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왜 그랬을까
유년을 다룬 만화 3선

한 뼘씩 어른이 되던 순간,
과거의 나와 다시 만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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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에 문득 떠올라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순간이 있죠. 당황해서 엉뚱한 말을 내뱉거나, 망설이다 끝내 하지 못한 말들이 머릿속에서 되감아집니다. 기억을 따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가장 심하게 탔던 시절은 아마 10대가 아닐까 합니다. 별것 아닌 일에도 유난스레 화가 나고, 때로는 이유 없이 투덜대며 짜증을 내기도 했죠. 그땐 뭐가 그렇게 매일 마음을 요동치게 했을까요?

어른이 된 지금 옛 앨범을 펼쳐 보면 모든 순간이 그저 아름답기만 합니다. 울음을 터뜨리던 모습도 부루퉁한 표정도 인제 와서는 귀엽게만 보이죠. 어쩌면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그때처럼 있는 그대로 감정을 느끼고 마음껏 표현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시절의 우리는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고, 때로는 조용히 말을 걸어오기도 합니다. 지나간 시절을 고스란히 담아낸 만화 세 편을 소개합니다. 과거의 우리는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있을까요? 오늘의 나는 그때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서툴고 투명했던
『열세 살의 여름』

이미지 출처: 창비

때는 1998년, 초등학교 6학년인 해원은 단짝 친구 진아와 교환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함께 등교하고, 떡볶이를 먹고, 숙제도 같이하는 친구지만 해원은 처음으로 진아에게 말 못 할 비밀이 생깁니다. 바로 같은 반 산호를 좋아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수업 시간에도 자꾸만 산호에게 시선이 가고, 산호와 마주칠 때마다 얼굴이 붉게 물들죠. 이런 모습은 해원의 짝이었던 우진에게 너무 잘 보입니다. 매일 해원을 놀리고 못살게 구는 우진은 사실 해원을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이 만화에는 해원, 산호, 우진, 진아의 열세 살 여름이 담겨 있습니다. 익숙했던 것들과의 한 시절이 마무리되고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크고 작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어른이 된 독자들을 열세 살 여름으로 데려갑니다. 자주 가던 떡볶이집은 편의점으로 바뀌고, 단짝 친구는 먼 곳으로 이사를 가고, 첫사랑은 흐지부지되었죠. 해원이 그랬듯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도 남아 있는 장면일지 모릅니다. 해원은 즐겁게 다녔던 피아노 학원을 그만뒀고, 머리를 짧게 자른 중학생이 됩니다.

90년대를 추억하며 아름다운 여행을 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특히 이 책을 추천합니다. 우리 모두의 기억이 담긴 이야기가 시대의 모습을 생생하게 반영한 그림과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그때의 기억 속 모든 장소와 친구와 추억들에 잘 지내냐는 안부를 묻고 싶습니다.

이미지 출처: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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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고 싶은 마음
『빨개져버린』

이미지 출처: 아름드리미디어

눈병이 나 쓰게 된 안대에서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반에 들어서는 순간 아이들이 일제히 나를 주목합니다. 궁금해하고 걱정하고 징그러워하기도 하죠. 나는 그 관심이 싫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학교 선생님도 버스 아저씨도 분식집 아줌마도 한 번씩 안대 쓴 나에게 말을 걸며 걱정해 주었죠. 눈병은 점점 가라앉고 있었지만 나는 오히려 불안해집니다. 안대를 오래 쓰고 싶었기 때문이죠. 나는 결국 집에서는 안대를 벗고 학교에 갈 땐 안대를 씁니다. 이 거짓말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요? 마침내 이 거짓말이 들통났을 때 나는 어떻게 될까요?

어릴 땐 별것도 아닌 게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다가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 지 지나치게 신경을 썼고, 친구들의 시선, 말 한마디가 나를 좌지우지하곤 했죠. 창피를 좀 당했어도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안하지 않게 담담히 말해주고 싶습니다. 무리하게 다른 사람의 관심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고요. 금세 피어올랐다가 흔적도 없이 사그라드는 남들의 관심보다 애초에 휘둘리지 않을 내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도 알려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 쪽에는 어른에게도 안대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른들은 뭐라도 있어 보이게 꾸며내는 일에 능숙하니까요. 그때의 나는 앞으로도 수많은 안대를 쓰고 벗으며 조금씩 깨닫게 되지 않을까요?

이미지 출처: 아름드리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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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과 경쟁 사이
『반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

이미지 출처: 귤프레스

한국의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옆자리의 친한 친구와 경쟁해야 한다는 생각에 남몰래 괴로워한 적이 있을 겁니다. 『며느라기』로 큰 화제가 되었던 수신지 작가가 90년대 초 어느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학원 만화로 돌아왔습니다. 서로 단짝인 세 여학생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 저마다의 고민이 섬세하게 담겨있습니다. 매번 1등을 하는 우등생이자 모범생인 아랑은 자기 성적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엄마가 못마땅하고, 모범생으로 보이기 싫은 우등생 연두는 아랑을 이기고 싶으면서도 공붓벌레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 인기 드라마를 본 척합니다. 1, 2등을 도맡아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우등생이 되고 싶은 하은은 수학 문제를 친절히 풀어주는 과외 선생님에게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 이해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늘 붙어 다니는 셋이지만 마음속에선 서로 다른 눈빛과 생각이 자라나고 있었죠.

하지만 조금 얄밉게 보일 수 있어도 미운 사람은 없습니다. 인물들의 모나고 서툰 마음이 느껴지고, 어쩌면 우리도 그런 적이 있을 테니까요.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는 드러나지 않던 인물들의 속마음이 혼자 있을 때 솔직하게 나오는 장면을 보면 한 명 한 명에게 공감하게 됩니다. 4권까지 나온 이 만화가 오래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하루하루가 고되지만 교실 안 서로가 위안이 되고 힘이 돼 주었던 그 시절을 조금 더 보고 싶습니다.

이미지 출처: 귤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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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의 만화를 읽고 나면 어쩐지 마음 한편이 뭉클해집니다. 그 시절의 내가 얼마나 진지하게 사랑했고, 친구를 아꼈으며,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내고 있었는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됩니다. 부끄럽고 서툴렀지만 그만큼 솔직했던 나. 그때의 나는 어쩌면 지금의 나보다 더 자주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이 만화들은 단순한 성장의 기록이 아닙니다. 그 시절의 내가 건네는 말에 조용히 귀 기울이는 일, 지금의 내가 그 아이를 다정히 안아주는 일. 바로 그 과정을 함께 걷게 해주는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오늘만큼은 만화 속 주인공들을 통해 어린 나와 마주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건네는 위로와 응원을 가만히 들어보면서요.


Picture of 김자현

김자현

그림과 글, 잡다한 취향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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