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언어, 사진의 경계를
밀고나가는 예술가들

자신만의 보폭으로
경계를 넓혀나가는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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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상상하는 일은 아득합니다. 중심부를 벗어나 어떤 것이 끝나고 또 생겨나는 그 지점을 바라보는 일은 맨눈으로 해의 경계를 보려 애쓰는 순간처럼 쉽지 않습니다. 경계에 대해 숙고하며 그것을 천천히 밀어 넓혀나가는 사람을 우리는 기꺼이 예술가라 부릅니다. 일상에 가득해 그 존재감이 흐려진 소리와 언어, 사진에 대해 숙고하며 그 경계를 넓혀가는 예술가를 만나봅니다.


일상의 소리를 담아낸
음악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일상은 소리로 가득합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 바람이 나무를 스치는 소리, 등굣길에 조잘거리는 웃음소리···. 청각은 어쩌면 가장 수동적인 감각입니다. 눈꺼풀도 입술도 없는 귀는 공간을 가로지르는 소리를 그저 들어버립니다. 하지만 세상을 채운 모든 소리를 해석한다는 건 피로한 일이죠. 우리는 나름의 기준으로 소리의 존재감을 지우고 선별된 소리를 듣습니다. 소리에 있어 각자만의 인식이 있다면 이런 것이 궁금해집니다. 음악가가 듣는 세상은 어떨까요?

이미지 출처: kab Inc.

사카모토 류이치는 소리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음악을 만듭니다. 현대 음악이라는 구분이 좁게 느껴졌던 그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음악의 세계를 누빕니다. YMO로 활용하며 테크노 팝의 선구자로 음악의 경계를 넓히던 그는 영화 음악의 세계로 들어서며 하우스 음악, 힙합, 클래식, 오케스트라, 일렉트로닉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리의 형식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을 이어 나갑니다.

이미지 출처: 영화 ‘코다’

그가 듣고 인식하는 소리가 음악으로 만들어집니다. 다큐멘터리 <코다>에서 그는 지속되는, 사라지지 않는 약해지지 않는 소리를 찾아 쓰나미에서 살아남은 피아노를 만나고, 숲에 버려진 장난감을 두드리고, 양동이 위로 떨어지는 비의 소리를 발견합니다. 그가 들었던 자연스러운 소리는 앨범 <async>에 담깁니다. 음악의 경계를 천천히 밀고 나가며 그가 듣고 있는 세계를 들려주었던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에서 영원한 소리를 만나보세요.


<async> 재생 페이지


말문이 막히는 현실을 담아낸
소설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때때로 고통스럽습니다. 말문이 막히는 순간은 자신과 타인 사이의 넘을 수 없는 경계를 목도하게 합니다. 소설을 읽는 것은 자꾸만 엇나가는 단어를 제자리에 잡아둔 세계가 필요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소설의 세계에서 다루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말문이 막히는 그 모든 현실입니다. 소설가는 이러한 삶과 언어의 경계를 어떻게 다루어 낼까요.

이미지 출처: 조선비즈

김훈은 이 경계에서 눈을 돌리지 않은 채 물기 없는 문장으로 소설을 씁니다. 오랜 기간 기자로 활동하며 삶과 맞닿은 글을 써낸 그는 1995년 소설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삶과 언어의 경계를 탐구합니다. 그의 소설은 주로 단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주어와 동사가 바짝 붙으면 문장에 물기가 메말라서 뻣뻣해지지만 문장 속에서 판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선명히 알 수 있고, 문장이 지향하는 바가 뚜렷’해 집니다.

이미지 출처: 문학사상

의미를 선명하게 담아낸 문장은 그의 숙고를 해상도 높게 전달합니다. 소설 『화장』에서 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아내를 지켜보는 인물의 입을 통해 그는 이렇게 씁니다. “나는 아내의 고통을 알 수 없었다. 나는 다만 아내의 고통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고통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문장에서 말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한 그의 태도는 명확합니다. 말할 수 없는 것은 그저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의 발화는 타인의 고통을 왜곡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고통만을 명확하게 봅니다. 그 구분이 타인의 고통이라는 모호함을 이해하는 가장 윤리적인 방법이 됩니다.


『화장』 구매 페이지


철학적 사유를 담아낸
사진

사진은 그 어느 때보다 익숙한 매체가 되었습니다. 오늘따라 눈에 들어오는 하늘이나,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본 친구들,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풍경처럼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휴대폰 카메라로 쉽게 담아낼 수 있습니다. 사진은 순간의 시선을 보존합니다. 누군가가 찍은 사진을 보는 일은 그가 섰던 그 시간, 그 자리에 서서 순간을 공유하는 일입니다. 누군가의 시선에 선다면 그의 생각을 엿볼 수도 있을까요. 사진의 경계를 넓혀나가며 사유를 확장하는 사진가의 시선을 만나봅니다.

이미지 출처: 구겐하임 미술관

히로시 스기모토는 미술, 역사, 과학, 종교, 동서양 철학을 넘나들며 폭넓은 관심과 사유를 사진에 투영합니다.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지우는 디지털 조작 사진이 범람하는 요즘, 그의 시선은 다른 쪽을 향합니다. 흑백으로 표현되는 형식적 간결함과 현대문명, 시간, 의식의 기원 등 근원을 숙고하는 철학적 깊이는 그의 사진을 오래 바라보게 만듭니다.

이미지 출처: sugimotohiroshi.com

1976년부터 2015년까지 촬영된 <극장들 (Theaters)> 시리즈는 사진의 전제를 순간에서 시간으로 확장합니다. 그는 실제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서 장노출로 상영 시간 전체를 촬영합니다. 당시를 기준으로 약 17만 개의 프레임을 사진 한 장에 담아낸 것입니다. 축적된 잔상은 빛나는 화면으로 남습니다. 존재의 증명이라는 사진의 오래된 의미는 하얗게 바래고 관객은 비어 있는 화면을 보며 압축된 시간 속에 다시 각자의 의미를 채워 넣습니다.


<극장들 (Theaters)> 아트워크 페이지


소리는 음악이, 언어는 글이, 시선은 사진이 됩니다. 그들의 사유, 감정, 경험은 각자의 도구를 통해 작품으로 표현됩니다. 어쩌면 모든 작품은 세상에 나타나는 과정에서 그 온전함을 잃고 부득이하게 열화됩니다. 하지만 그 열화를 통해 우리는 이어짐을 얻습니다. 사유와 표현 사이의 지난한 고뇌는 찢어지지 않는 막을 계속해서 밀고 나가는 것과 닮았습니다. 기어코 작품이 우리 앞에 도착했을 때 그 막을 앞에 두고 손을 겹칩니다. 넓어지며 얇아진 막 사이로 느껴지는 온기가 마음을 움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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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

시선이 오래 머무는 것에 대해 씁니다.
영감을 발견하고 나르고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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