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새 한 마리가
알려준 가족의 의미

만화 『쿠지마 노래하면 집이 파다닥』 속
가족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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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매일 얼굴을 마주하지만, 오히려 속마음을 가장 말하기 어려운 사이일지도 모릅니다. 익숙함 속에서 조심성이 사라지고, 애정 표현은 어색해지며, 마음속 감정은 쌓이기만 하죠. 현실과 이상의 가족이 떠올라서였을까요. 콘노 아키라의 독특한 만화,『쿠지마 노래하면 집이 파다닥』을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가족’이었습니다.

이 만화는 정체불명의 새 ‘쿠지마’가 한 가정에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엔 단순한 개그 만화처럼 보이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무해한 에피소드에 마음 놓고 미소 짓게 됩니다. 쿠지마라는 낯선 존재는 가족 사이에 조용히 쌓이기 시작한 긴장을 푸는 열쇠가 되어주고, 독자에게 각자의 가족을 돌아보게 합니다. 이 가족은 쿠지마를 통해 어떤 변화를 겪게 되었을까요? 이 특별한 동거를 통해 다시금 떠올리게 되는 가족의 의미를 따라가 봅니다.


관용,
그게 무엇이든 함께 있어도 괜찮아

이미지 출처: 미우

중학교 1학년 가을, 아라타는 자판기 밑에서 사람들이 떨어뜨리고 간 동전을 찾고 있는 이상한 것, 쿠지마를 만납니다. 아라타는 밥을 먹고 싶어 동전을 찾고 있다는 쿠지마의 말을 듣고 선뜻 그를 집으로 데려옵니다. 부모님은 일하러 가 밤늦게 들어오고, 대학 입시에 실패해 재수를 준비하는 형은 방에서 하루 종일 나오지 않습니다. 고요한 집에서 둘은 밥부터 먹습니다. 쿠지마는 봄까지 있어도 괜찮냐고 부탁하고, 아라타의 부모님은 동네 강에서 벌레를 먹는 쿠지마를 본 뒤 결국 같이 살기를 허락합니다. 사람처럼 눈치껏 조용히 하기엔 아직 어린 쿠지마 때문에 형의 심기만 약간 불편해졌을 뿐이었죠.

가족 누구도 쿠지마의 정체를 파고들지 않습니다. 어디에서 왜 왔는지, 새가 맞는지, 맞다면 어떤 새인지 꼬치꼬치 따지지 않습니다. 대신 무엇이 먹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관심을 기울입니다. 아라타의 가족이 쿠지마에게 보여준 관용은 그들 가족이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이 가까워지는,
가족의 거리

이미지 출처: 콘노 아키라 인스타그램

쿠지마는 러시아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는 죽었고, 러시아 사람이 쿠지마를 주워서 키웠죠. 쿠지마는 본래 철새처럼 계절에 따라 이동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쿠지마를 키운 맥심은 언젠가 쿠지마가 무리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 러시아를 떠나 일본에 가보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쿠지마가 아라타 가족에게 봄까지만 일본에 있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죠. 공부 때문에 소원해진 형에게 서운함이 쌓였던 아라타는 쿠지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활기를 되찾습니다. 봄이 멀지 않았음을 느끼며 쿠지마와 같이하고 싶은 것을 생각합니다. 아라타에게 쿠지마는 갑작스레 멀어진 형과의 거리감을 좁혀준 형이자 동생이자 친구였습니다. 형 스구루에게도 쿠지마는 동생을 향한 미안함을 대신 해결해 줄 수 있는 고마운 존재였죠.

한편, 즐거운 추억이 하나둘씩 쌓이는 중에도 가끔 쿠지마는 맥심을 보기 위해 러시아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너무 괴로우면 돌아오라’라던 맥심의 말을 기억하며 외로움을 밀어 둡니다. 아라타 가족과 지내는 일은 즐거웠으니까요. 쿠지마가 겪는 성장통이 인상적입니다. 겨우 3살밖에 안 된 쿠지마는 어른이 되기 위해 가족인 맥심과 떨어져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고 있는 셈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환영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됐죠. 같이 살고 있어도 적막했던 아라타네 집이 잠시 왔다가는 철새 한 마리로 인해 화기애애하게 변했다는 사실을 쿠지마는 알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종족들을 만나 또 다른 가족을 꾸리게 될지도 모르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요.

물리적으로 멀어져도 마음으로는 연결된 가족, 그리고 각자의 삶을 존중하며 함께할 수 있는 유연한 관계. 가족은 꼭 곁에 머물러야만 가능한 건 아니었습니다.


솔직함,
말하지 않으면 가까워지지 않는 사이

이미지 출처: 미우

쿠지마가 오고 나서 가장 많이 달라진 건 스구루와 아라타의 관계였습니다. 서먹해진 둘 사이를 편하게 만들어준 쿠지마의 마법은 솔직함이었습니다. 쿠지마는 오랜만에 아라타를 찾아온 친구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며 스구루에게 왜 아라타와 자신에겐 항상 매서운 표정을 짓냐며 따집니다. 스구루는 이렇게 답합니다. ‘가족한테 너무 신경을 쓰는 건 기분 나쁘거든?!’

스구루는 가족이라 더욱 낯간지럽고 어색하다는 본심을 터뜨립니다. 가족에게 괜히 투덜대고 남보다 더 무심하게 굴었던 기억이 떠올라 뜨끔하게 됩니다. 다행히 쿠지마는 자신을 ‘가족’으로 여기는 스구루의 진심을 알게 되어 금세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아라타는 티격태격하며 가까워지는 스구루와 쿠지마를 보며 형의 공부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나머지 가족들만 지나치게 배려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수구루의 방문 앞에서 잘 안 풀리는 수학 문제를 물어보는 것으로 형에게 좀 더 편하게 다가가기 시작하죠.

진심을 말해야만 마음이 닿습니다. 가족이기에 말하지 않아도 통한다는 믿음은 오히려 거리를 만들기도 합니다. 솔직한 감정 표현이야말로 가족을 가족답게 만드는 시작일지 모른다는 것을 어린 새 한 마리를 통해 다시 배웁니다.


『쿠지마 노래하면 집이 파다닥』구매 페이지


쿠지마는 어느 날 갑자기 날아든 낯선 존재였지만 그로 인해 이 가족은 서로를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잊고 지냈던 웃음이 돌아오고, 말하지 못했던 마음이 흘러나오죠. 쿠지마는 단지 정체불명의 새가 아니라 가족 사이에 생긴 틈을 서서히 메워주는 존재였습니다.

어쩌면 쿠지마는 가족에 대해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어떤 마음의 은유일지도 모릅니다. 무엇이든 이해 해주는 태도, 물리적 거리보다 마음으로 연결된 사이 그리고 솔직하게 내보이는 진심. 『쿠지마 노래하면 집이 파다닥』은 말합니다. 가족이란 형태가 아니라 서로를 대하는 마음으로 완성된다고요.


Picture of 김자현

김자현

그림과 글, 잡다한 취향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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