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파문을 일으키는
다큐멘터리 3편

타인의 삶에 담긴 질문이
내 삶에 파문을 일으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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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타인과 구분되는 자신만의 테두리를 갖습니다. 육체라는 물질이 그렇고 마음이라는 관념이 그렇습니다. 마음의 테두리는 각자의 경험이 쌓이며 육체의 경계만큼이나 분명해집니다. 그 보이지 않는 벽을 상상해 보면 우리는 마치 각자 다른 컵에 담긴 물처럼 서로 섞일 수 없는 존재 같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타인의 삶은 우리의 삶에 질문을 던집니다. 보편적인 삶의 질문들이 테두리를 넘어 우리의 마음에 닿을 때 그 질문은 우리 안에 어떤 파문을 일으킬까요. 타인의 삶을 마주할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어떤 나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이해하기 힘든 타인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에 질문을 던지는 다큐멘터리 3편을 소개합니다.


브라이언 존슨
: 영원히 살고 싶은 남자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이것은 건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유한 사업가인 브라이언 존슨은 ‘죽지 않는 삶’을 목표로 한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그는 열량과 음식을 철저히 제한하고 수십 가지의 알약을 복용하며 엄격한 생활 습관을 유지합니다. 심지어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실험 단계의 치료를 받기도 하죠. 그의 목표는 단순히 건강한 삶을 넘어 죽음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Don’t Die’, 죽지 말자는 구호를 외치며 죽음을 부정하는 그의 행보에 많은 사람과 미디어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이미지 출처: ‘브라이언 존슨: 영원히 살고 싶은 남자’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삶의 주도권을 마음에서 육체로 옮기는 것입니다. 패스트푸드, 단 음료, SNS 등 중독적인 요소가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마음이 원하는 것은 종종 자기 파괴적인 방향으로 흐릅니다. 브라이언은 과거 일중독과 가족 불화, 흔들리는 종교관 속에서 삶의 의미를 잃고 죽음을 생각할 만큼 무너졌었습니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며 자신의 건강과 환경을 회복했다고 말합니다. ‘죽지 말자’라는 구호는 단순히 죽음을 부정하는 것을 넘어 살아있는 삶을 향한 찬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브라이언의 삶을 통해 영원히 살고 싶은 삶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집니다.


<브라이언 존슨: 영원히 살고 싶은 남자> 감상하기


스카이워커스: 사랑 이야기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이것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반과 안겔라는 맨몸으로 고층 건물을 오르는 루프 토퍼입니다. 각자의 이유로 루프 토핑을 시작한 두 사람은 우연히 함께 활동하게 되면서 연인 관계로 발전합니다. 고층 건물에서 촬영한 시각 작품을 통해 점차 명성을 얻게 되며 그들의 관계는 더욱 깊어집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여행이 제한되며 예전처럼 루프 토핑을 할 수 없게 되자 두 사람의 관계는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안겔라는 더 큰 명성을 갈망하고 이반은 안정적인 삶을 원하며 그들의 사랑은 조금씩 어긋납니다. 그들은 완공을 앞둔 초고층 빌딩인 메르데카 등반을 계획하며 어긋난 관계를 회복하려 합니다.

이미지 출처: ‘스카이워커스: 사랑 이야기’

루프 토핑이라는 위험한 행위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지켜보게 되는 이유는 그 안의 사랑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관계는 공중 곡예에 비유됩니다. 하늘을 나는 플라이어와 이를 잡고 있는 캐처가 있습니다. 두 사람은 플라이어의 주도로 하늘을 날지만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건 캐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공중 곡예의 불안은 우리가 사랑에서 느끼는 불안의 극단적인 비유 같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루프 토핑을 정당화하지도 답을 제시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불안 속에서 끝내 서로의 손을 잡고 날아오르는 두 사람의 실루엣을 보여줍니다.


<스카이워커스: 사랑이야기> 감상하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여기 있다

이미지 출처: 왓챠

이것은 예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예술의 정의를 새롭게 한 행위 예술계의 대모입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특별 회고전을 치르는 마리나를 따라 그녀의 작품 세계를 조명합니다. 마리나는 자신의 몸을 매개로 작품을 선보입니다. 그 과정에서 신체를 한계로 몰아붙이고 스스로 상처를 내기도 하며 때로는 목숨을 위협받기도 합니다. ‘이것이 예술인가?’라는 질문은 오랫동안 그녀를 따라다녔습니다.

이미지 출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여기있다’

행위 예술은 신체를 매개로 하여 전시 공간에 생생하게 존재합니다. 마리나의 작품은 관람객과 예술가가 직접 나누는 에너지의 대화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열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여기있다’ 전시에서 마리나는 하루 7시간씩 관람객과 눈을 맞추며 앉아 있습니다. 그녀는 아무 말도, 어떠한 행동도 없이 그저 관람객과 마주합니다. 침묵과 부동의 시간을 견디며 그녀는 육체와 공간이 흐려짐을 느끼고 관람객도 그 변화를 느낍니다. 마리나가 만들어낸 카리스마적 공간은 사람들을 몰입하게 만들고 각자 고유한 메시지를 얻게 합니다. 눈을 마주 보는 행위는 그녀가 이곳에 존재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으로 재탄생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여기있다> 감상하기


쉽게 이해하기 힘든 타인의 삶에서 나에게 유효한 질문을 발견하는 일은 공감의 실마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견고한 테두리 안에서 살아갑니다. 타인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 마음에 완전히 공감하기란 쉽지 않죠. 그러나 때때로 타인의 삶이 던지는 질문이 테두리 안으로 날아듭니다. 불쑥 날아온 질문으로 갇혀 있던 마음이 조금 넘칩니다. 그 넘친 마음만큼 타인과의 거리는 가까워질 수 있을지 모릅니다. 김애란 작가의 산문을 인용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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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

시선이 오래 머무는 것에 대해 씁니다.
영감을 발견하고 나르고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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