약함을 조명하는데요. 전형적 공포 영화의 전개를 시각적으로 따라가던 관람객은 예상치 못한 어둠에 당황하게 됩니다. 동시에 내가 보고, 듣는 것조차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으며 앞으로의 전개를 더 이상 예측할 수 없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죠. 영상 작품은 완벽히 설계된 허구임에도, 관람객은 암전과 함께 그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길을 잃게 됩니다. 이런 취약한 내면이 바로 <스터디>에서 다루고자 하는 인간 존재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 허구와 실제의 경계에 존재하며, 그 경계는 외부의 자극에 의해 언제나 쉽게 전복될 수 있기 때문이죠.


‘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는 공포

화면이 암전 되고, 칠흙 같은 어둠이 깔린 가운데 찬종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합니다.

<스터디>의 핵심은 주인공 찬종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혼란과 공포 속에서, 현실과 가상, 진실과 허구, 논리와 비논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과정을 그린 것입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존재는 그의 혼란을 더욱 심화시키고, 주변 사람들은 끊임없이 아이들의 실종을 상기시킵니다. 그 과정에서 찬종은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흔적 없이 지우려던 계획조차 무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마치 실종된 아이들처럼, 자신도 실재하는 사람인지 확신할 수 없고, 존재하긴 하지만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는 점에서 더 큰 혼란을 느낍니다. 결국, 찬종은 자신이 믿고 있던 것들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심지어 자기 자신의 존재마저 의심하게 되면서 내면은 점차 와해되고 공포가 증폭됩니다.

김희천, <스터디(Studies)>, 2024
김희천, <스터디(Studies)>, 2024, 이미지 출처: BB&M 갤러리

김희천 작가의 영상 작업에서는 다루고자 하는 것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의 인간의 존재에 대한 감각 상실입니다. 방대한 데이터와 알고리즘 덕분에 우리에게 현대 사회는 매우 매끄럽고 완전한 형태로 다가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인간은 자율적 사유와 호기심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마저도 자동화된 알고리즘이 대신해주기 때문인데요. 작가는 이러한 현실을 오히려 공포스럽게 느꼈다고 말하며, 정보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스스로에게 질문조차 던지기 힘들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결국, 인간은 점차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존재가 어떻게 증명될 수 있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감각을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스터디>에서 말하는 두려움은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보의 과잉으로 인해 삶의 감각을 잃어버리게 되는 데서 시작됩니다.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인식하고 증명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찬종’처럼요. 정보와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인간의 존재감과 자율성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이러한 실존적 불안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근본적인 공포 중 하나로 자리 잡습니다.


<스터디>는 단순히 공포 영화의 장르적 장치만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 만연한 인간의 실체 없는 불안을 구체화함으로써 내면의 공포를 극대화하는 작품입니다. 기술이 촘촘하게 발전한 21세기 사회에서 사람들은 ‘나’라는 정체성마저 데이터와 매체에 의존합니다. 김희천 작가는 이런 현실이야말로 공포영화나 다름없다고 말합니다. 기술이 실현한 완벽한 유토피아가 사실은 자아를 탐구할 수 없게 하는 디스토피아가 되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스터디>는 완벽한 데이터의 세계에서의 해방되어 직접 자신을 경험하고, 아직 증명되지 않은 추상적인 자화상을 발견해 보길 제안합니다. 그리고 이는 관람자에게 존재론적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 알고 있는 ‘나’는 과연 진짜 ‘나’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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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연

하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일도 많은 미술 노동자.
경계없는 문화예술을 옹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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