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부터 우리는 국회의사당으로, 광화문으로, 남태령으로, 한강진으로, 전국 각지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현실이라 믿기 어려운 비상계엄 사태를 규탄하며 광장에 모여 시위를 하고 행진을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면서 분노하고 힘을 얻는 가운데 ‘시위’의 의미와 역할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흔히 시위하면 머리에 띠를 둘러매고 고함치는 시위대와 이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공권력, 충돌과 폭력의 현장이 그려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다른 시위의 모습도 있음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음악을 통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최근 시위에서 K-POP 그룹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함께 열창하고, 에스파의 ‘Whiplash’에 맞춰 탄핵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그리고 왜 시위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을까요?
민중가요의 시작
처음 시위 현장에서 불린 노래는 ‘다시 만난 세계’와 같은 대중가요와는 사뭇 다른 음악이었습니다. ‘민중가요’로 일컬어지는 음악은 대중이 권력, 비리 등에 반발해 시위와 집회에서 부르는 노래를 의미합니다. 말 그대로 노래를 부르는 목적이 명확하며, 저항정신과 비판의식을 주제로 합니다. 역사적으로 일제강점기 항일운동, 4·19혁명, 이어진 민주화운동에서 불린 노래들을 포함합니다.
이러한 초기 민중가요는 독자적으로 작곡된 곡이 아니었습니다. 기존에 존재하는 가곡과 민요 등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1970년대 후반, 대학가를 중심으로 학생운동이 활발해지면서 민중가요도 새로운 부흥기를 맞습니다. 당시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일명 ‘운동권’이 형성되면서 운동권 음악이 하나의 문화로 발전합니다. 대학교 내 노래패를 만들고, 음악을 직접 제작하고 유통하면서 더 적극적이고 본격적인 형태의 민중가요가 탄생합니다. 당시 운동권은 한 목소리로 투쟁하자는 마음을 담아 민중가요를 불법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고, 수기로 악보를 그려 배포하며 공연을 이어갔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가장 대표적인 민중가요 중 하나입니다. 운동가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에서 출발해 소설가 황석영이 가사를 완성하고 전남대학교 학생 김종률이 작곡한 곡입니다. 이 곡은 5·18 민주화운동에서 사망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계엄군 진압으로 사망한 윤상원 열사, 야학 운영 중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한 박기순 열사를 기리며 영혼으로나마 결혼식을 올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는 노랫말이 반복되는 이 곡은 대표적인 민중가요가 되어 많은 시위와 집회 현장에서 불리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민중가요의 등장
이처럼 민중가요는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투쟁과 저항의 의미가 담긴 음악으로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2016년 새로운 민중가요가 등장합니다. 바로 우리 모두에게 깊이 각인된 이화여자대학교 시위에서였습니다. 당시 학생들이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 관련 비리를 고발하면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이어진 정치적 현장이었습니다.
대학 본관에서 농성을 이어가던 학생들은 진압을 위해 투입된 경찰과 마주했습니다. 이때 학생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K-POP 그룹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불렀습니다. 줄여서 흔히 ‘다만세’라고 부르는 이 곡은 투쟁을 위해 만들어진 곡이 아니었습니다. 기존의 민중가요가 아닌 유명 아이돌 그룹의 대중가요를 부른 것입니다.
2007년에 만들어진 이 곡은 소녀시대의 데뷔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음악이 되었습니다. 노랫말을 살펴보면 어디에도 직접적인 고발과 비판의식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노래를 부른 학생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노래 속에서 희망을 느꼈습니다.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마, 눈앞에 선 우리의 거친 길은,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라는 가사에서 결코 쉽지 않은 싸움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기꺼이 싸워 이겨내고 말겠다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 울지 않게 나를 도와줘, 이 순간의 느낌 함께 하는 거야’라는 가사는 이 싸움이 결코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광장에서 한마음으로 모여 외치는 동지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오늘날의 시위 음악
2024년 국회의사당 앞에서 다시 한번 ‘다만세’가 울려 퍼졌습니다. 12·3 비상계엄 사태에 분노한 사람들은 추운 날씨에도 광장에 모여, 밤새 그곳을 지키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특히 많은 2030 여성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응원봉을 흔들며 ‘다만세’를 열창한 모습이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유튜브에는 관련 영상마다 시위 참여 전 노래 연습을 위해 찾았다는 중장년층의 댓글과 공유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시위 현장에는 다양한 음악이 흘러나왔습니다. 2030 세대가 좋아하는 소녀시대를 비롯해 에스파, 블랙핑크, 데이식스의 음악부터 수십 년 전 시위를 찾았던 이들에게 친숙한 ‘임을 위한 행진곡’과 같은 민중가요가 이어졌습니다.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노래를 듣고 함께 따라 부르면서 시위에서 음악의 역할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시위 현장에서 음악은 정치적 의사 표현 수단을 넘어 광장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역할을 합니다. 시위란 막연히 어렵고 무서운, 폭력적인 것만이 아님을 알려줍니다. 음악을 함께 부르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비슷하면서 다른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음악이 주는 예상치 못한 감동과 즐거움은 시위 참여를 망설이는 이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손을 내밉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시위 음악은 하나의 문화 경험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시위는 광장에서 함께 소리치는 적극적인 정치 참여입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음악은 시위가 단절된 여러 세대가 만나고 어울리는 공동의 장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처음 시위에 나섰을 때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사람이 마땅히 받아야 할 대가를 요구하고, 권력의 남용을 비판한 이들이 겪은 수모를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만나기로 한 광장에 이르러 함께 불을 밝히고 노래를 부를 때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만났습니다. 가끔은 개인이 분노한다고 사회와 체제가 달라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무력감이 들고, 외롭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휴대폰 데이터도 터지지 않을 만큼 많은 이들이 모인 시위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며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꺼지지 않는 희망을 품고 있다는 것을요. 시위에서 음악이 탄생한 배경과 변화를 이해하고, 모두 같이 노래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 한겨레, 저항의 시대, 내 곁에 노래가 있었다 (2021.04.24)
- 조선일보, ‘임을 위한 행진곡’은 어떤 노래인가 (2017.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