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해야 브랜드가 된다
레고(LEGO)가 건재한 이유

필요한 브랜드로 거듭난
레고(LEGO)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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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아티클에서는 스노헤타(SNØHETTA)와 소호 하우스(SOHO HOUSE)의 사례를 통해 브랜드의 다양한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브랜드의 비즈니스는 정체성과 연결되며, 존재 이유를 명확히 밝혀야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러한 관점에서 브랜드가 자리 잡는 과정, 브랜딩과 포지셔닝은 ‘필요’에 의해 발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할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설득력이 있어야 하며, 이를 통해 소비자의 공감을 얻어야 합니다.

특정 회사를 ‘브랜드’가 아닌 단순한 ‘공급자’로 바라보면, ‘필요’의 본질은 더욱 명확해집니다. 변화의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시대, 많은 브랜드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채 유명무실한 공급자로 남거나 사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비자의 공감을 얻고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며 굳건히 자리 잡은 브랜드도 있습니다. 세상의 목소리를 읽고, 피드백을 바탕으로 다시금 ‘필요한’ 공급자로 거듭난 브랜드, 창의성의 상징이 된 조립 완구 회사 레고(LEGO, 이하 ‘레고’)를 소개합니다.


레고(LEGO)
: 변화의 기로에서

회사를 가로막은 두 번의 변곡점

이미지 출처 : The LEGO Group

레고는 1932년 덴마크에서 시작된 블록 장난감 회사로, 올해로 창립 93년을 맞이했습니다. 거의 100년 동안 블록을 만들어 왔으니, 어린 시절 레고를 조립한 추억이 있거나, 여전히 취미로 즐기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레고는 우리에게 친숙한 브랜드이자, 조립형 완구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100년에 가까운 역사 속에서 순탄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닙니다.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죠. 생각해 보면, 조립형 완구는 번거로운 요소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작은 블록을 정밀하게 사출하는 생산 과정부터, 판매량과 매출에 따라 생산량을 조절하는 문제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어린이들의 취향을 맞추기 위해 꾸준한 리뉴얼과 신제품 개발도 필요하죠. 여기에 부모들의 기대까지 충족하려면 교육적 요소까지 갖추어야 합니다.

레고는 1980년대 황금기를 누린 뒤, 20세기 말에 들어 지속적인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1990년대에는 무리한 생산 라인 확장과 복잡한 블록 디자인으로 인해 제조 비용이 급증했고, 주요 시장인 선진국의 출산율 감소로 매출도 급감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소니와 닌텐도가 비디오 게임기를 출시하면서 어린이들의 여가 시간이 점점 디지털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죠. 화려한 그래픽과 생동감 넘치는 사운드를 갖춘 게임기 앞에서 ‘블록 쌓기 놀이’는 한없이 초라해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레고의 해리포터 라이센스 제품, 이미지 출처 : The LEGO Group

시대의 변화 속에서 레고는 IP 사업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레고 테마파크를 개장하고, 의류와 시계 사업에도 진출했죠. 또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콘텐츠 배급사와 협력해 라이선스 제품을 출시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는 ‘스타워즈’와 ‘해리포터’ 시리즈 역시 이 시기에 등장했습니다. 매출은 증가했지만,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해야 했기에 회사의 재정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신상품이 늘어나면서 생산과 물류 비용은 커졌고, 매출과 이익은 정체 상태에 머물렀습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며 스마트폰이 세상을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출산율은 계속 감소하는 상황 속에서 스마트폰은 비디오 게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사람들을 매혹시켰습니다. ‘어른들의 추억 속 장난감’으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레고 내부에서도 감돌았습니다. “세상은 더 이상 레고를 필요로 하지 않을지도 몰라.” 같은 생각들이 퍼져 나갔고요.

덴마크에 있는 첫번째 레고 랜드, 이미지 출처 : The LEGO Group

그러나 두 번의 큰 위기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레고는 건재합니다. 물론 팬데믹 특수와 키덜트(Kidult) 열풍 덕분에 누렸던 높은 영업 이익은 감소했지만, 여전히 우리가 기억하는 레고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조립 완구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으며, 어른과 어린이, 부모와 자녀 모두가 레고 블록이 딱 맞물리는 순간의 즐거움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Back To The Brick

세상이 필요로 하는 블록을 만들자

레고 디지털 디자이너(LEGO Digital Designer), 이미지 출처 : The LEGO Group

앞선 두 번의 위기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블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먼저 ‘레고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된 이유’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레고는 무리한 사업 다각화로 인해 ‘블록’과 ‘조립’이 만들어내는 창조의 경험보다 즉각적인 피드백이 오는 서비스(테마파크)와 제품(의류, 시계, 라이선스 사업)에 집중했습니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창의성이 요구되지 않는 블록 장난감에서 레고만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레고가 제공했던 ‘창조’와 ‘성취감’이 사라졌던 것입니다.

레고 아이디어스 커뮤니티, 이미지 출처 : The LEGO IDEAS

레고는 ‘Back To Brick’ 경영 슬로건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정체성인 레고 블록 사업에 집중하기로 결심합니다. 테마파크 지분을 매각하고, 불필요한 IP와 신제품 생산 설비를 대폭 줄였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 ‘테마’를 불어넣기로 했지요. 이미 완성된 콘텐츠의 세계관이 아니라, 레고가 자체적으로 만든 세계관을 만들거나, 특정 시대와 판타지 테마의 레고 제품을 출시한 것입니다. 소비자들이 레고를 조립하면서 새로운 형태나 세계를 창조할 수 있게끔 말이죠.

레고는 매니아들이 원하는 ‘창조성’을 강화하기 위해 디지털 환경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레고 디지털 디자이너(LEGO Digital Designer)’라는 프리웨어 프로그램을 배포해 사람들이 컴퓨터로 레고 블록을 조립하며 자신만의 레고를 만들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를 통해 사용자들은 직·간접적으로 레고 개발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죠. 나아가 소비자들이 자신이 창조한 레고를 소개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레고 아이디어스(LEGO Ideas)’라는 플랫폼을 만들어, 팬들이 자생적으로 즐길 수 있는 커뮤니티를 조성했습니다.

레고 아이디어스 턱시도 캣, 이미지 출처 : The LEGO Group

‘레고 아이디어스’에는 팬들이 직접 참여하는 투표 시스템이 있습니다. 참신한 레고 아이디어에 투표할 수 있으며, 10,000표 이상을 얻으면 레고 디자인 팀이 정식 출시를 검토하죠. 제품화가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일부 디자인은 실제 레고 세트로 제작되기도 합니다. 원작자는 판매 수익의 일부를 로열티로 받을 수 있고요. 레고 블록을 기반으로 창조와 성취의 공감대를 형성한 것입니다.


The Smallest Unit of Creativity

창조로 나아가는 가장 작은 블록

레고 마인드스톰(LEGO MINDSTORMS) EV3, 이미지 출처 : The LEGO Group

스마트폰 시대에도 레고는 ‘블록’에 집중했습니다.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시대의 변화와 소비자의 니즈에 귀 기울였죠. 그들이 사로잡아야 할 타깃은 두 그룹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레고를 가지고 놀았던 30~40대 레고 팬들과, 스마트폰이 선사하는 도파민에 익숙해진 신세대 어린이들이었죠.

당시 시대는 점점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개발에 주목하고 있었고, 이에 맞춰 레고는 보다 어렵고 복잡한 제품을 내놓았습니다. ‘레고 부스트(LEGO BOOST)’는 어린이들도 조립할 수 있는 블록 기반 프로그래밍 시리즈로, 전용 앱을 활용해 센서와 모터를 작동시키는 방식이었습니다.

‘레고 마인드스톰(LEGO MINDSTORMS)’은 부스트보다 더 복잡한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제품군으로, 파이썬과 C 같은 고급 프로그래밍 언어도 지원했죠. 레고의 정체성인 ‘블록’이 프로그래밍의 핵심 개념인 논리적 완결성과 맞닿아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레고 테크닉(TECHNIC) 페라리, 이미지 출처 : The LEGO Group

슈퍼카나 에펠탑 같은 상징적인 건축물을 그대로 구현한 레고 제품을 본 적 있으실 겁니다. 50만 원을 훌쩍 넘는 가격에 놀란 적도 있을 테고요. 이는 성인 매니아들을 겨냥한 ‘아키텍처(ARCHITECTURE)’와 ‘테크닉(TECHNIC)’ 시리즈입니다. 두 제품군은 고가 라인에 속하며, 블록 개수도 많고 조립 난이도도 높습니다. 그만큼 높은 재현도를 자랑하죠.

특히 ‘레고 테크닉’은 전동 모터와 유압 시스템이 적용되어 실제로 조종할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 여력이 생긴 오랜 팬들을 위한 시리즈로, 도전 욕구를 자극하는 제품들을 선보인 것이죠.


Rebuild the World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다

유튜브 출처: LEGO 공식 유튜브 – Rebuild the World (또 다른 이야기를 짓다)

2019년, 레고는 ‘REBUILD THE WORLD’ 캠페인 영상을 공개합니다. 쫓고 쫓기는 사냥꾼과 토끼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영상은 자동차, 다리, 소방관과 미용실 등의 풍경이 레고 블록으로 대체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현실을 넘나드는 레고의 창조성을 표현하는데요, 자신들이 만들어온 블록 세계가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고,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변화하고 있다는 걸 짧은 필름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레고가 걸어온 역사와 견지하고 있는 방향성을 잘 보여주는 캠페인입니다.

레고는 회사의 미래를 결정짓는 변곡점마다 자신들이 쥐고 있는 조그마한 블록으로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고민했습니다. 제한 없이 상상하고 기존의 것을 새롭게 만드는 것. 창조와 도전의 가치를 시대에 담아내기 위해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고, 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제품을 내놓았습니다.


레고의 역사와 오늘을 보며 ‘브랜드’의 존재 의의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공급자가 브랜드로 남을 수 있는 건, 공급되는 제품이 우리에게 얼마큼의 공감을 주느냐에 달렸을지도 모릅니다. 공감의 기준은 제품마다 다를 순 있습니다. 레고는 장난감이니, ‘재미’가 가장 중요한 것처럼요. 작금의 트렌드와 취향을 그러모아 하나의 제품을 만든다면, 아주 잠깐 브랜드로 거듭날 순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사라진 브랜드들도 많았습니다.

원 히트 원더를 브랜드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소통하며 공감하며 끊임없이 혁신적인 제품을 만드는 곳.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잘하는 본질을 잃지 않는 공급자가 브랜드로 거듭나는 것이라 믿습니다. 레고가 레고로 남을 수 있었던 힘도 ‘공감할 수 있는 제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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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현

새삼스러운 발견과 무해한 유쾌함을 좋아하는 사람.
보고, 듣고, 느낀 예술을 글로 녹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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