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운명의 교차
타로 카드 예술가 5인

손바닥만한 캔버스에
큰 세계를 그린 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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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일이 우연하게 일어난다기엔 무언가 석연치 않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게 운명에 의해 작동된다기엔 너무나 부조리한 사건들이 많죠. 인류는 이 딜레마로 수 천 년을 고민해왔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누구나 자신에게 올 좋은 우연을 미리 알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점, 사주, 별자리, 타로 카드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서 좋은 우연을 예측해왔습니다. 그중에서도 타로 카드는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조합하는 방식으로 나의 미래를 말해주죠. 이런 신비로운 매력으로 타로카드는 여러 예술가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캔버스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타로 카드 예술에 중요한 역할을 한 예술가 5인을 만나봅니다.


예술가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아 온 타로 카드

초기의 타로 덱(deck, 타로 카드 세트를 의미)은 운세나 영적 안내가 아니라 게임 도구로 고안되었습니다. 18세기에 이르러 프랑스 신비주의자들에 의해 재해석되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타로 카드와 같은 디자인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점술 도구로 자리잡았죠. 심리학자 칼 융은 타로를 집단 무의식의 원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타로 카드가 예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 역시 18세기 말, 점술의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부터였습니다. 특히 19세기 말 상징주의 운동과 20세기 초현실주의 운동의 예술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관심은 현대까지 계속되어 회화, 조각, 설치미술, 디지털 아트 등 다양한 예술 형식에서 예술가들의 창의력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를 기반으로 한 예술가 Mieke Marple과 Christine Wang의 타로 덱을 주제로 한 전시회 ‘RELOCATION TAROT’, 이미지 출처: ever gold projects

알폰스 무하:
아르누보, 타로를 물들이다

알폰스 무하(Alfons Maria Mucha)의 아르누보 스타일은 타로카드에 예술성을 부여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아르누보 스타일이 유행했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는 서구에서 신비주의와 오컬티즘에 대한 관심이 부활한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에 타로 카드도 점술 도구로서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요. 무하는 직접 타로 카드를 그리지는 않았으나 그의 우아하고 장식적인 스타일 – 풍성한 꽃 모티프, 신비로운 여성 인물, 섬세한 선의 사용, 자연과 신화의 조화 등 – 은 신비로운 이미지와 잘 어울려서 타로의 상징적 이미지를 표현하기에 적합했습니다. 특히 그의 여성 초상화 시리즈는 타로의 황제, 정의, 별 등의 카드에 잘 구현되어 있습니다.

알폰스 무하의 장식적이고 우아한 스타일은 현대의 타로 디자인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위 작품은 알폰스 무하 <하루의 시간> (1899), 이미지 출처: Mucha Foundation

파멜라 콜먼 스미스의
라이더 웨이트 스미스 덱:
타로 카드 예술의 기준이 되다

파멜라 콜먼 스미스(Pamela Colman Smith)는 타로 카드 예술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1909년 그가 창작한 라이더-웨이트-스미스(RWS) 덱은 무하의 아르누보 풍 유려한 곡선과 장식적인 요소를 사용하여 지금 흔히 볼 수 있는 타로 카드 스타일을 확립한 작품입니다. 기존 타로 덱들이 단순히 상징만을 나열했던 것과 달리 스미스는 각 카드에 풍부한 내러티브를 부여했습니다. 복잡한 신비주의적 상징을 일상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이미지로 표현하여 타로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작가입니다.

스미스는 마법과 형이상학을 중심으로 한 신비주의 단체 황금새벽회(Golden Dawn) 회원이었습니다. RWS 덱은 스미스의 경제적 어려움과 종교적 신념을 알았던 출판업자 아서 에드워드 웨이트는 타로 카드 디자인을 의뢰하여 제작된 작품이죠. 그러나 작품 출시 3년 후 스미스는 예술을 그만두고 카톨릭으로 개종하였고 그의 이름 역시 웨이트의 그늘에 가려 잊혀졌습니다.

이미지 출처: ARTSY

살바도르 달리의 타로 덱:
초현실의 꿈을 타로에 담다

타로 카드의 매력은 20세기 최고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도 사로잡았습니다. 달리는 제임스 본드 영화 ‘Live and Let Die’의 미술 소품으로 쓰일 타로 카드 덱 제작을 의뢰받았습니다. 비록 달리의 높은 비용 때문에 영화에서는 사용되지 못했지만, 달리는 10년에 걸쳐 디자인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그 결과 특별한 커스텀 타로 덱이 탄생했습니다. 이 타로 카드 덱은 달리에게 신비주의적 관심을 불어넣은 아내 갈라에게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덱에서 달리 자신은 마술사로, 아내 갈라는 황후로 등장하며,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죽음은 배신을 상징하는 ’10개의 검’ 카드로 재해석되었습니다. 1984년에 처음 출판된 한정판 달리 타로 카드는 완판되어 그 가치를 입증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VSLA magazine

빌 그리어의 타로 덱:
자유와 자아의 초상이 되다

1970년대 뉴 에이지 열풍은 자아 발견의 도구로서 타로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빌 그리어(Bill F. Greer)의 덱은 시대 정신을 반영하여 70년대의 호화롭고 낙관적인 정신을 담아내고 있죠. 카드의 풍성한 색채와 유동적인 선, 테두리 없이 가장자리까지 확장된 일러스트레이션은 신선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또한 알몸으로 포옹하는 연인의 모습은 당시 유행하던 The Joy of Sex(1972) 삽화의 자연스럽고 관능적인 스타일을 연상시킵니다. 그리어의 덱에 나타난 강인한 여성상과 솔직한 성적 표현은 이 타로를 자기표현이 태동하던 70년대의 대표적인 문화적 산물로 자리매김하게 합니다.

이미지 출처: artsy

나미타 수닐의
드래그 인스파이어드 덱:
타로, 현대 문화의 캔버스가 되다

나미타 수닐(Namita Sunil)은 드래그 아티스트 야이콤 수시엘(Yaikhom Sushiel)과 협업하여 수시엘의 실제 공연 의상을 수닐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카드에 담았습니다. 이 작품은 타로와 드래그가 가진 ‘초월성’이라는 공통점에 주목하여 시작되었습니다. 수시엘의 새로운 룩이 등장할 때마다 카드로 그려지는 동시적인 작품으로, 태양, 마술사, 사제 등 9장의 카드가 완성되었습니다. 수닐은 먼저 22장의 메이저 카드를 완성한 후 최종적으로 78장의 완전한 덱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수닐의 일러스트레이션, 그래픽 디자인, 모델링 경험을 총체적으로 활용하는 이 작업은 현대 타로 카드의 진화하는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바로 타로가 더 이상 단순히 점술 도구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문화적 현상과 정체성을 반영하는 매체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이는 타로가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확장되는 유연한 예술 형식임을 증명하며 동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담론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캔버스의 형태로 발전하는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VOGUE India

사실 타로는 고정된 운명을 읽어내는 예언 장치가 아닙니다. 삶의 다양한 가능성을 조명하고, 우리가 그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제안하는 방법론이죠. 예술가들이 손바닥만한 캔버스에 끌린 것 역시 이 때문일 것입니다. 우연과 운명 사이에서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여정 자체를 그릴 수 있으니까요.

우연이라는 단어가 납작하게 느껴질 정도로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타로나 점같은 도구들로 불확실성의 거센 파도를 헤쳐나가려 기를 쓰고 있죠. 어떤 것이 우연인지, 운명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에 달려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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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재

해상도 높게 사랑하고자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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