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랑살랑 코끝을 스치는 봄바람 사이로 어지러이 흩날리는 벚꽃잎들, 한여름 들판 위 앙증맞게 피어난 토끼풀 사이에서 발견한 행운의 네잎클로버, 발밑을 노란 물결로 물들인 은행나무잎까지. 아름다운 자연의 조각을 문득 훔치고 싶었던 적 있지 않나요? 어린 시절에는 종종 공원에서 주워 온 어여쁜 단풍잎 한 장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책 사이에 슬며시 넣어두곤 했었는데요. 우연히 펼친 페이지 사이로 언젠가의 낙엽 한 장을 발견한 날에는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 반갑기도 했더랬죠. 독서의 순간을 한층 더 풍성하고 특별하게 만들어 줄, 자연의 조각을 채집한 책갈피 4개를 소개합니다.
식물채집 책갈피

2015년 설립된 오이뮤(OIMU)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이자 디자인 스튜디오입니다. 주로 인쇄 매체와 제품을 기반으로 한국적인 문화와 정서를 표현하는 디자인을 선보이곤 하죠. 식물 채집 책갈피는 한복 원단에 사용되는 노방 원단으로 제작되었는데요. 토끼풀부터 나팔꽃, 팥배나무, 은행나무, 냉이, 코스모스 등 식물들의 이미지와 이름이 자수로 새겨져 있습니다. 두 겹의 노방을 덧댄 뒤 네 면을 탄탄하게 마감하여 노방 원단 특유의 까슬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질감이 느껴지죠.
제품 패키지를 활용하면 나만의 책갈피를 만들어 볼 수도 있는데요. 책갈피가 들어있던 얇게 씌운 종이 막을 걷어낸 뒤 직접 채집한 식물을 넣으면 세상에 하나뿐인 책갈피가 완성됩니다. 오이뮤는 최근 넷플릭스의 화제의 시리즈 <폭싹 속앗수다>와 협업한 책갈피를 선보이기도 했는데요. 제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드라마 배경을 살려 봄마다 노란빛으로 섬을 물들이는 유채꽃을 자수로 표현했습니다. 이토록 오밀조밀 사랑스러운 책갈피를 자칫하면 쉽게 잃어버릴까 걱정이 된다면, 병풍 접지 형태로 제작된 오이뮤의 ‘책갈피 모음집’에 책갈피를 보관할 수도 있습니다.
식물채집 책갈피 구매 페이지
INSTAGRAM : @oimu_
우리씨앗갈피

우리씨앗갈피는 박미루 작가가 선보이는 책갈피인데요. 드로잉부터 텍스트, 사진, 직물 등의 다양한 매체를 다루는 박미루 작가는 한국 토종 씨앗을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선비잡이콩과 어금니동부, 뿔시금이라는 이름은 낯설지만 정겨움이 느껴지는 3개의 씨앗 일러스트가 한 장씩 그려져 있죠. 책갈피는 한지 위에 인쇄하고 스티치로 한 땀 한 땀 마감하여 책과 함께 두었을 때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데요. 뒷면 하단에는 이름의 유래부터 향과 맛, 파종 시기와 수확 시기 등을 소개하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토종’이란 일정한 장소의 기후와 풍토에 오랫동안 잘 적응하며 대대로 살아온 종자를 뜻합니다. 이상기후로 인한 기후 위기가 계속될수록, 변화무쌍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는 토종 농작물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하죠. 우리씨앗갈피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과 언니네텃밭의 도움을 통해 제작되었는데요. 수익금의 30%는 여성 농민들의 토종 씨앗 보전 활동을 돕는 후원금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묵묵하고 성실하게 이 땅을 지켜온 모든 생명들이 튼튼하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씨앗처럼 작지만 강인한 응원을 건네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씨앗갈피 구매 페이지
INSTAGRAM : @miru_ish
채집 엽서 세트

오티에이치콤마(othcomma)는 일상과 여행 속에서 받은 영감을 하나로 엮어 이야기를 만드는 브랜드입니다. 예진문 디렉터는 직접 촬영한 사진을 기반으로 시각부터 촉각, 후각 등 다채로운 방식으로 이미지와 감정을 전개하죠. 채집 엽서 세트는 자연의 조각들이 소쿠리 안에 담긴 모습에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요. 꽃이나 채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생기를 잃고 점차 시들어가기에, 생명력으로 반짝이는 찰나의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종이 위에 고스란히 옮겨두었다고 합니다.
책갈피는 현재 3가지 종류로 만나볼 수 있는데요. 꽃 세트에는 봄이면 길을 걷다 쉽게 마주할 수 있는 하얀 철쭉과 팬지, 연 하늘빛 델피늄이 담겨 있습니다. 채소 세트에는 싱싱한 브로콜리와 토마토, 가지가 담겨 있으며 나무로 엮은 소쿠리 위에 몸을 웅크리고 잠이 든 고양이 세트까지 구매할 수 있죠. 손바닥 크기의 적당한 사이즈로 제작된 엽서는 심심한 벽을 알록달록 꾸며줄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활자로 빼곡한 흑백 세계 속에서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책갈피로도 손색없는 아이템입니다.
채집 엽서 세트 구매 페이지
INSTAGRAM : @othcomma
과일 책갈피

2016년부터 활동한 이옥토 작가는 사진과 영상을 주요 매체로 활동하는 사진가인데요. 사물의 투명함과 불투명함 그 어딘가를 포착하며 특유의 창백하고도 서늘한 시선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습니다. 한강의 책 <채식주의자> 개정판 표지를 장식한 푸르른 꽃 사진 또한 그녀의 작품이기도 하죠.
이옥토 작가는 과일이나 식물 등을 주제로 독특한 책갈피를 선보이는데요. 얇게 저민 빨간 사과부터 레몬, 백도, 수박, 딸기 한 조각은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반투명 PET 재질에 UV 인쇄로 제작되어 페이지 위에 올려두면 뒷면의 글자가 투명하게 비치곤 하죠. 이 책갈피에는 독특하게도 직접 조향한 향이 입혀져 있는데요. 딸기에서는 딸기 향이, 백도에서는 백도 향이 은은히 나기에 마치 눈앞에 과일이 있는 듯한 생생한 기분을 느낄 수 있죠. 하나의 오브제처럼 정교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제품입니다.
과일 책갈피 구매 페이지
INSTAGRAM : @okto_lee
현재 연희동의 독립 서점 ‘유어마인드’에서는 「72개의 책갈피 2025」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이 전시에서는 72명의 작가가 선보이는 각양각색의 개성 있는 책갈피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몇몇 책갈피들도 이곳에서 함께 살펴볼 수 있죠.
매번 새로운 감탄과 경이를 자아내는 자연의 존재들. 자연의 조각을 오롯이 간직하고 싶다면, 책을 덮는 매 순간을 더 특별하게 기억하고 싶다면, 책갈피로 소소한 기쁨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이 책갈피들과 함께 당신의 독서 생활이 더 즐겁고 풍요로워지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