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쇼핑 스팟’으로 알려진 베를린의 로젠탈러(Rosenthaler). 상점과 명품 매장, 레스토랑, 바가 줄지어 늘어서 있어 그 화려함에 정신을 빼앗깁니다. 그러던 중, 건물 사이에 무너져가는 폐허 같은 공간을 마주하게 되죠. 건물 벽에는 온갖 그래피티가 가득하고,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스티커들이 겹겹이 붙어 있습니다. 녹슨 철제로 만들어진 거대한 새가 움직이며 기괴한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히피의 도시답게 자유분방한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주변은 담배 연기로 가득합니다. 이 도심 속 낡고 어수선한 공간은 분단 시절부터 이어져 온 ‘스쾃’ 문화가 여전히 남아있는 곳, 바로 ‘슈바르첸베르크 하우스(Haus Schwarzenberg)’입니다.
폐건물을 무단 점거하기
“너희는 건물을 가졌지만 쓰지 않고 있고, 우리는 돈이 없지만 작업실이 필요하다.”
_타헬레스 스콰터(squatter)
‘스쾃(squat)’은 빈 공간을 점거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쪼그려 앉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우리가 잘 아는 운동 ‘스쿼트’도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빈 건물에 허가나 동의 없이 정착하는 모습이 쪼그려 앉는 동작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무단 점거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이죠.
스쾃은 예술가에 의해 프랑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프랑스는 산업혁명 이후 도시로 인구가 몰리는 갑작스러운 도시화 과정을 겪게 됩니다. 산업 구조의 변화로 인해 대규모 공장과 창고들이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빈 공간이 급증하게 되었죠. 이러한 격변의 시기에 사람들은 삶의 기반이 흔들리며 혼란을 겪게 되었고, 오갈 곳이 없어진 가난한 노동자들은 어쩔 수 없이 도시의 빈 건물을 무단으로 점거하여 삶의 터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스쾃’, 무단 점거의 시작입니다.
이후 여러 곳에 생겨난 스쾃은 자본주의와 자본가에 대항하는 계급 투쟁의 중심지가 되어, 사회 변화를 위한 중요한 거점으로 기능하게 되었습니다. 인간다운 자유로운 삶을 꿈꾸던 무정부주의자, 학생, 지식인, 예술가들은 자본을 독점적으로 소유하며 차별과 착취를 자행하는 사회에서 땅과 건물을 불법적으로 점거합니다. 그리고 소유주의 동의 없이 예술 활동을 펼치고, 공동체를 이루며 주류 문화에 대항하는 대안 문화를 형성해 나가죠. 이렇게 스쾃은 하나의 예술 운동으로 발전하며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베를린 스쾃의 거점,
슈바르첸베르크 하우스
(Haus Schwarzenberg)
베를린은 흔히 문화 예술의 도시이자 화려한 ‘패피’들의 집결지로 불립니다. 그 명성에 걸맞게, 자본이 만들어낸 화려함은 관광객뿐 아니라 거주민들까지 매료시키죠. 프랑스의 상황 주의자 기 드보르(Guy Debord)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스펙터클의 도시’라고 할 수 있는 베를린의 슈바르첸베르크 하우스에서 벌어진 불법 무단 점거는 전쟁 후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우연히 자본의 빈틈을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베를린 장벽 주변, 그중에서도 동독에 속했던 지역은 역사적, 정치적 이유로 인해 개발이 어려웠고, 철거나 재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건물들이 텅 빈 상태로 방치되었습니다. 제도권 밖에 있던 가난한 예술가들은 이러한 자본의 빈틈을 노려 건물을 불법으로 점거하고, 예술 활동의 기반으로 삼았죠. 당시 베를린에서는 자본주의의 물결이 넘실대며 기본적인 주거 공간조차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예술가들이 마음 놓고 창작할 수 있는 공간은 더욱 부족했습니다. 이렇게 도심이 황폐해지고 의식주를 보장받기 어려운 분위기 속에서, 예술가들은 불법적으로나마 거대한 건물들을 독점할 수 있게 되었죠. 베를린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저항과 무정부주의의 상징이던 슈바르첸베르크 하우스는 오늘날 전시 공간, 바, 영화관으로 이루어진 복합 문화 공간으로 변모했습니다. 벽면에 켜켜이 붙은 스티커와 그래피티는 익명의 자유로운 예술가들에 의해 세월을 거듭하며 쌓여왔습니다. 언뜻 보면 지저분하고 불쾌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이 공간은 사회적 이슈와 담론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캔버스입니다. 벽에 낙서를 하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이며 예술가들은 서로 소통하고, 토론하며 공감과 연대의 지점을 찾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슈바르첸베르크 하우스는 여전히 투쟁과 연대의 공동체적 예술 무대로 기능하며, 스쾃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본주의 시대의 스쾃
우발적인 저항과 투쟁의 역사에서 시작한 베를린의 예술 스쾃, 슈바르첸베르크 하우스. 하지만 한편으로, 지금의 슈바르첸베르크 하우스는 자본의 흐름에 녹아든 듯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물질적 권력에 맞서기 위해 불법 점거된 건물이었지만, 허름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마치 폐허와 같은 외관과 달리 근처의 자본을 자연스럽게 흡수하는 형태로 변모한 것입니다. 베를린이 역사적 상처를 극복하고 단기간에 관광과 ‘힙’의 명소로 부상하는 또 다른 ‘우연적 사건’이 슈바르첸베르크 하우스와 그 주변을 관광 수익의 중심지로 만들어 버린 셈입니다. 이로 인해 슈바르첸베르크 하우스는 스쾃의 본질을 잃고, 자본과 반자본의 공존이라는 모순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형태는 유지하고 있는 슈바르첸베르크 하우스와는 달리, 베를린의 또 다른 예술 스쾃이었던 타헬레스(Tacheles)와 베타니엔(Bethanien)은 재개발을 이유로 정부 주도하에 철거되었습니다. 이곳들은 베를린의 독특한 분위기와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 자리 잡았던 장소들이었죠. 작업실을 찾던 예술가들이 모여 다양한 문화 클러스터가 형성되었고, 지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관광객이 몰리고 정부와 건물의 소유주가 임대료를 요구하면서, 결국 예술가들은 다시금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나야 했습니다. 이는 마치 한국의 홍대, 문래, 성수 같은 지역에서 예술가들이 겪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한때 가난한 예술가들의 터전이었던 스쾃의 도시 베를린은 이제 독일에서 뮌헨 다음으로 땅값이 높은 도시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되었죠. 반자본과 저항을 상징하던 스쾃 문화는 더 이상 설 곳이 없는, 과거의 역사가 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공간 점거는 불법일지언정 그 공간에서의 예술 행위는 불법일 수 없다.”
빈 건물에도 주인이 존재하며, 무단 점거 행위가 불법임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불법성은 오히려 스쾃을 자본에 반하는 투쟁의 일환으로 삼을 수 있는 명분이 되어, 예술 스쾃 공동체에 독특한 정체성을 부여했죠. 분단과 통일이라는 예기치 못한 상황은 그들의 생활 기반을 뒤흔들었지만, 동시에 공간을 공유하고 불법적으로 점거할 수밖에 없었던 개인들이 서로 연대하고 행동하기 위한 동력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스쾃은 독일이 전쟁과 분단의 갈등을 겪지 않았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스쾃의 이러한 본질은 상상치도 못한 경제 발전과 세계화에 의해 다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스쾃이 점거한 땅과 건물은 다시 소수의 전유물이자 또 다른 자본 창출의 수단이 되어버리는 모순적 현실과 직접적으로 부딪혀야 했기 때문이죠. 오늘날의 스쾃은 과거의 저항 정신을 이어가는 동시에, 현대 사회의 복잡한 요구에 대응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하는 지점에 놓여 있습니다.
- 민진영. (2013). “프랑스 예술 스쾃 운동 연구.” 한국프랑스학논집 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