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은 독점하지 않고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오래 견지하며 설명하지 않아도 나의 향기를 사유한다는 것을 고요히 증명하곤 합니다. 누구의 인정도 동의도 필요로 하지 않는 취향은 삶과 직결되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감각적인 소비는 때론 누군가의 세상을 넓혀주기도 합니다. 필자는 이 감각적인 소비를 장르화하는 감각의 정수는 아트 디렉터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큰 브랜드의 이미지 속에 숨기면서 독창적인 언어와 경험을 브랜드 전체에 녹여내며 비로소 자신을 증명하기 때문이죠.
필자 또한 안티에그에서 글을 쓰는 창작자이기에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눈의 근육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편적으로 웹진, 인스타그램을 찾아보는 것도 물론 도움이 되지만, 이는 레퍼런스를 수집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고유명사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견고한 힘을 탐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아트 디렉터들이 사유하는 시선, 그리고 이를 통해 구현해낸 언어와 기억들이 어떠한지 탐미한다면 독자에게 더 좋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 그들의 시선이 담긴 책을 읽어보고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언어의 우아한 맛을 느끼고 싶다면,
박선아 아트 디렉터의 『우아한 언어』
젠틀몬스터의 F&B브랜드인 누데이크를 방문하면, 미래적이고 미니멀한 감각으로 압도되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합니다. 디저트라는 매개체를 통해 모든 감각을 아우르며 그들의 아이덴티티를 전개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시대를 앞서나가는 브랜드, 누데이크의 이미지를 디렉팅한 박선아 디렉터가 전하는 언어의 우아한 맛은 어떨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우아한 언어는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눈의 감각과 오랜 경험과 배움으로 길러진 눈의 근육, 그리고 그를 통해 발화되는 사진을 주제로 담아낸 에세이 입니다.
“이해라는 단어는 그것이 존재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 아니라, 시도하기 위해 생긴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세상에는 이해했다거나 받았다는 오해만이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요? 나와 타인 사이에 그런 시도가 있었더라면 그저 그 과정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을거라 여깁니다.”
_박선아, 『우아한 언어』
에세이를 찬찬히 읽다 보면 그녀가 가지고 있는 태도나 생각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게 됩니다. 미학에 관한 관심, 그리고 집요한 관찰로 다져진 눈의 근육은 그녀의 세계를 구축하며 그 세계는 허영과는 거리가 먼 내밀하고도 진실한 문장을 발화하기에 말이죠. 이러한 허울 없고 자연스러운 문장들은 아담한 책에 담겨 있습니다.
“작은 카메라는 거짓말을 하고 싶을 때 정직할 수 있게끔 도와준다. 커다란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누르는 순간 우리의 시간이 카메라의 크기만큼 망가질 것이다.”
_박선아, 『우아한 언어』
우리가 찍고 싶었던 순간들이 달아나는 건 대포 카메라와 같은 큰 카메라를 사용할 때인 것 같습니다. 작은 카메라의 단렌즈는 피사체와 나 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 없기에 그저 있는 그대로 찍지요. 그렇기에 있는 그대로 찍었던 순간들은 오히려 내가 찍고 싶었던 진짜를 찍게 됩니다. 책의 크기가 작았던 것은 아마도 저자의 내밀한 이야기를 독자에게 향할 수 있을 만큼 친근하게 전하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순간을 함께하는 수동카메라와 같은 크기, 그리고 오래된 느낌의 타이프 라이터체마저 그녀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이 담겨있습니다.
무인 양품 디자인을 언어화 한다면,
하라 켄야의 『디자인의 디자인』
“디자이너가 할 일은 정보의 핵심을 누구나 섭취하기 쉬운 상태로 친절하게 정리정돈해주는 것이다.”
_하라 켄야, 『디자인의 디자인』
무인양품하면 브랜드 네이밍 그 자체가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 제품 퀄리티, 합리적인 가격까지. 제품 자체의 기능, 본질에 충실하다는 점은 제품을 구매하고 사용하면서 느낄 수 있는 자명한 점이죠. 유행을 타지 않는 기본에 충실한 제품이기에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흰 밥 같은 그리 대단하지는 않지만, 여러 반찬과 어우러지면서 근사한 맛을 내고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무인양품을 브랜딩한 하라 켄야, 그가 쓴 『디자인의 디자인』은 무인양품스럽게 디자인에 대해 서술합니다.
“사회의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석해나가는 과정에 디자인의 본질이 있다”
_ 하라 켄야, 『디자인의 디자인』
이 책에서는 하라 켄야가 말하는 디자인이란 무엇인지를 서술합니다. 디자인이라 하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어제보다 더 의미 있는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눈에 보여지는 결과 뿐만 아니라, 서사와 맥락마저도 이해시킬 수 있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하라 켄야와 독자, 그리고 무인양품의 소비자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는 시각적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간명하면서도 탁월한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습니다.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석해나가는 과정을 무인양품의 디자인으로 녹여내듯, 그의 글에서도 디자이너로서 겪을 수 있는 고민을 발견하고, 그의 시선을 책으로 녹여냈습니다. 무인양품스럽게 담백하나, 그 본질에 충실한 하라 켄야의 시야를 탐미하고 싶은 분들에게 하라 켄야의 디자인의 디자인을 추천합니다.
감각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담백한 취향,
김기열의 『하찮은 취향』
나만의 취향을 가진다는 건 때로는 고독한 여정일지도 모릅니다. 개인의 취향을 다른 누군가가 이해하고 좋아해 줄 확률은 그리 크지는 않기 때문이죠. 감각적 세계를 사유하고 있는 누군가의 취향을 볼 수만 있다면 취향을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될텐데 말이죠. 여기 GQ의 아트 디렉터인 김기열 디자이너가 모은 물건을 기록한 아카이브 북인 『하찮은 취향』을 읽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보다 취향은 사사로운 것으로부터 시작될지도 모르겠다는 것 말이죠. 책 속에 자신의 취향이라고 밝힌 101개의 물건들은 디자인 거장의 물건도, 값비싼 아이템도 아닙니다. 오히려 소소하고 다양한 종류의 물건들이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꽤 오랜 시간 모아온 물건이 저자에게는 소중하지만 타인에게는 하찮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붙여진 제목 ‘하찮은 취향’이지만, 물건들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에 감탄하게 됩니다. 그저 어디에서 왜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가 아닌, 물건이 자신에게 어떤 존재가 되었는 지 어떤 시간을 만들어 주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어쩌면 그가 소유하는 물건은 그가 지닌 감각적 세계를 구성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무언가 소비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삶을 살아가면서 보여주는 태도를 대변해주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특정 브랜드의 물건을 소비할 땐 그 안에 숨겨둔 이야기 또한 사유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브랜드 전체에 숨을 불어넣는 아트 디렉터의 시각을 언어로 맛볼 수 있다는 건,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가까운 주위에 둘 수 있다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결국 우리에게는 좋은 레퍼런스가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창작자가 아니라도 말이죠. 감각적인 소비가 우리의 세상을 넓혀주는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