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리켄이 꿈꾸는
다정한 이웃 공동체

느슨한 경계를 통한
공동체 회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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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금자리’, ‘안식처’와 같은 단어는 집을 떠올릴 때 흔히 사용되는 표현으로, 안전하고 따뜻한 이미지를 자아냅니다. 이는 건축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과 맞닿아 있습니다. 건축은 인공적인 구조물을 통해 내부 공간을 만들고, 외부 환경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건축공간은 비와 바람, 그리고 최근 우리를 힘들게 했던 폭설과 같은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삶을 가능케 하지요. 이는 자연과 우리를 물리적으로 분리하는 경계에서 비롯된 기능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물리적 경계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경계를 낳기도 합니다. 바로 공동체 혹은 소통의 단절과 같은 경계이지요. 사생활 보호, 안전이라는 명분 아래 점차 폐쇄적으로 변모하는 건축의 형태는 이러한 사회적 단절을 심화시키기도 합니다. 모두가 편리함과 효율을 강조할 때,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건축적 연구와 실천을 이어간 건축가가 있습니다. 바로 야마모토 리켄입니다. 그의 건축 철학과 작품을 함께 만나보시죠.


야마모토 리켄

야마모토 리켄은 2024년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하며 세상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프리츠커상은 흔히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수식어를 통해 우리에게 소개되는 세계적 권위의 건축상입니다. 53번째 수상자인 그는 9번째 일본 수상자이기도 합니다. 이번 수상은 우리 사회에서 ‘왜 한국은 프리츠커상을 받지 못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통해 건축 담론의 새로운 장을 열기도 하였지요. 프리츠커상을 주관하는 하얏트 재단은 그의 다양한 건축적 활동과 업적을 높이 평가합니다. 특히, 그는 지역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모든 공간은 궁극적으로 사람을 위해야 한다는 건축의 본질적 가치를 강조해 왔습니다. 그의 행보는 건축이 단순히 공간의 창조를 넘어, 사회와 인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미지 출처: archdaily

전 세계를 무대로 작품활동을 펼쳐온 그이지만, 특별히 랜드마크적인 건물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형태적으로 절제되고 단정한 디자인은 그의 여러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기 때문이지요. 화려하고 아름다운 외관은 그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커뮤니티, 즉 공동체와 관련된 사회 전반의 이슈가 그가 집중하고 있는 대상입니다.

Local Community Area, 이미지 출처: Riken Yamamoto & Field Shop

야마모토 리켄은 기존의 건축 시스템에 대한 대안으로 ‘지역사회권’ 이라는 개념을 제안하며 변화를 유도합니다. 이 개념의 핵심은 공용공간의 중요성에 있습니다. 그는 전용공간을 줄이고 공용공간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심지어, 화장실이나 주방과 같은 공간도, 공용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실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지요. 이러한 그의 철학과 개념이 담긴 공동주택이 우리나라에도 존재합니다. 먼저 판교하우징을 소개합니다.


판교 하우징

판교 하우징은 LH공사가 주도한 프로젝트로, 야마모토 리켄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국내 최초의 시도였습니다. 2010년에 지어진 이 공동주택은 약 100가구의 조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3~4층의 저층 주거건물이 9개의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지요. 단면상의 구조를 살펴보면, 지하 1층은 주차장, 1층은 거실 및 주방, 2층은 넓은 현관, 3층은 침실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2층의 넓은 현관이 모두 통유리로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소규모 상업시설이 거리를 향해 홍보를 하려는 듯 깨끗한 유리로 마감되어있지요. 당시 이러한 디자인은 외부로부터 완벽히 보호받아야 한다는 기존 주거의 틀을 벗어난 파격적인 시도로 여겨졌습니다. 결과적으로, 판교 하우징은 당시 판교 내 유일한 미분양 사례로 곤욕을 겪기도 했지요.

이미지 출처: 남궁선

야마모토 리켄의 의도는 서로다른 사람들이 모인 이곳에 각각의 개방적인 현관을 다양하게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취미활동을 하거나, 아이들의 놀이방, 혹은 손님들을 맞이하는 응접실 등으로 이용하도록 말이죠. 또한, 2층 현관과 연결된 커먼데크(common deck)를 제안하여 외부공간에서도 커뮤니티가 발생할 수 있도록 의도했습니다. 마치 하나의 작은 마을을 상상했던 것이죠. 이렇듯 그의 출발은 경계를 허무는 것에 있었습니다. 가족과 이웃, 사생활과 공동체는 서로 양립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개방된 공용공간을 해법으로 풀이한 셈이지요.

판교하우징 단면도, 이미지 출처: world-architects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까요?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이 독특한 집에 마음을 연 사람들이 모여 분양이 완료되고 입주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건축가의 의도에 맞게 그들의 자생적인 커뮤니티가 하나의 문화로서 자리 잡았습니다. 주말 아침이면 이웃들이 함께 티타임을 즐기고, 현관을 화실로 사용하는 집에서는 다 같이 모여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다수에게 물음표를 짓게 했던 그의 의도가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었다고 보입니다. 최근, 주민들이 건축가인 야마모토 리켄을 초청하여 다 같이 파티를 즐기기도 했으니 말이에요.

이미지 출처: 남궁선

강남 하우징

판교 하우징이 완공된 2010년에, 강남 세곡동에 그린벨트가 해제되며 공동주택 건립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야마모토 리켄이 국제 공모를 통해 당선되어 하나의 단지를 맡아서 설계했습니다. 판교 하우징과 마찬가지로 이 사업 역시 LH가 주도했으며, 당시 정부의 핵심 정책 중 하나였던 ‘보금자리주택’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로 추진되었습니다. 규모는 판교의 10배인 약 1,000가구를 위한 공동주택입니다. 또한,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목적의 주택이라는 것이 그 차이점이었지요.

이미지 출처: Riken Yamamoto & Field Shop

이번 설계에서도 핵심은 여전히 ‘공동체 활성화’였습니다. 겉보기에는 흔히 볼 수 있는 복도식 아파트의 배치를 따르는 듯하지만, 각 동의 주거유닛은 서로의 현관이 마주 보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물리적으로는 분리되어 있어도 시각적으로는 소통할 수 있도록 계획된 것입니다. 그 사이의 외부공간은 커먼필드(common field)라는 개념으로 공동주방, 주민도서관 등이 놓이게 되었습니다. 또한, 한옥의 마당과 사랑방의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디자인에 활용하였습니다. 공용공간인 복도가 단순한 통로 목적이 아닌,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는 교류의 장을 의도했던 것이지요.

이미지 출처: Riken Yamamoto & Field Shop

소통하는 현관을 위해 계획된 투명한 출입문은 입주자들의 거센 반발로 인해 결국 불투명 시트지로 덮이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판교 하우징과는 다르게, 조금은 실패한 프로젝트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작품은 프리츠커상 수상 시 그의 대표작으로 소개되지 않았으며, 실 거주민들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지요. 그것은 임대아파트라는 시스템적 한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현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지나친 이상주의적 판단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건축계에서는 지역공동체에 대한 논의를 촉발한 훌륭한 사례로 남아있기에 충분히 가치가 있는 작품이지요.

이미지 출처: 남궁선

최근 가수 로제의 ‘APT’가 성공적인 인기몰이를 하며 가요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이제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해진 아파트. 혹시 아파트 구성의 기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다양한 역사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이겠지만 야마모토 리켄은 세계대전 이후 주택의 대량공급을 위해 지어진 합리성에 기반을 둔 형식임을 강조합니다. 여기에는 소위 안방이라 불리는 부부침실이 전후 인구의 증가를 목적으로 계획되었다는 재미있는 사실도 숨어있지요. 즉, 당시에는 합리적이었지만 지금의 사회적 요구에는 맞지 않다고 비판적으로 말합니다.

이미 심각한 노령화를 겪고 있는 일본의 상황에서, 미래 사회의 해답을 공동체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양한 사회문제가 거론되는 시점에서 그의 건축적인 시도는 좋은 시사점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서로 상부상조하며 살아가는 사람 냄새 나는 공동체를 잊은 지 오래됐습니다. 그러나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만 같았던 단어인 ‘이웃사촌’의 개념을 판교 하우징에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단서는 느슨한 물리적 경계, 그리고 이에 자연스럽게 허물어진 마음의 경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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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현

글을 짓고, 집도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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