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만드는
또 다른 방법

정상의 바깥에서
관계를 다시 그리는 예술들
Edited by

연애 예능 프로그램 「나는 솔로」는 매 회차마다 큰 화제를 불러일으킵니다. 결혼을 꿈꾸는 솔로들이 낯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경쟁하고, 선택받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담은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 한국 사회가 여전히 ‘정상 가족’이라는 구조를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들이 추구하는 관계는 연애가 아닌 ‘결혼’이며, 이는 곧 법적 혼인과 혈연 중심의 핵가족을 이상적인 삶의 형태로 전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가족’이라 함은 대부분 이성애 부부와 그 자녀로 이루어진 핵가족을 떠올리게 됩니다. 주거 정책, 대출, 복지 혜택뿐 아니라 일상적인 시선과 기대마저 이 기준을 중심으로 설정되어 있지요. ‘신혼부부’가 주택 분양에서 우선순위를 갖고, 일정한 나이를 넘긴 미혼자는 주변의 걱정 섞인 시선을 받습니다. 이는 결혼을 원하지 않더라도, 보다 안정된 삶을 위해 ‘정상 가족’이라는 제도에 편입될 것을 강요받는 구조를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 제도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정상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가족의 이면은 어떤 감정과 현실로 채워져 있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묻고, 동시대 예술 작품 속에서 대안적 공동체를 상상하며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하는 가족의 조건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정상 가족, 그 이면의 균열

한국 사회의 미디어는 오랜 시간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습니다. 안정적이고 유대감 있는 가정이야말로 건강한 사회 구성원의 출발점이라는 통념이 지배적이죠.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거리가 멉니다. 우리는 이미 뉴스와 드라마를 통해 가정 내 갈등과 폭력을 반복적으로 목격하고 있습니다.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말과 시선, 침묵으로도 행해지는 억압이 가정 내부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불행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다

아티스트 그룹 장영혜중공업의 텍스트 애니메이션 ‘불행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다’는 이런 현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흰 화면 위에 계속해서 나타나는 문장들은 명절에 모인 친척들이 서로를 무시하고 상처 주며, 결국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폭력적으로 마무리되는 익숙한 풍경을 담고 있지요. 단란하고 화목해 보이는 가족의 이미지 이면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 억압과 감정의 파편화가 얼마나 보편적인지를 이 작품은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작품의 형식은 간결하지만, 그 안에 담긴 말들은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 무감각해진 가족 내의 폭력과 균열을 날카롭게 직시하게 만듭니다.

장영혜중공업 ‘불행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다’, 이미지 출처: 아트선재센터

‘불행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다’ 감상하기


너만 행복하면 되는거니?

이소영의 영상 작업 ‘드물게 찾아온 시간’은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를 필담 형식으로 풀어냅니다. 부모와 자식은 그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지만, 그 이면에는 함께 살면서도 절대 좁혀질 수 없는 이해의 장벽이 존재합니다. 자녀를 위한다는 이름 아래 강요된 선택들, 그것을 따르지 못해 느끼는 죄책감과 저항이 겹쳐지며, 말하지 못했던 진심들이 배우의 목소리를 통해 쏟아져 나옵니다. 작가는 감정의 파열음이 일어나는 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그동안 ‘침묵’이라는 이름 아래 억눌려 있던 가족 구성원들의 내면을 드러낸 것이죠. ‘사랑하니까’라는 말로 포장된 가족적 의무와 복종의 관계는, 결국 한 개인의 욕망과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소영 ‘드물게 찾아온 시간’, 이미지 출처: 이소영 홈페이지

‘드물게 찾아온 시간’ 감상하기


우리가 진짜 필요로 하는
가족의 조건

우리는 왜 가족을 꾸리고자 할까요? 외로움의 해소, 심리적 안락함, 감정의 교류, 사회적 안전망 등 가족을 원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하지만 이런 욕구가 반드시 혈연과 혼인에 기반한 전통적 가족만을 통해 충족되어야 할까요?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당연한 삶의 궤적이 우리가 원하는 삶을 보장해주지 않지만, 한국 사회의 구조는 여전히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 살고 싶은 삶을 살 수 있고, 진짜 자신에게 필요한 ‘가족’을 선택할 자유가 있는데도 말이죠.

가족보다 가까운 타인

재일 교포인 김인숙 작가에게 가족이란, 일상을 함께 하고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사이입니다. 나고 자란 일본을 떠나 한국 성북동에서 유학을 하며 만난 인연들은 11년간의 한국생활을 지탱해 준 혈연이나 다름없습니다. 작가는 결혼식을 인생의 한 전환점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시선에서 착안해, 성북동에서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잔치’를 열었습니다. 서약이나 제도보다도 서로를 위한 다정한 실천과 생활을 공유하는 자리였죠. 이 프로젝트는 감정과 연대의 경험을 통해 구성된 가족같은 공동체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줍니다. 우리가 진짜 필요로 하는 가족은 피가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나를 이해해주고 지지해주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김인숙 ‘가족이 되는 집’, 이미지 출처: 캔파운데이션

털가족과의 유대

이제 ‘반려 동물도 가족인가?’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습니다. 반려 동물은 우리와 대화를 나눌 수는 없지만, 실제로 피를 나눈 가족보다 더 가깝고 위로가 되는 존재가 되어 줍니다. 특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자신도 여유도 없는 요즘, 점점 더 많은 1인가구는 혼자 사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반려 동물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만큼 반려동물은 우리 삶에 깊숙히 들어와 당당한 가족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사진 작가 윤정미는 반려 동물과 주인을 촬영하며 그들이 어딘가 비슷하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강아지는 느긋하고, 명랑한 주인과 사는 고양이는 집안을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사고를 치고는, 눈망울을 빛내며 차마 혼낼 수 없게 만들죠.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해서 서로의 감정을 느낄 수 없는게 아닙니다. 오랜 시간 서로의 정서에 반응하고 일상을 공유한 결과로 맺어진 유사성은, 피를 나눈 가족보다도 더 서로 의지하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윤정미 ‘용산동 할머니와 갑돌이’, 이미지 출처: 경향신문

연대로 엮인
새로운 공동체

공통의 감각, 공유된 경험은 관계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혈연이나 제도로 맺어진 것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감정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강한 연대감이 생깁니다. 예술은 이런 관계를 공동체의 형태로 실현하고 있습니다.

조금은 다른 나를 포용하는 가족

퀴어라는 정체성은 보편적인 사회라는 테두리 바깥에서 머물러야 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창구나 플랫폼, 삶을 영위하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 그들의 자연스러운 삶을 응원하는 감정적 지지를 얻기 쉽지 않았죠. 이들을 위해 이강승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에 라운지 형태의 서점 ‘미래의 심상들’을 마련합니다. 소수자 커뮤니티의 역사를 아카이빙하고 퀴어 커뮤니티의 경험을 전시, 책, 영상으로 나누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지지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이곳에서는 공동의 기억으로 공유되며, 연대의 기반이 되어갑니다. 주류 사회 바깥의 삶이라는 공통의 감각은 단지 서로를 이해하고 연결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다는 용기를 줍니다.

이강승, ‘미래의 심상들’ 아카이빙, 이미지 출처: 갤러리 현대

예술로 뭉친 사회적 가족

대만의 청년들은 타이완의 폐공장을 ‘능성싱能盛興 팩토리’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개조합니다. 예술가, 활동가, 퀴어 커뮤니티가 함께 모여 사는 이 공간에서 예술을 매개로 한 대안적 공동체를 실험하죠. 각자의 작업을 존중하며 함께 사는 이들은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관계의 방식을 스스로 재구성합니다. 그들은 서로를 조건 없이 돌보고 지지하며, 억지로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속에서 진짜 가족처럼 살아갑니다. 능성싱 팀은 팩토리에 머물렀던 모든 사람들을 가족으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예술이라는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관계야 말로 단순한 연대를 넘어 ‘사회적 가족’으로 연결된다는 겁니다. 자칫 고립될 수 있는 고독한 예술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원동력은 역시 ‘함께 하는 힘’인가봅니다. 이처럼 함께 있고 싶어서 머무는 자발적 관계야말로 우리가 진짜 필요로 하는 가족이 아닐까요?

대만의 능성싱 팩토리, 이미지 출처: etnikobandidoinfoshop
대만의 능성싱 팩토리, 이미지 출처: etnikobandidoinfoshop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에서, 법적 연고가 없는 사람들이 모여 가족을 이루는 모습은 제도와 혈연 중심의 가족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따뜻한 공동체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영화 속 인물은 이렇게 말합니다.

‘정상 가족’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기준이자 제도로 작동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말해지지 못한 수많은 억압과 고통이 존재합니다. 동시대 예술은 이러한 틀을 벗어난 삶을 조명하며, 우리가 진정으로 원했던 가족의 조건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묻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는 제도의 이름 없이도 서로를 지탱할 수 있는, 우리가 진짜 원하는 새로운 가족을 상상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Picture of 안수연

안수연

하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일도 많은 미술 노동자.
경계없는 문화예술을 옹호합니다.

에디터의 아티클 더 보기


문화예술 전문 플랫폼과 협업하고 싶다면

지금 ANTIEGG 제휴소개서를 확인해 보세요!

– 위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로 ANTIEGG에 저작권이 있습니다.
– 위 콘텐츠의 사전 동의 없는 2차 가공 및 영리적인 이용을 금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