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로부터 만개한 꽃, 스크린을 가득 채운 비현실적 결합의 향연, 과거 시대의 액자를 본 뜬 구조부터 매끄럽게 가공된 디스토피아 작품을 연상시키는 구성에 이르기까지. 조기석chogiseok 작가의 상상력은 한계를 정해두지 않습니다. 인스타그램과 핀터레스트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그의 사진은 한 번 각인된 이후 절대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개성을 지녔죠. 때론 기괴하리만치 환상적으로, 또 정밀하고 세련된 묘사에 감탄이 나올 만큼 다채로운 매력을 뽐내는 조기석의 작품은 매번 아이러니한 지점에서 그 아름다움을 피워냅니다.
조기석은 DEAN과 오혁 등 여러 아티스트의 아트워크를 담당하며 이름을 알렸지만, 이내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포토그래퍼 중 하나로 발돋움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의 브랜드 쿠시코크KUSIKOHC를 전개해 글로벌 아티스트들의 사랑을 받고, 최근에는 뮤직비디오, 캠페인 필름 등 영상 매체를 통해 자신의 스타일을 녹여내고 있죠. 그는 주체할 수 없는 상상력과 창작 욕구를 갖가지 장르와 분야를 넘나들며 해소해야만 만족스럽다는 듯 움직입니다. 애정 어린 시선의 깊이와 노고를 들여 완성한 연구의 가치를 시각적 표현으로 만발하는 조기석 작가의 모든 활동을 톺아봅니다.
디자이너, 혹은 그냥 조기석
시각디자인과를 1년간 다니다 자퇴한 조기석 작가의 이후 행보는 말 그대로 비범합니다. 학교 선배를 따라 들어간 잡지사에서 다양한 업무와 함께 젠틀몬스터의 화보를 기획하고, 독학으로 시작한 사진을 꾸준히 연구했죠. 이후 TV 방영한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에서 이명신 디자이너와 함께 의상을 제작했으며, 이명신 디자이너가 설립한 브랜드 로우클래식LOW CLASSIC의 패션쇼 및 세트 디자인 작업을 담당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DEAN의 데뷔 EP ‘130 mood : TRBL’과 오혁, 프라이머리, 개코 등의 아트워크를 담당했죠. 이때부터 그의 작업물에는 조기석 특유의 기묘한 아름다움이 엿보입니다. 스스로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공언한 사진가 닉 나이트Nick Knight와 패션계의 릭 오웬스, 꼼 데 가르송처럼 조기석은 음울하고 환상적인 분위기, 절제된 구성과 전위적인 구조를 손쉽게 아우르는 역량을 뽐냅니다.

디자인에 밀접한 영역에서 출발한 초기 작업물에서 지금 그가 펼쳐내고 있는 작품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조기석 작가의 개성 넘치는 스타일과 독창적인 관점도 그렇지만, 그가 그래픽, 세트, 오브제 등 다양한 요소를 디자인하며 익힌 역량은 오늘날 그의 사진, 영상 등의 작업에도 큰 영향을 끼치겠죠. 조기석은 2018년 진행한 인터뷰에서 작업의 신선함을 언급한 에디터의 질문에 “세상에 없던 것보다는 내가 해보지 않았던 것, 좋아하고, 해보고 싶은 것”을 작업한다고 말하며, “(사진가라는 호칭보다)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라는 포부를 밝힌 바 있죠. 어쩌면 그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그의 창작과 상상의 원동력이 되는 건 자신의 관심과 욕구를 면밀하게 관찰하며, 또 그것을 모두 실현할 수 있는 독자적인 역량을 구축한 지난 시간을 기틀로 삼고 있는 듯합니다.
포토그래퍼 조기석
이번 아티클에서 얘기할 조기석 작가의 다양한 활동 영역 중, 사진은 그의 핵심이자 대표격인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사진 작업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 ‘꽃’입니다. <Flower Studies>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조기석 작가는 수많은 꽃의 형태를 탐구하고, 이를 자신만의 관점으로 다양한 대상과 결합해 사진으로 표현했죠. 특히 신체를 토양 삼아 인간과 꽃, 또는 자연물을 결합하는 작업은 기묘한 감각을 불러일으킵니다.


2022년 스톡홀름을 거쳐 서울에서 <Fantasy>라는 이름의 전시를 진행했듯, 조기석의 작품은 마치 현실 너머의 환상을 그리는 듯합니다. 자연물과 신체의 결합뿐 아니라, 여러 그래픽 요소, 독특한 구성과 소품 등을 활용한 그의 사진에서는 꿈에서나 볼 법한 이미지를 자주 포착할 수 있죠. 한 인터뷰 기사에서 언급된 바 있듯, 그의 작업은 “신체, 꽃, 나비, 기계와 같이 우리 주변에 있는 대상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해 “세상과 동떨어진 환상”을 그립니다. 무엇보다 그가 꾸며낸 초현실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그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조기석만의 미래를 표현하기 때문에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니죠.



그의 작품은 그 어떤 포토그래퍼의 것보다도 컨셉추얼 합니다. 각각의 사진에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성이 돋보이고, 그 이미지 내부에 기묘한 이야기가 서려있는 듯하죠. 이런 이유로 수많은 브랜드와 아티스트가 조기석이 창조하는 콘셉트에 관심을 표합니다. 르세라핌, 아이브, NCT 드림 등 K-Pop의 최전선을 달리는 그룹부터 빌리 아일리시, 카일리 제너 등 해외 아티스트 및 셀러브리티, 보그VOGUE, 킨포크KINFOLK, 데이즈드DAZED 등 매거진과 프라다PRADA, 조던JORDAN 등 브랜드에서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죠.



조기석의 사진은 한눈에 봐도 그의 작업임을 알만큼 또렷한 개성을 지녔지만, 동시에 각각의 작품에는 서로 다른 서사가 작동하는 듯 세밀한 요소로부터 거대한 구조의 차이를 만들어내죠.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조기석의 사진 작업은 그가 전개하는 다양한 활동의 토대이자 창작의 중추로 자리합니다. 현실과 환상, 자연과 기계, 인간과 타자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조기석의 상상력은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과 어우러지며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을 퍼뜨립니다.
패션 브랜드 디렉터 조기석
사진과 함께 조기석의 이름을 전 세계로 알리게 된 순간은 그가 오랜 시간 전개해 온 패션 브랜드 쿠시코크KUSIKOHC가 만들어냈습니다. 2023년 세계 최대 패션 기업 LVMH가 신진 디자이너 발굴 및 육성을 위해 주최하는 LVMH Prize에 세미파이널리스트로 이름을 올리며 A$AP Rocky, 칸예 웨스트 등 해외 유명 아티스트의 의상으로 포착된 사례가 대표적이죠. 조기석의 영문 이름을 거꾸로 배치한 쿠시코크가 내세우는 ‘실패할 권리Right to Fail’라는 브랜드 슬로건은 “성공의 여부와 상관없이 도전 자체로 변화와 의미를 갖는다”는 조기석의 관점이 반영되었습니다.

쿠시코크에서 선보이는 옷과 액세서리에는 해체, 절개 등 전위적인 구조와 그의 사진 작업을 떠올리게 하는 초현실적 그래픽이 녹아 있습니다. 조기석은 또 다른 인터뷰에서 “환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요. 그의 다른 작업 영역에서도 돋보인 환상이라는 요소가 패션이라는 매개를 통해 눈앞에서 생동하는 모습은, 특유의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비주얼이 우리의 삶에 가장 가깝고 직접적으로 가시화되는 사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조기석이 쿠시코크의 디렉터를 역임하며 만들어내는 작업은 단지 옷에 그치지 않습니다. 새로운 컬렉션을 발매할 때마다 선보이는 콘셉트 포토와 필름은 조기석 작가가 패션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이상향의 실현을 돕는 조력자로 활약하죠. 간결한 룩북부터 외부 아티스트, 플랫폼과 함께 만들어 낸 영상에 이르기까지. 조기석 특유의 환상적이고 기묘한 이미지는 쿠시코크 의상, 캠페인 주제와 섞이며 폭발적인 감각을 만들어냅니다.
영상 감독 조기석
조기석 작가의 활동 반경 중, 최근 가장 큰 관심을 받는 건 그의 영상 작품입니다. 특히 얼마 전 블랙핑크 제니의 솔로 작품 중 ‘Zen’의 뮤직비디오를 담당하며 큰 주목을 받기도 했죠. 그의 사진이 특유의 스타일과 시선을 담아내고, 패션 브랜드에서 그 감각을 손에 잡히는 물체로 만들었다면, 영상은 조기석이 지금까지 그려낸 모든 시각적 특징을 한곳에 응축해 형상화합니다. 그의 영상 작품은 여전히 환상적이고 기묘하지만, 동시에 전위적이고 독특한 구성으로 가득하죠. 이전부터 이어 온 창작 활동을 잊지 않았다는 듯, 초현실적인 광경과 다소 아이러니한 대상의 결합이 두드러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그가 모든 걸 진두지휘하는 작업을 넘어, 타자와 협력해야 하는 작업물에서도 여과 없이 드러납니다. 라틴계 미국 아티스트 칼리 우치스Kali Uchis의 ‘I Wish you Roses’는 그가 본격적인 뮤직비디오 제작에 돌입한 작품입니다. 농밀하고 미려한 음악과 함께 조기석 특유의 시선으로 담아낸 꽃의 모티프는 그가 오랜 시간 펼쳐낸 사진 스타일이 영상으로 피어난 듯한 인상을 제공하죠.
앞서 언급한 제니의 사례도 그렇지만, 데뷔 이후 조기석이 꾸준히 담당하고 있는 걸그룹 XG의 뮤직비디오는 그가 구현하고자 하는 영상 미학의 갈래와 정수가 담긴 작품으로 느껴집니다. 일본의 여러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HOWLING’과 SF의 문법을 초현실적인 자연물로 그려낸 ‘GRL GVNG’, CG 그래픽과 멤버의 삭발 씬 등 강렬한 이미지를 가득 뭉쳐낸 ‘WOKE UP’ 등 조기석이 제작한 XG의 뮤직비디오는 그 어떤 그룹과도 비할 수 없는 매력을 폭발하듯 선보이죠.
뮤직비디오 외에도 유명 게임 디아블로와 함께 제작한 광고 영상, 여러 브랜드의 패션 필름 등에서도 조기석 특유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습니다. 흔히 영상을 다양한 시각 요소를 응축한 종합 매체로 언급하듯, 조기석의 영상 작업은 그가 오랜 시간 공들여 깎아낸 자신만의 시각적 표현 양식을 모두 톺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특히 세밀하고 독특한 소품과 세트, 그래픽 디자인부터 영상 속 인물이 입은 의상, 특유의 스타일을 담은 사진의 연속과 같은 이미지까지, 조기석의 영상은 조기석의 과거를 온전히 담고 있습니다.
조기석은 ‘전방위적 아티스트’라는 호칭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 중 하나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따로 있습니다. 앞에서 여러 번 설명했듯, 조기석 특유의 스타일은 각각의 작품에 각인처럼 남아 이를 처음 본 사람도, 그의 활동을 애정 깊게 지켜본 사람도 단숨에 그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강렬한 개성이 그와 협업하는 대상, 작품의 주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해야하죠. 오히려 인물과 제품, 작품 의미와 콘셉트는 조기석의 시선과 맞물려 더 커다란 매력을 지니게 됩니다. 기존의 관점과 방식으로는 그려낼 수 없는 독특하고 강력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힘, 그것은 조기석 개인의 역량뿐 아니라 그가 오랜 시간 켜켜이 쌓아 온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성됩니다.
정리하자면, 조기석 작가는 그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구축한 채, 그것을 자신의 표현법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도, 타인과 효과적으로 어울리는 방향으로도 활용할 줄 아는 인물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를 향한 소개의 말 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는 ‘환상’과 ‘아이러니’일 텐데요. 조기석이 온갖 영역을 아울러 전개하는 활동 궤도가 ‘전회’가 아닌 ‘전환’일 수 있는 이유는, 이처럼 명확한 개성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잃지 않은 채 수많은 이들과, 또 다양한 콘셉트와 합치할 수 있는 고고한 정체성에 있습니다.
*p.s. 지난 연말, 조기석은 본인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습니다. 2024년 5월 브랜드와 사진 등을 위해 운영하던 스튜디오에 화재가 발생해 상당수의 소품, 카메라 등이 유실되었다고요. 그는 멀찍이서 불에 타고 있는 스튜디오를 보며 “(자신의 20대와 브랜드를 운영하던) 순간들이 진정으로 끝났음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 재 속에서 핀 꽃을 떠올리던 조기석은 <Flower In The Ashes>라는 회고적 성격의 컬렉션 전시를 공개하며 쿠시코크에서 떠난다는 사실을 전했습니다. 이 아티클에서 설명한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른 이유로 커다란 전환을 맞이하는 조기석의 새로운 브랜드에도 큰 관심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