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힘든 시기를 보내다 어느 순간 그 늪에서 벗어난 경험이 모두에게나 있을거예요.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그때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문득 생각해 볼 때가 있는데요. 주로 그런 순간들은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착하며 괴로워하는 것 대신,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전환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사고처럼 들이닥친 불행에 억울해 하고 불평하고 있기보단, 이 사건이 내 삶에 주는 의미를 적극적으로 찾아본 순간들이죠. 삶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을 통해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 내는 책 3권을 소개합니다.
내 삶의 이야기를 편집하는 법
『에디토리얼 씽킹』

“에디터 일은 소심하고 파리했던 나의 자아를 부드럽게 떠밀면서 먼 바깥으로, 조금 더 먼 바깥으로 나아가게 했다. 작은 골방에서 자기연민에 빠져 있는 대신 세상을 두루 살피며 다양한 삶의 방식을 배우게 했다. 의미 없다고 느꼈던 재료나 나쁘게만 보였던 사건에서 좋은 메시지를 발견하는 법을 알게 했다. 더 나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했다. 그렇게 내 삶의 의미를 스스로 써내려가는 자리에 설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책은 나에게 오직 좋은 것만 주었던 내 일에 보내는 감사 편지다.”
_ 최혜진, 『에디토리얼 씽킹』
『에디토리얼 씽킹』은 에디터로 20년 동안 일해온 최혜진 작가가 재료 수집, 컨셉, 프레임, 질문 등 12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편집자처럼 생각하는 법, 즉 ‘에디토리얼 씽킹’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이 정도의 소개만 읽으면 잡지 편집, 기획에 대한 방법론만 다루는 책 같아 보이죠. 편집 일과 나는 관련 없다고 생각하며 집었던 책을 내려놓을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이 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편집하는 과정에서 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서사를 만들어 내는 법을 배울 수 있어요.
저자는 시대가 변해가면서 온 세상이 잡지화되어 가고, 온 국민이 준 에디터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해요. 개인이 편집하는 콘텐츠 공급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시대이니까요. 이런 시대에 휩쓸리지 않고 나다움을 유지하려면, 나만의 서사를 만들어내기 위한 에디토리얼 씽킹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읽다 보면 에디토리얼 씽킹은 꼭 지금뿐만 아니라 그 어떤 시대에서도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중요한 능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항상 고난과 역경을 겪고 성장하는 것처럼,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라면 다가오는 다양한 얼굴의 불행들을 나의 이야기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수적이기 때문이에요. 평소와 똑같은 일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재조합하고, 불필요한 부분은 잘라내고, 연관이 없어보이는 서로 다른 사건들을 연결시키면서 나만의 서사를 만들어보게 하는 책, 『에디토리얼 씽킹』입니다.
“지난 20년간 에디터로 일하며 얻은 가장 소중한 삶의 자산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의미의 최종 편집권이 나에게 있다’는 감각이다. 삶은 언제나 예측 불가하고, 뒤죽박죽 난장판 같은 사건과 사실이 끊임없이 들이닥친다. 그것을 소음이라고 생각하면서 괴로워하는 선택지도 있고, 의미로 승화해서 다른 현실을 사는 선택지도 있다.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하며 살고 싶은가?”
_ 최혜진, 『에디토리얼 씽킹』
다른 삶은 다른 관점으로부터
『단 한 사람』

“때로 목화는 “많이 죽었어”라는 말 외에는 꺼내지 못했다. 그럴 때 목수는 “한 명을 살렸다”라고 기록했다.”
_ 최진영, 『단 한 사람』
『단 한 사람』은 죽어가는 사람들 가운데 단 한 사람만 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목화’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 능력은 할머니 임천자, 엄마 장미수, 딸 신목화까지 3대에 거쳐 내려오는데요.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이 세 사람이 같은 능력을 얼마나 다르게 바라보는지, 그 관점의 차이가 세 사람의 삶과 가치관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보여줍니다.
할머니인 임천자는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을 기적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반면 엄마인 장미수는 겨우 단 한 명만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비관적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능력을 저주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할머니, 엄마 아래에서 새롭게 그 능력을 받은 딸 목화는 상반된 두 사람의 인식 속에 혼란을 겪으며 과연 나는 이 능력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합니다.
목화에게는 가정 폭력을 저지른 사람을 살리게 되는 일도, 꼭 살리고 싶은 사람이 죽어가는 장면을 보게 되는 일도, 겨우 살려둔 사람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일도 벌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희망을 품었다가 좌절을 하기도 하고, 비관을 하기도, 회피를 하기도 하는데요. 목화가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신의 삶에 이 사건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자신만의 정의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우리가 불행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과도 닿아 있기에 큰 위로로 다가옵니다. 과연 나라면 어떤 관점을 택했을까, 지금 나는 내 삶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며 읽기 좋은 소설입니다.
“목화가 인정하고 받아들인 이상, 온전히 자기 것으로 거둔 이상 이제 그것은 목화의 것이었다. 임천자의 단 한 명은 기적. 장미수의 단 한 명은 겨우. 신목화의 단 한 명은, 단 한 사람.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다.”
_ 최진영, 『단 한 사람』
나의 여름에 이름 붙이기
『너무나 많은 여름이』

“좋은 여름은 누군가 죽고 난 뒤의 여름, 누군가 죽고 난 뒤의 여름은 최고의 여름… 나의 마음에 따라 이름은 그때그때 달라지지만, 여름은 언제나 하나뿐이다. 하나뿐인 여름이 해마다 시작된다. 그 여름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느냐는 나의 마음에 달린 문제다.”
_ 김연수, 『너무나 많은 여름이』
『너무나 많은 여름이』는 김연수 작가가 가파도 레지던시에 머물며, 작은 서점에서 열리는 낭독회에서 읽기 위해 쓴 단편 소설들을 모은 소설집입니다. 기존의 단편집에 비해 더 많은 스무 편이 넘는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죠. 다정함이 넘치는 단편들 중 특히 표제작 「너무나 많은 여름이」는 앞선 단편들에서 보여준 메세지를 모두 모아둔 단편처럼 읽힙니다.
코로나 시기,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접한 화자는 슬픔, 상실, 허무의 감정을 겪는데요. 그러던 중 암 투병 중이었던 일본인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가 죽음을 앞둔 불확실한 삶에 맞서고자 동료 이소노 마호와 나눈 편지들을 읽게 됩니다. 두려운 죽음 앞에서도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여름을 두고 ‘최고의 여름이 될 거야’라고 말하는 그들의 편지를 통해 화자는 점차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납니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불행한 일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는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가장 의미 있는 부분에 집중하며 자신의 서사를 아름답게 마무리하려는 이의 이야기는 초월적이면서도 경이로운 느낌을 줍니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김연수 작가가 직접 고른 <너무나 많은 여름이 플레이리스트>도 함께 실려있는데요. 음악을 들으며 읽으면 이 책의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올 거예요. 함께 들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살아간다’는 건 우연을 내 인생의 이야기 속으로 녹여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자면 우연이란 ‘나’가 있기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깊이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행운과 불운이 그 모습을 달리하는 게 인간의 우연한 삶이다. 결국 우리에게는 삶에서 일어나는 온갖 우연한 일들을 내 인생으로 끌어들여 녹여낼 수 있느냐, 그러지 못하고 안이하게 외부의 스토리에 내 인생을 내어주고 마느냐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
_ 김연수, 『너무나 많은 여름이』
자신만의 서사를 가진 사람에게 어두웠던 겨울의 시기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될 뿐입니다. 괴롭고 지쳤던 불행마저 내 삶의 이야기로 바꿔버린 순간들이 있었기에, 그 사람의 서사가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겠죠. 이제 정말로 봄이 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계절에 머물고 계신가요? 이미 봄에 와 계신 분들도, 아직 겨울의 한 가운데에 계신 분들도 계실거예요.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3월은 한 해를 진짜로 시작해 보기 좋은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계절의 전환에 맞춰, 우리의 삶도, 관점도 좀 더 따뜻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해 보는 새봄 보내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