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소비’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저는 왜인지 화려하고 반짝이는 대도시와 백화점, 고급스럽고 우아한 소품이나 악세사리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이를 대표하는 단어는 ‘명품’이 될 수 있겠지요. 국내외 대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명품 거리는 빠지지 않는 인기 코스입니다. 파리의 샹젤리제, 도쿄의 오모테산도 등 명품매장의 거리는 여행객으로 늘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서로 다른 매력을 뽐내며 디자인된 매장들이 개성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이는 곧 동네의 활기찬 분위기를 형성하기 때문이죠. 명품 매장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담아내고, 홍보하기 위해 상징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명품이라는 소비재를 다루는 기업은 건물에 브랜드의 이미지를 투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맥락에서 건축을 매개로 명품 브랜드의 가치를 훌륭하게 투영해 낸 대표적인 건물을 소개합니다.
프랭크 게리
– 루이 비통 파운데이션
루이 비통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로고의 디자인, 그리고 그것으로 이루어진 패턴은 명품의 상징처럼 다가올 만큼 지대한 영향력을 가진 브랜드이죠. 2014년, 루이 비통은 정부와 협력하여 파리 서부에 상징적인 건축물 루이 비통 파운데이션을 설립하였습니다. 루이 비통 파운데이션은 미술전시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활동을 즐길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입니다. 건물 내부에는 다양한 규모의 전시관과 대규모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도 포함되어 있지요. 전시관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유명 작품이 전시되어 미술관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합니다. 무엇보다 파리 시민에게 사랑받는 공원인 볼로뉴 숲에 위치하여 문화적으로 더욱 풍요로운 삶을 제공하게 되었지요.
외관의 모습은 상당히 미래적이고 혁신적인 형태로 디자인되었습니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통해서 이른바 빌바오 효과를 이끌어내기도 한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에 의해 설계되었지요. 얼마 전 안티에그에서 소개된 바 있는 그는 늘 새로운 건축을 추구하며, 그 갈래에는 신선하고 도전적인 형태가 주를 이룹니다. 루이 비통 파운데이션 역시 그를 상징하는 비정형적인 디자인이 정교하게 구현되었습니다. 건물의 미학적인 형태뿐만 아니라 파리라는 도시, 그리고 루이 비통이라는 상징성 덕분에 그의 대표작으로 소개되기도 하지요. 거대한 선박, 날개를 접은 딱정벌레 등 다양한 이미지가 연상되기도 하는 이 건물은 독립적인 오브제가 되어 공원을 생경한 분위기로 재탄생시켰습니다.
루이비통이 추구하는 이미지는 젊고 트렌디한 느낌이라고 합니다. 기존의 보편적인 건축물의 형태에서 벗어난 새로운 유형의 디자인은 그 자체로 트렌디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브랜드의 정체성과 건축가의 철학이 잘 어우러진 셈이지요. 화려한 디자인 이면에는 기능적으로 불필요한 유리와 이를 지탱하는 수많은 구조물, 비정형의 벽체로 인해 생겨나는 불필요한 공간 등 불합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체도 루이 비통이 추구하는 방향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혁신에 대한 헌신의 가치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죠.
렘 쿨하스
– 프라다 파운데이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라는 소설이나 영화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내용은 모르더라도 다들 제목은 한 번씩 들어봤을 만큼 유명한 작품이지요. 프라다는 소설의 제목으로 쓰일 만큼 패션계를 상징하는 명품 브랜드입니다. 프라다 역시 문화재단인 프라다 파운데이션을 통해 현대미술과의 지속적인 교류에 힘쓰고 있습니다. 최초의 프라다 파운데이션은 베니스에 설립되어 운영되었고, 2018년에 프라다의 기원이 되는 밀라노에도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밀라노에 설립된 프라다 파운데이션은 건축가 렘 콜하스가 이끄는 OMA에 의해 디자인되었습니다. 하루의 절반 가까이 비행기에서 보낸다는 이야기도 있을 만큼 세계적인 건축가 렘 콜하스는 현대건축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인물입니다. 그의 디자인 철학을 간단하게 설명하기에는 그 내용의 방대함과 깊이로 인해 어렵지요. 그럼에도 넓은 관점에서 렘 쿨하스의 일관된 건축적 태도를 살펴본다면 간결하고 모던한 디자인, 현대적이고 세련된 재료와 디테일의 사용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프라다 파운데이션에도 그의 스타일이 잘 표현되었지요.
해당 프로젝트는 유산이 되어버린 옛 산업시설인 증류소를 개조하여 만들어졌습니다. 낙후된 창고, 공장 등을 전시공간과 같은 시설로 변형시켜 사용하는 것은 마치 유행처럼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는 거대한 공간이라는 물리적 환경이 전시하기에 적합할 뿐만 아니라,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는 특별한 장소성을 제공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렘 쿨하스는 기존시설을 리노베이션 하는 과정에서 조금 다른 접근을 하였습니다. 기존의 건물을 그대로 두고, 주변에 새로운 건물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디자인하였지요. 이에 옛것과 새것이 대조를 이루고 더 나아가 수평과 수직, 개방과 폐쇄, 넓음과 좁음 등 다양한 요소가 충돌하며 새로운 경관을 연출합니다. 또한, 새로 들어선 건물은 단정한 외관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기존의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입니다.
프라다는 기본을 중시하며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철학을 지닙니다. 낡고 오래된 건물에 대한 가치를 존중하고, 오히려 새로운 건물과의 조화를 통해 매력을 되찾을 수 있었던 프라다 파운데이션에서 프라다의 가치관이 명확하게 읽히는 듯합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의 전시를 감상하는 것은 물론, 밀라노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것에서 이 건물의 또 다른 가치를 찾을 수도 있지요.
렌조 피아노
– 메종 에르메스
에르메스는 명품계의 명품이라는 평가에 반박의 여지가 없는 브랜드입니다. 고유한 전통성과 희소성으로 유명하여 백화점의 입점에도 기준이 가장 엄격한 브랜드이기도 하지요. 프랑스 파리에 기반을 둔 에르메스의 대표 건축물은 도쿄 올드머니의 상징인 긴자에 위치합니다. 긴자는 도쿄의 쇼핑 중심지이며, 그중에서도 명품쇼핑으로 잘 알려진 동네입니다. 고층빌딩 사이에서 유독 부드럽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건축물이 발견되는데, 그것이 메종 에르메스이지요. 에르메스의 일본 지점 본사이자 매장으로 쓰이며, 일부 공간은 미술관으로 제공됩니다.
메종 에르메스는 하이테크 건축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에 의해 설계되었습니다. 퐁피두센터를 설계하기도 한 그는 우리나라의 광화문 KT 사옥을 디자인했습니다. 렌조 피아노는 투명한 유리 커튼월과 공학적인 아름다움이 깃든 철골 구조부재를 통해 도전적이면서 절제된 디자인을 구사하는 것이 특징이지요. 특히 고층 오피스와 같은 빌딩을 주력으로 하는 그의 포트폴리오에서 메종 에르메스는 초기작이면서 동시에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중요한 건물입니다.
형태적으로는 단순한 박스형으로 계획되었으나 외장 마감으로 쓰인 재료에서 독보적인 특징을 지닙니다. 사진에서도 보이듯이 유리블럭이 건물 전체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2001년에 지어진 메종 에르메스는 현재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큰 유리블럭 건물이라는 수식어를 자랑합니다. 정밀한 공학적 계산에 의해 45cm x 45cm의 유리블럭 모듈이 결정되었고, 고도의 건설기술이 도입되어 시공되었지요. 반투명한 성질의 유리블럭은 건물 내외부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여 도시와의 소통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유리를 투과한 빛은 실내에서 은은한 간접조명의 역할을 하며 에르메스의 제품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전시공간 역시 비슷한 환경으로 연출되어 색다른 미술관의 경험을 제공하지요. 특히 밤에는 건물 내부의 조명이 은은하게 퍼져 나가면서 마치 도시에 놓인 거대한 무드등의 역할을 하는 듯 보입니다. 브랜드의 상징인 주황색이 건축물로 은유 되어 투영된 것처럼 말이죠. 이는 장인정신을 기반으로 하여 재료에 관한 끊임없는 탐구를 중요한 원칙으로 삼는 에르메스의 기업 이념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생산과 소비는 사회를 작동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장치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무언가를 소비하고, 또 생산하기도 하지요. 그것은 우리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필수품부터, 문화적 향유를 위한 소비까지 다양한 영역을 망라합니다. 명품 브랜드는 단순한 재화로서의 소비가 아닌, 그 이상의 가치를 투자하는 것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곤 합니다. 명품 이외의 다양한 기업들 역시 그들의 건물에 기업가치를 담아내고자 하지요.
홍익대학교 유현준 교수에 의하면 ‘걷고 싶은 거리’에는 적당한 상업시설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합니다. 구경거리가 많아지고 발걸음이 느려지면서 거리 곳곳에 다양한 이벤트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더해 각각의 상업시설이 다양한 형태로 디자인되어 거리에 놓이는 것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거리를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 내기 때문이지요.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는 요즘, 바깥을 산책하는 것은 금세 찾아올 추위를 생각하면 소중한 특권처럼 여겨집니다. 이러한 가을을 만끽하며 도시를 거닐어 봅시다. 주변의 건물들에 담겨진 의도와 숨겨진 이야기에 잠시 귀 기울이며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