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씨 탓에 마음마저 얼어붙는 듯한 계절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이 훈훈해지는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언뜻 보기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공통의 무언가를 통해 소중한 관계가 되어 갑니다. 추운 겨울,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이는 따뜻한 만화 3선입니다.
무엇을 좋아하든
함께 나눌 수 있다면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
75세 할머니 유키와 17세 여고생 우라라의 BL 소설로 맺어진 우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유키는 우연히 서점에서 아름다운 그림에 매료되어 만화책 한 권을 집어 듭니다. BL 만화였죠. 그 모습은 서점에서 일하는 우라라의 눈에 들어옵니다. 그녀 역시 방에 BL 만화를 숨겨 놓고 읽는 팬이었죠. 우라라는 후속편을 사기 위해 서점에 다시 들른 유키를 보며 내심 기뻐합니다.
공통의 취미 덕분에 두 사람은 친구가 됩니다. 서점 직원과 손님으로 한두 마디씩 말문을 트고, 전화번호를 교환하죠. 학교에서도 겉도는 듯한 우라라는 BL 만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큼은 활기가 넘칩니다. 두 사람은 서로가 있어 조금씩 새로운 경험을 마주합니다. 함께 만화 축제에 놀러 가고, 직접 만화를 만들어 판매자로 축제에 참여까지 하죠. 더 이상 새로운 게 없으리라 믿었던 노년의 삶에 신선한 즐거움이 채워지고, 의욕 없이 하루하루 지내던 소녀의 삶에 밝은 에너지와 긍정적인 기운이 스며듭니다. 좋아하는 것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삶은 더욱 건강해지는 가 봅니다.
어두운 마음의 문을 여는
사람의 빛깔
『아카리』
이 만화는 오랜 기간 만나지 않았던 할아버지와 손녀가 재회해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들며 어두웠던 마음의 빛을 밝히는 이야기입니다. 스테인드글라스 장인 카가리는 아내와 사별 후 작은 유리 램프 하나도 만들지 못할 만큼 망가져 있습니다. 카가리는 예고도 없이 찾아온 손녀 아카리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빈방을 내어주고, 두 사람은 갑작스러운 한집살이를 시작합니다.
아카리의 재능은 카가리에게 새로운 동기를 부여합니다. 유리 조각의 미묘한 색감을 느끼고, 자신이 바라본 풍경의 아름다운 빛을 표현하려는 순수하고 섬세한 아카리의 시선은 오랜 시간 굳어있던 장인의 생각을 조금씩 열어줍니다. 한편, 비밀을 품고 있던 아카리의 삶은 암흑과 같았습니다. 카가리의 유리 공방은 그녀에게 오래 머물고 싶은 따뜻한 빛이 나는 곳이었죠. 그녀는 원하는 대로 유리의 모양과 색깔을 제작하며 마음처럼 풀리지 않았던 삶을 새로이 만들어갑니다.
두 사람의 짧은 만남은 서로의 마음에 긴 여운을 남깁니다. 어둠 속에서도 자신만의 빛을 밝히고 나아가게 되었죠. 빛을 다루는 흑백 만화는 독자의 상상을 자극합니다. 컬러로 빛을 표현한 후반부의 클라이맥스에 도달하는 순간 감동은 배가 됩니다.
멈출 수 없는 감정의
섬세한 궤적
『물은 바다를 향해 흐른다』
쉐어하우스에 사는 삼촌을 따라 이사 온 나오타쓰는 그곳에서 사카키를 만납니다. 사카키의 엄마와 나오타쓰의 아빠는 과거 불륜 관계였습니다. 10대 시절, 집 나간 엄마를 기억하는 사카키는 자신보다 어렸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나오타쓰를 평범하게 대하기 위해 애씁니다. 그러나 영원한 비밀이 있을 리 없죠. 나오타쓰는 이제야 아빠의 과거를 알게 된 자신보다 훨씬 힘든 시절을 보낸 사카키를 떠올리며 계속 모른 척 착한 아이로 남고자 합니다.
하지만 물이 바다를 향해 흐르듯 기우는 마음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나오타쓰는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지낸 듯한 자신의 부모를 떠올리며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사카키가 실은 마음껏 화내고 싶은 게 아닐지 생각하죠. 마침내 서로의 존재를 깊이 의식하게 된 두 사람은 더 이상 불편한 악연이 아닌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유일한 관계가 되어 갑니다.
친구 혹은 가족이 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잇는 유일한 끈은 공감과 이해입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단 한 명이 삶을 바꾸는 전부가 될 수 있죠. 잔잔하게 퍼지는 감동이 있는 세 편의 만화를 통해 누군가의 마음에 진심으로 귀 기울일 수 있는 따스함을 채워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