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소리로부터 자유로워졌구나.” 그녀의 노래를 들은 누군가가 내뱉은 감탄사입니다. 틀림없이, 송소희는 한계를 깨고 자기 안의 해방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대중에겐 작고 귀여운 ‘국악 소녀’로만 인식돼있던 국악인 송소희의 미발매 자작곡 ‘Not a Dream’이 폭발적인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락 밴드와 전자음, 국악이 결합된 청량하고도 오묘한 사운드는 지금껏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소리’였죠. 금세 유튜브 조회수 1000만 이상을 기록하며 빠르게 퍼졌고, 많은 이들이 의문을 자아냈습니다. “송소희는 대체 언제부터 이런 경지에 오르게 된 거야?”
어떠한 경지에 다다른 예술가의 전환점은 모두 이전의 노력과 시도를 먹고 자란 것입니다. 국악신동이라 불리던 작은 아이가 어떤 시간을 거쳐 마침내 변태했는지, 싱어송라이터 송소희의 궤적을 살펴 봅니다.
국악 신동, 국악하는 꼬마
초등학교 1학년, 8살 때 <전국노래자랑>으로 데뷔했습니다. 본인 체구만한 장구를 치며 한복을 질질 끌고 나타난 어린 아이가 우렁찬 통으로 제주민요 ‘오돌또기’를 불렀죠. 또래들처럼 천진난만하게 웃던 꼬마가 마이크만 잡으면 진중한 소리꾼으로 변하니 이목을 끌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첫 참가에서 인기상을 받았고, 12살 때 다시 나가 연말 결선 대상까지 받으며 제대로 된 스타 국악인이 되었습니다. 최연소 타이틀을 달고 지방 곳곳으로 공연을 다니며 화려한 시절을 보냈었죠.
이후 고등학교 즈음엔 노래 경연 프로그램과 사극 OST로 존재감을 유지했습니다. 시장 입지가 넓지 않은 국악의 특성 상 TV 출연은 아주 효과적인 것이었는데요. KBS <불후의 명곡>에 9년 여 간 꾸준히 참여했고,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의 OST를 작업하기도 했습니다.
국악 바깥의 세상으로 조금씩
성인이 된 후엔 본격적으로 국악의 현대식 풀이를 시작합니다. 2018년 에스닉 퓨전 밴드 두번째 달과 콜라보해 ‘모던 민요’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송소희의 전공인 경기민요 곡만을 골라 서양악기와 결합했는데요. 피아노, 바이올린, 어쿠스틱기타 등 부드럽고 차분한 악기로 친근하고 안정적인 톤을 자아낸 앨범이었습니다.
2017년부터 진행한 <기진맥진 프로젝트>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쟁 명인 이태백과의 ‘집장가’, 피아니스트 양방언과의 ‘정선아리랑’ 등 타 분야 최고 수준의 전문가와 협업하며 국악의 예술적 수준을 높이고자 하는 시도였습니다.
이때 이지수 음악감독과 작업한 ‘밀양아리랑’이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영화 <실미도>, <올드 보이>를 작업한 감독답게 드라마틱한 구성으로 열혈한 감정선을 이끌어냈죠.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라는 가사를 절절히 와닿게 하는 감성적인 편곡이었습니다. 조금씩 국악 바깥의 세상과 소통하려 한 노력이 돋보였던 시기입니다.
내가 부를 곡을 직접 쓰다


이후 더 본격적으로 능동성을 발휘한 건 2022년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로 소속사를 옮기면서부터입니다. 10CM, 옥상달빛, 선우정아, 새소년 등이 거쳐간 굵직한 인디 레이블로 국악이 아닌 현대 음악을 하는 곳인데요.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지원한다는 모토를 따라 이곳에서 송소희는 ‘싱어송라이터’라는 역할을 시작합니다.
“그 동안은 소극적인 음악을 해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국악적인 것보다 더 넓은 반경에서 음악적인 것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작곡, 편곡, 믹스, 미디 등을 스스로 찾아 공부하면서 제 안에 있는 것을 해소할 수 있는 또 다른 장치가 생겼어요.”
_송소희 인터뷰, 주간현대, 이제훈 기자
고등학교 때부터 자라났다는 “국악 너머 음악에 대한 호기심”이 형체를 갖게 됐습니다. 송소희가 직접 작사, 작곡, 편곡을 맡은 신곡들은 그녀의 낯선 면모를 양껏 보여줬습니다. 인위적인 전자음과 자조적인 태도의 보컬이 뒤섞여 후크송 같은 인상을 주는 ‘세상은 요지경 (Asurajang)’, 주술적인 분위기를 견고하게 쌓아 올린 ‘Infodemics’ 등을 통해 새로운 방향성을 공표했습니다.
특히 정보(information)와 전염병(epidemic)의 합성어 ‘Infodemics(인포데믹스)’에 대해선 “요즘 세상엔 가짜가 판을 치고 있고, 진짜를 알게 됐을 때도 이를 가볍게 대하는 것 같다. 말의 무게감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음악을 자신의 가치관을 전하는 메신저로 활용하는 태도, 정답이 정해져 획일화를 최고로 삼던 클래식과는 분명히 다른 방향입니다.
자신의 소리를 찾다

그렇게 2024년, 첫 미니앨범 <공중무용>이 나왔습니다. 들판을 걸으며 무뎌진 다정함을 일깨우길 바라는 왈츠풍의 ‘주야곡(晝野曲)’,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서 강강술래를 추는 일렉트로 팝 ‘공중무용’, 진한 어둠의 해저에서도 서로 숨을 불어 넣는 모습을 하프와 신시사이저 소리로 대비시킨 ‘진한 바다를 거슬러’, 퍼커션으로 숲의 신비로운 생명력을 표현한 ‘사슴신’. 4개의 트랙 하나 하나 온전하게 꽉 차 있습니다. 들판, 사막, 바다, 숲이라는 테마로 자신만의 ‘자연’을 표현했습니다.
사실 음악의 구조나 만듦새는 기존 대중음악과 비슷합니다. 기타, 드럼, 전자음을 기반으로 한 3분 내외의 곡들입니다. 하지만 무엇과도 다른 특별함을 만드는 건 송소희라는 악기입니다. 그녀의 몸에 축적된 국악의 흔적, 청아한 민요 창법이 서양악기와 만났을 때의 이질감이 그만의 스타일이 되었습니다. 낯설지만 잘 뒤섞이는 그 중간 지점을 찾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고민을 했을지 느껴집니다.
“마음을 놓아 이곳에서 날 불러”
이 <공중무용> 앨범의 미발매 자작곡이 바로 ‘Not a Dream’ 입니다. 지난해 12월 개최한 첫 단독 콘서트에서 공개되었습니다. 가볍게 달렸을 때 적당히 두근거리는 심박수, 딱 기분 좋은 속도로 진행되는 밴드 반주에 송소희의 청량한 고음이 터트려지는 곡입니다. 상쾌하고, 자유롭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 곡을 들으며 행복을 느끼는 건 노래하는 화자가 먼저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눈을 감고 입꼬리에 미소를 건 채 씩씩하게 소리치는 그녀의 모습에선 해방과 희열이 피어납니다. 단단한 행복이 솟구치고 있습니다. 누군가 “소리로부터 자유로워졌구나”라고 말한 이유입니다.
송소희의 전환은 한순간에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십 여 년 전부터 피어난 호기심을 적극적으로 마주하고 집요하게 고민한 결과입니다. 타 장르 창작자와 협업하고 내가 하고픈 말을 가사로 쓰며 서양악기 다루는 법을 익혔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국악의 색을 지켜냈습니다.
송소희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집니다. 앨범 전체 프로듀싱을 성공적으로 해낸 만큼 이젠 그녀의 가창력 뿐 아니라 기획력이 기대됩니다. 어떤 창작자가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것은 그가 늘 성장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