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끈한 팀워크 대신
느슨한 팀플레이

음악을 완성시키는
협력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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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호흡, 칼로 잰 듯 같은 각도를 유지하는 통일성은 ‘팀’이 갖춰야 하는 덕목처럼 여기죠. 하지만 때로 조화의 힘은 느슨한 관계에서 발생합니다. 오롯이 집단에 속해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하나의 지향점을 향하기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각자 최선의 퍼포먼스와 협력이 이루어질 때 발생하는 결과는 새로운 감각을 제공하니까요. 우리가 즐기는 예술과 문화, 그중 대중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소 헐겁게 엮인 관계에서 피어나는 신선함과 서로 다른 분야에 속한 이들이 교류하며 만드는 파급은 독창적인 인상을 제시합니다. 음악과 비주얼, 아티스트와 브랜드, K-Pop과 인디 씬이 충돌하며 만드는 충격파는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관점이 존재함을 인식하게 만들죠. 느슨하게, 자유롭게, 하지만 열정적이고 활발하게 연대하며 움직이는 최근 국내 대중음악 시장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실리카겔
| 잘 가공된 음악의 시야를 넓히는 법

실리카겔Silica Gel, 이미지 출처: CAMWUS

‘밴붐온(’밴드 붐은 온다’의 줄임말)’의 주역 중 하나이자, 요즈음 한국의 밴드 씬을 리드하는 실리카겔Silica Gel은 독창적인 색채의 음악을 선보이는 팀입니다. 그들이 최근 음악 안팎에서 드러내는 기계, 금속성의 스타일과 정교하게 깎아낸 사운드는 수많은 사람을 매료시켰죠. 실리카겔의 활동에서 특별히 눈여겨볼 점은, 그들이 직접 언급한 ‘팀플레이’에 있습니다. 실리카겔은 밴드를 소개할 때 “팀워크Teamwork가 아닌 팀플레이Teamplay를 지향한다”고 말합니다. 이 아티클에 영감을 준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하나의 대의를 향해서 가는 팀워크가 아니라 각자의 구성원이 자유롭게 재능 발휘했을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결과물”을 추구한다는 팀의 정체성을 잘 알 수 있죠.

무엇보다, 실리카겔의 팀플레이는 밴드 내부에서만 진행되지 않고, 그들과 가깝고 먼 창작자, 예술가, 브랜드와 호흡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입니다. 실리카겔의 본격적인 외부 협업은 2023년 경 국내 패션 브랜드 산산기어와 함께 싱글 ‘Mercurial’의 뮤직비디오를 만들며 가시화됩니다. 뮤직비디오 속 산산기어 특유의 정제된 아웃도어 스타일의 의상은 밴드의 음악 세계와 조화롭게 어우러졌죠. 새로운 정규 앨범 작업을 진행하던 실리카겔과 당시 핫한 브랜드로 부상하던 산산기어의 협업은, 단지 아티스트와 의상을 담당하는 브랜드 이상의 시너지를 냈습니다. 이후 뮤직비디오, 콘서트, 페스티벌 공연 등 활동에서도 산산기어와 함께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주며 음악과 패션의 화합을 느슨한 연결의 방법으로 선보였죠.

산산기어 X 실리카겔 [Mercurial], 이미지 출처: SAN SAN GEAR

또한 최근 aespa의 ‘Whiplash’를 담당한 멜트미러MeltMirror 역시 실리카겔과 꾸준히 협업한 팀플레이 일원 중 하나입니다. 첫 정규앨범에 수록된 트랙 ‘9’부터 실리카겔의 최고 히트곡 ‘NO PAIN’, 가장 최근 ‘APEX’에 이르기까지 멜트미러는 실리카겔과 10편에 가까운 뮤직비디오를 제작했습니다. 특히 ‘Mercurial’에서 돋보이는 금속의 이미지는 실리카겔의 새로운 서사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한편, 3D 영상과 애니메이션을 색다르게 활용해 음악과 연동하는 독특한 이미지를 재생하는 ‘APEX’ 뮤직비디오 역시 팬과 산업 종사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냈고요.

실리카겔은 음악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 인물, 집단을 느슨한 연결망에 포섭해, 그들이 자신의 팀플레이에 합류하길 요청합니다. 동시에, 다양한 외부인을 자신의 팀플레이에 합류시키듯, 실리카겔 멤버들 역시 각종 분야와 집단에 소속되어 또 다른 팀플레이를 전개합니다. 네 멤버는 각각 타 아티스트의 작품에 프로듀서 · 세션 참여, 외부 팀 결성 등 다방면으로 활약을 펼치고 있죠. 이런 사례를 떠올리다 보면, 실리카겔이 펼쳐내는 다채롭고 독창적인 스타일은 자유롭고 느슨한 팀플레이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단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손잡고 달려나가는 팀워크가 아닌, 각자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그 자유로움을 바탕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팀플레이의 힘을요.


실리카겔 인터뷰 보러 가기


뉴진스
| 각 팀의 색이 더해질수록
조화를 뽐내는 매력

뉴진스NewJeans X 후지와라 히로시Fujiwara Hiroshi, 이미지 출처: ADOR

K-Pop을 넘어 전국을 강타한 뉴진스NewJeans의 데뷔가 벌써 3년 전 일이라는 사실은 꽤나 충격적입니다. 뉴진스의 등장은 K-Pop을 작동시키는 전 영역을 아울러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많은 이들은 뉴진스 멤버들의 매력이나 프로듀서 민희진의 역량, 그들이 만들어낸 시류의 특징을 분석해서 이를 설명하려 합니다. 하지만 뉴진스가 퍼뜨린 충격파와 연이은 성과에서 놓쳐서는 안 될 사실은, 그룹의 활동을 기획사 내외부의 다양한 이들과 연결해 만들어 낸 경로 그 자체입니다. 그들은 하나의 기획사가 온전히 탄생시킨 아티스트라기보다 그 안팎의 수많은 이들이 힘을 합쳐 빚어낸 협력의 결과인 셈이죠.

먼저 그들이 음악을 만드는 방식부터 살펴 볼까요. 대다수의 K-Pop 그룹은 인하우스 작가진, 혹은 기획사와 오랜 시간 함께한 프로듀서와 작품을 만들거나, 수십 명의 작곡가가 달려들어 하나의 곡을 쌓아 올리는 송캠프의 형식을 채택합니다. 하지만 민희진은 그런 방법 대신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초청해, 그가 믿는 또 다른 이들을 연결하는 방식을 선택했죠. 이미 알려진 바 있듯 민희진과 함께 SM 엔터테인먼트에서 근무하며 신뢰를 쌓은, 레이블 BANA의 김기현 대표가 뉴진스의 음악을 전담하고 있습니다. BANA에 소속된 프로듀서 250, FRNK는 지금까지 뉴진스의 거의 모든 트랙을 만들었고, 김심야, 빈지노 등의 래퍼 역시 다양한 트랙에 작사로 이름을 올렸죠. 음악뿐 아니라, 2023년 ‘Ditto’ 뮤직비디오와 함께 거대한 파장을 만든 신우석 감독과 돌고래유괴단도 뉴진스의 주요한 협력 대상이죠. 단지 매력적인 영상을 만들고 아티스트의 거대한 세계관을 뽐내기보다, 돌고래유괴단 고유의 감각과 신선한 스타일로 만든 뮤직비디오는 많은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았습니다.

뉴진스 X 무라카미 타카시Murakami Takashi, 이미지 출처: ADOR

뉴진스의 협업이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기존 K-Pop 시장에서도 그룹의 음악, 영상 등 주요 활동 분야의 외부 인사와 협력한 사례는 여럿 있습니다. 하지만 뉴진스는 아이돌을 넘어, 마치 하나의 브랜드처럼 동작합니다. 데뷔와 함께 당시 K-Pop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팝업스토어를 더현대 서울에서 진행하고, ‘Ditto’ 활동 당시 F&B 브랜드 NUDAKE와 콜라보레이션 MD를 제작했죠. 그뿐 아니라 LG전자의 그램, 맥도날드, 코카콜라 등 국내외 유수의 기업과 협업하는 한편, 파워퍼프걸, 무라카미 다카시, 후지와라 히로시 등 애니메이션, 현대미술, 패션 업계인과 호흡을 맞췄습니다. 그들의 무대의상은 혜인 서, Coyseio, Paolina Russo 등 국내외 패션 브랜드와 함께 제작해 그룹의 퍼포먼스를 극대화했고요.

뉴진스의 활동 방향은 단순히 각 멤버들이 유명 패션 브랜드의 앰버서더로 활동하고, 그룹이 브랜드의 모델로 광고를 찍는 기존의 사례와는 다른 효과를 냅니다. 마치 뉴진스라는 그룹 자체를 하나의 살아있는 브랜드처럼 여기며, 브랜드와 브랜드가 협업하듯 나아가고 있으니까요. 만약 ADOR가 기존 K-Pop의 방식대로 뉴진스를 기획사 안에서 오롯이 제작했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는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미 그들의 데뷔와 기초적인 제작 단계에서부터 수많은 외부인과 협력한 결과는 뉴진스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내고 수많은 연결을 성사시키는 토대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RM
| K-Pop을 향한 실험과 관점을
영리하게 파헤치기

‘RM : Right Peeple, Wrong Place’, 이미지 출처: BigHit Music & HYBE

최근 K-Pop 시장에서는 기존과 다른 방식의 아티스트 계약이 도드라지며 솔로 아티스트의 활약이 자주 눈에 띄는데요. 2024년 가장 주목해야 할 K-Pop 솔로 아티스트 중 하나는 다름 아닌 BTS의 RM이었습니다. RM의 솔로 활동이 특별한 이유는, 단지 그가 BTS의 멤버라는 점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2024년 RM이 두 번째 솔로 앨범을 발매하며 택한 방식은 자신만의 ‘팀’을 꾸리는 일이었거든요.

RM의 솔로 앨범 ‘Right Place, Wrong Person’은 단지 개인 활동 전개를 위해 만든 작품이라기보다, RM이라는 인물이 K-Pop의 저변을 가늠하고 산업과 시장을 대상으로 실험을 펼치는 장으로 작동합니다. 우선 앨범에 참여한 인물의 면면이 독특하죠. 바밍타이거의 디렉터 산 얀이 팀 알엠TEAM RM의 리더가 되어, 작품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인물을 대거 포섭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바밍타이거 멤버인 언싱커블, 비제이 원진bj wnjn은 물론, 실리카겔의 김한주, 밴드 혁오의 오혁과 선셋 롤러코스터의 궈궈Kuo Kuo가 앨범 곳곳에 이름을 올렸죠. 또한 국내 인디 씬에서 다채롭게 활동하는 김아일, 라드 뮤지엄, Mokyo, Jclef, Nancy Boy가 여러 트랙에 참여하는 한 편, 최근 영미권 시장에서 독창적인 음악을 펼치는 리틀 심즈Little Simz, 모지스 섬니Moses Sumney, 도미 & 제이디 벡DOMi & JD BECK이 피처링으로 힘을 보탰습니다.

팀 알엠TEAM RM, 이미지 출처: TEAM RM

그뿐 아니라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 메간 디 스탈리온Megan Thee Stallion 등의 뮤직비디오를 만든 감독 오베 페리Aube Perrie가 ‘LOST!’의 뮤직비디오를, 2023년 시청자와 평론가 모두를 사로잡은 드라마 <성난 사람들 BEEF>의 감독 이성진이 <올드보이>, <괴물>, <헤어질 결심>의 류성희 미술감독과 함께 ‘Come back to me’ 뮤직비디오를 제작했습니다. 윙 샤Wing Shya, 로지 마크스Rosie Marks 등 해외 유명 포토그래퍼가 앨범의 콘셉트 포토를 담당한 것도 빼놓을 수 없고요. 이후 작품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RM : Right People, Wrong Place>는 부산국제영화제 오픈 시네마 부문에 공식 초청되었습니다.

‘Right Place, Wrong Person’은 K-Pop 특유의 거대 자본과 세밀한 기획으로 밀어붙인 작품을 넘어, RM을 중심으로 뭉친 TEAM RM, 그리고 수많은 창작자가 느슨히 묶인 거대 집단이 힘을 더한 결실로 다가옵니다. 실제로 RM과 그의 팀은 해당 앨범을 제작하며 “K-Pop의 확장을 위해 도전과 실험을 지속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죠. 기존 K-Pop에서도 국가, 분야, 기획사 내외부를 관통하는 협력은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거대한 자본과 기간이 투여되는 산업에서 새로운 구조를 실험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기에 RM이 자신과 함께할 이들을 포섭하고, 그들과 헐겁게 연동하며 나아가는 작품 ‘Right Place, Wrong Person’은 더욱 특별한 지점을 만듭니다.


TEAM RM 인터뷰 보러 가기


오늘날 우리가 사회에서 맞닥뜨리는 상황과 다르지 않게, 작금의 예술가들은 헐거운 연결고리와 느슨한 교류를 통해 자신의 예술을 펼치고 있습니다. 하나의 점으로 응집한 열정을 분출하는 기존의 팀워크와는 다른 매력으로, 팀플레이 내부 각각의 연결고리에서 터져 나오는 연쇄적인 폭발은 그 규모와는 별개로 우리에게 새로운 만족을 제시하죠. 무엇보다 팀플레이의 핵심이 되는 요소는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하는 과정입니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공감과 연대의 힘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되, 서로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이뤄지겠죠. 결국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필요한 건, 타인과 내가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게 아닌, 스스로와 상대를 믿으며 함께 나아가는 협력의 방향이 아닐까요?


Picture of 박정호

박정호

텍스트로 텍스트 너머의 맥락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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