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스턴스, 바디 호러
판타지-리얼리즘 무비

스펙터클 이미지가 전복하는
압도적 감각이라는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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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의도와 광화문을 형형색색의 응원봉으로 가득 채운 집회의 장면은 우리에게 한겨울의 추위를 잊게 할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다시 광장에 불러내고 함께 거리를 지키게 만들었죠. 영화는 이처럼 스펙터클한 이미지들을 적극적으로 재현하며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습니다. 정신을 압도하고 시선을 붙잡는 이미지들을로 가득찬 현대 사회를 기 드보르는 ‘스펙터클의 사회’로 명명하죠. 그는 스펙터클 이미지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을 소외시킨다며 악성 이미지로 취급하지만, 이미지가 부여하는 충격은 타성에 젖은 관객을 다시금 주체로 만드는 가능성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 <서브스턴스>는 이와 같은 스펙터클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오히려 스펙터클의 사회를 전복시키려 시도합니다. 관객을 충격적인 이미지로 압도하여 스펙터클 사회의 본질을 성찰하게 만들죠. 영화에서 드러나는 스펙터클 이미지와 그 전복을 통해 영화가 어떻게 사회적 폭로와 비판의 장치로 기능하는지 살펴봅니다.


눈과 귀를 사로잡는
이미지의 잔혹한 유혹

화려한 색감과 상상조차 하지 못한 장면들을 재현하는 영화 속 다채로운 이미지들은 질리지 않고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아이돌 산업과 쇼, 그리고 영화를 가로지르며 쏟아져 나오는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우리가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무엇인가 소비하도록 만듭니다. 특히 깊이 생각할 시간을 소비하도록 유도하죠. 할리우드 영화들은 대중이 그들의 일상을 영화의 이미지들로 채우고 압도되도록 조장하며 발전해 왔습니다.

우리를 사로잡고 압도하는 이미지들을 스펙터클 이미지라고 했을 때, 이런 이미지들이 넘쳐나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현대 사회를 프랑스 사회학자 기 드보르(Guy Debord)는 “스펙터클의 사회”로 정의했습니다. 스펙터클의 사회는 “이미지를 통해 경험하는 사회적 관계의 집합”으로, 그는 우리가 이미지 중심으로 형성되는 문화 한 가운데 매몰되어 자신의 실제 삶에서 점차 소외되어 간다고 지적했어요.

영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2024) 스틸컷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문제이긴 하지만, 스펙터클은 단순히 수동적으로 소비되기만 할 뿐만 아니라 능동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려 있습니다. 매번 신선하고 강렬한 스펙터클 이미지들를 통해 충격을 선사하는 영화들은 예술의 한 매체로서 이런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죠. 아래 소개할 영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2024)는 강렬한 스펙터클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할리우드 영화 산업을 비롯한 대중 매체가 강화하는 외모지상주의와 물신화1)된 이미지의 이면을 폭로합니다. 스펙터클 이미지를 통해 스펙터클 이미지의 정점이자 가장 적극적인 생산지를 비판하는 것이죠.


서브스턴스 : 스펙터클 이미지로
스펙터클 사회에 저항하는 영화

여성의 몸에 닿는
일상적 공포, 바디 호러

영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2024) 포스터

“서브스턴스(The Substance)”는 2024년 개봉한 코랄리 파르자(Coralie Fargeat) 감독의 바디 호러 영화입니다. 파르자 감독은 마흔을 맞으며 갑작스럽게 자신의 여성으로서의 삶이 끝난 것 같은 공포를 느끼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각본을 썼습니다. 사회적으로 끊임없이 어떤 강요를 부여받게 되는 여성의 외모에 대한 내적 갈등을 파격적인 씬들로 그린 이 영화는 2024년 칸 영화제 각본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적나라한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자신을 점차 잃어가는 ‘엘리자베스’ 역을 맡은 배우 데미 무어(Demi Moore)는 골든글러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연이은 수상 소식에 입소문을 타고 새해에도 여전히 시네필을 사로잡고 있죠.

영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2024) 공식 예고편

영화 서브스턴스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후반부까지 ‘바디 호러’로 일컬어지는 이미지들이 휘몰아치며 거대한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관객에게 경악을 안깁니다. 바디 호러란 인간 신체의 괴기스러운 변형을 통해 공포감을 유발하는 호러 영화의 한 종류입니다. 사실 우리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차적인 신체의 변형을 자연스럽게 겪게 됩니다. 이 변화의 속도와 형태가 급격하고 과도할수록 익숙하던 우리 몸이 낯설게 느껴지며 섬뜩한 두려움을 만들어 내죠.

영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2024) 스틸컷

한 때 전성기를 누렸던 배우 ‘엘리자베스 스파클’은 여성들이 건강하고 매력적인 신체를 꿈꾸도록 자극하는 ‘펌프 잇 업(Pump it up!)’ 쇼를 찍으며 재기를 꿈꾸지만 불가항력적인 노화와 프로듀서의 퇴물 취급은 그를 좌절하게 합니다. 우연한 사고로 서브스턴스라는 물질을 접하게 된 엘리자베스는 스스로 분열하여 새로운 자신을 생성하게 되죠. 엘리자베스의 척추를 찢고 태어난 ‘수’는 젊고 탄력적인 신체와 빛나는 외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영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2024) 스틸컷

서브스턴스는 방송국 카메라가 훑어 내리는 젊은 여성의 물신화된 이미지를 적극적이고 전면적으로 다루며 스펙터클 이미지에 도전합니다. 수가 리드미컬하게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는 엉덩이와 가슴을 도착적으로 담아내는 장면들은 선정적이고 유혹적으로 기능하며 엘리자베스 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는 관객들마저 사로잡습니다. 수를 연기한 마가렛 퀄리(Margaret Qualley)는 이 장면을 찍기 위해 몸 곳곳에 테이프를 붙여 굴곡을 만들고 볼륨을 강조했다며 촬영 자체가 ‘실제로’ 바디 호러 였다고 언급했죠.

상품으로 전락해버린
분열된 자아

영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2024) 스틸컷

분리될 수 없는 두 속성을 집착적으로 구분하고 자본이 만들어 낸 이미지에 나의 본성을 일임하는 순간, 우리는 상품으로 전락하고 그 상품이 지닌 화폐 가치 또는 인기나 팔로워 같은 교환 가치로 스스로를 판단하게 됩니다.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와 ‘당신이 원형이다’라는 서브스턴스의 주요 원칙은 사회의 강요로 주입된 기준에 스스로를 맞추며 분열한 엘리자베스의 혼란스러운 자아와 대비되며 우리에게 핵심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나이 들며 변화하는 외모도,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며 되돌아가고자 하는 욕망도 사실 분리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변화하며 공존하는 나의 일부인 것이죠.

영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2024) 스틸컷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온전한 나를 받아들이기 어려워 한다고 해서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습니다. 게걸스럽게 새우를 먹어치우는 TV쇼 제작자 하비는 성적대상화한 여성을 착취하며 돈을 벌지만, 실제로 돈을 벌기 위해 노동한 엘리자베스가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자 즉시 이전과 다른 취급을 합니다. 엘리자베스는 외부의 시선에 만족스럽게 소비되기 위해 자신을 착취하며 결국 스스로에게 갖가지 폭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그것이 사회의 폭력이라는 것을 인지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말입니다.

현실을 해체하는
악성 이미지의 극복

영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2024) 스틸컷

기 드보르는 자신의 저서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스펙터클이라는 개념을 ‘악성 이미지’로 명명합니다. 화려하고 강렬한 스펙터클 이미지는 현대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며 정신을 점령하고, 모든 감각을 오로지 스펙터클 이미지에만 헌신하도록 유혹합니다. 현실 전체를 인지할 수 없게 해체시켜버리는 것이죠.

드보르가 1967년에 제시한 이 개념은 오늘날을 정확히 예측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을 비롯하여 각종 크기의 화면들에 송출되는 현란한 이미지들로 이미 우리의 일상을 점령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영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2024) 스틸컷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자신의 신체를 분리하고, 점차 통제를 잃어가는 엘리자베스와 수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서브스턴스라는 물질을 주입하기 전은 물론이고, 영화 내내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던 금기를 깨버린 것이죠.

그 결과로 생성된 ‘몬스트로 엘리자-수’는 괴기스럽고 끔찍한 모습으로 관객들이 더 이상 이전의 편안하고 익숙한 유혹에 잠식당할 수 없도록 방해합니다. 난폭하게 피바다를 만들며 오히려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보라고 일침을 날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파괴적인 환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영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2024) 스틸컷

서브스턴스에는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코드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를 압도하는 스펙터클 이미지와 그 이미지에 사로잡혀 눈을 떼지 못하는 시선들입니다. 서브스턴스에는 갈망하듯 ‘수’의 신체를 찍는 카메라와 거울을 통해 홀린 듯 자신의 신체를 훑어보는 수, 끊임없이 통유리창 바깥 전광판의 수를 집착적으로 의식하는 엘리자베스, 그리고 웃음을 종용하는 제작자들과 새해 전야 이브닝 쇼에 앉은 관객들의 시선이 등장하죠.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예술의 원본성과 아우라 개념으로 잘 알려진 논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말미에서 “인류의 자기소외는 인류 스스로의 파괴를 최고의 미적 쾌락으로 체험하도록 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고 지적합니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우리가 지닌 중요한 권리보다 아름답고 매혹적인 이미지들을 체험하고 표현하는 데 더욱 몰입하게 되죠. 벤야민은 모든 것을 심미화할 때 우리 자신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2024) 스틸컷

우리는 이미 스스로를 파괴하는 이미지들에 쾌락을 느끼도록 강력하게 길들여져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하며 각자의 몬스트로 엘리자-수로 해체되어 버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영화를 통해 경험하는 스펙터클 이미지는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고 실제 현실을 반영한 새로운 현실을 체험하게 합니다. 다행히 우리는 영화 속 엘리자베스, 수, 몬스트로 엘리자-수가 아니기에, 영화를 보면서 현실을 재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습니다. 스펙타클의 사회가 권력화된 이미지들로 점철된 사회로부터 개인을 소외시키고 고립시킨다면, 파르자 같은 감독은 그 이미지들을 영화에 전면적으로 가져와 우리의 삶과 다시금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충격 요법을 사용하는 것이죠.


스펙터클 이미지를 능동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감각의 환상에서 깨어나 이 이미지들을 현실의 맥락에서 재구성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기괴하고 압도적인 이미지를 보며 경악하는 동안 형성된 잔상은 우리에게 익숙해진 선정적이고 매혹적인 이미지들을 불편함 없이 보기 어렵게 만들죠.

서브스턴스의 이미지들이 우리에게 어떤 충격과 경악을 안겨주었다면, 비로소 사회를 점령하고 있는 이미지에 길들여진 상태에서 벗어날 때인 것 같습니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몬스트로 엘리자-수가 뿜어내는 핏빛 괴성은 어쩌면 우리에게 아직 돌이킬 수 있다고 외치고 있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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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

삶을 신비롭게 하는 우연을 사랑하고,
예술의 효용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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