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계신가요? 요즘은 원격 근무, 워케이션, 디지털 노마드 같이 다양한 시공간적 환경을 갖춘 일터가 많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사무실 책상에 앉아 동료와 마주 보며 일하고 있을 겁니다. 평일 대부분의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는 우리. 과연 이 시간을 제외하고 퇴근 후 잠깐의 저녁, 이틀의 주말에만 진짜 삶을 찾을 수 있다면 행복한 인생을 보내는 일이 가능할까요? 일터에서의 다양한 관계를 다루는 책 3권을 소개합니다.
동료와 나의 관계
『동경』

『동경』은 유튜브 채널 ‘민음사TV’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한국문학 편집자이자, 소설가인 김화진 작가가 쓴 장편 소설집입니다. 이 책에는 망설이는 사람, 꿈이 싫은 사람, 에버랜드에 가지 않는 사람으로 묘사되는 아름과 민아와 해든,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민아가 진행하는 인형 리페인팅 수업을 수강하며 이 세 사람은 서로를 만나게 되고, 그 인연으로 아름은 민아의 인형 리페인팅 회사에서 함께 일하게 됩니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아름은 해든의 제안으로 시작한 사진 작업에 대한 흥미가 생겨 결국 민아의 회사를 퇴사하고, 해든과 사진 작가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세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함께 뛰어놀며 자란 친구가 아닌, 사회에서 일로 엮여 있는 동료 겸 친구라는 점에서 서로에게 더 복잡한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하고 싶은 일을 일찍 발견해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걸어나가는 친구를 보며 느끼는 부러움, 좋아하는 동료로부터 일에 대해 냉정한 피드백을 받았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서운한 순간들, 날카롭고 예민한 한 마디를 내뱉고 들쭉날쭉한 마음을 자책하는 순간, 마음을 잘 알아주는 익숙한 사람에게 괜히 심술궂어지는 마음 등 일터에서 동료들에게 느낄 법한, 하지만 대놓고 이야기하기는 부끄러웠던 순간들을 포착해 내는데요.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냉철한 피드백을 주고받아야 하는 동료로서의 관계 그리고 늘 좋은 사람이 되어주고 싶은 친구로서의 관계. 상충되는 이 두 관계가 서로 교집합을 이뤄본 적이 있으셨다면,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해야 하는지 고민해본 적 있으시다면, 위로 혹은 해답을 주는 책이 되어줄 거예요. 이 책이 챕터마다 각 인물의 전반적인 서사를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함으로써 그 인물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자연스레 납득하게 만들듯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동료를 조금의 애정과 여유로 이해해 보고 싶게 만드는 책『동경』입니다.
“인형을 리페인팅하는 작업에서 내게 가장 컸던 보람은 고객의 기쁜 얼굴, 진심어린 찬사보다 선배가 마지막 컨펌 때 해주는 코멘트들이었다는 것. 아주 짧은 말들. 잘했어, 아름씨 잘 한다, 이번 건 특히 좋네, 하는 말들이었다는 것. 나는 그걸 이제야 인정할 수 있었다. 이제는 이 일을 하지 않는다고, 선배의 그 말을 들을 일이 없다고 상상할 때에야 나는 되레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는 아직도 이 일이 좋아?”
_김화진, 『동경』
일터와 나의 관계
『일의 말들』

『일의 말들』은 기자와 에디터, 프리랜서 생활을 지나 일하는 여성들의 커뮤니티 ‘뉴그라운드’ 운영까지 다양한 일과 일터를 경험해 본 황효진 작가의 에세이입니다. 유유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말들 시리즈’는 특정 주제에 대한 100개의 문장을 추려 그 문장에서 시작한 작가의 생각을 담아내는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일의 말들』에서도 역시 일과 관련된 100개의 문장을 경유하며 단순한 생계유지 수단 차원의 일을 넘어, 한 개인의 삶, 일터라는 공동체, 더 나아가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써 일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차원을 살펴봅니다.
이 책은 일의 특성에서 시작해, 일이 사회와 연결되어 있는 지점까지 범위를 확장해 나가는데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넘어 타인이 하는 일을 살펴보게 하고, 과연 우리 사회의 노동 환경이 어떤 식으로 변화해야 하는지까지 생각해 보게 한다는 점이 인상 깊습니다. 서울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일하고 싶어도 필요한 자원이 몰려 있는 서울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모순, 인스타그램에 일과 관련된 콘텐츠를 올리는 과정도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하는 노동의 일부라는 것, 사무직 노동자도 언제든 산업 재해를 당할 수 있다는 것 등 평소 일하면서 은근히 느끼고 있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던 노동 환경에 대한 다양한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줍니다.
높은 인구 밀도의 도시와 대중교통, 지나친 노동 시간, 과도하게 요구되는 감정 노동, 심지어 특정 종류의 일(유튜버, 라이더 등)을 하는 사람은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노동 환경이 과연 변화하는 사회와 어울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맞는지 잠시 멈춰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일의 말들』입니다.
“오늘날 노동과 소비는 끈끈하게 이어져 있다. 노동에 지친 사람들은 쉽게 소비하는 사람이 되고, 노동과 소비 사이를 끊임없이 왕복하다 보면 노동 시간을 줄이거나 노동 환경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그만큼 성실하게 일한 것이고, 그러니 좋은 것을 많이 누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기도 쉽다. 한 사람의 성실의 정도와 벌이가 반드시 비례하는 건 아닌데도 말이다.”
_황효진, 『일의 말들』
일과 나의 관계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잡지 에디터로서 직장인 생활을 하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황선우 작가가 일과 나의 관계를 건강하게 지키는 법에 대해 쓴 에세이『사랑한다고 말할 용기』입니다. 과연 자신이 하는 일에 100% 만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목숨 걸지도 때려치우지도 않고, 일과 나 사이에 바로 서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누군가는 나와 맞는 일을 찾지 못해 매번 때려치우느라 만족스럽지 못하고 누군가는 나와 일을 지나치게 일치시켜 가며 목숨 걸고 일하느라 만족스럽지 못할 거예요. 황선우 작가는 이 양 극단의 중간 지점에 서서, 일과의 건강한 관계를 맺는 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일과 관련된 현실적인 조언들, 일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도 매우 도움이 되었지만, 오히려 일 밖의 일상을 조명하며 일과 나의 거리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관점이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일터에서 1인분의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건 집에서 성실하게 해낸 1인분의 가사 노동이라는 것, 운동을 처음 배우며 마주하는 허접한 나의 모습을 통해 경쟁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 때론 내 취약함을 드러내 보이며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진짜 강하다는 사실 등 나도 모르는 새 일과 삶 사이 주고받던 영향력을 선명하게 내보이는데요.
일 그리고 삶 중 한 쪽이라도 크게 무너져 본 경험이 있으시다면, 혹은 무너질까 두려워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겠는 분이라면, 일과 나의 건강한 거리감을 통해 당당하게 내 일을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를 내게 해주는 책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를 추천드립니다.
“데드라인이라는 우선순위에 몸과 마음이 쫓길 때 우리는 종종 잊어버린다. 그렇게 비상 모드를 켜둔 채로는 삶과 일도 건강도 오래 지속되지 못 한다는 사실을. 크런치 모드를 접고 다시 적당히 가사노동과 업무에 시간을 배분하면서 나는 확인했다. 전력으로 일에 매달려 있는 것만큼이나 집중해서 잘 일할 수 있도록 나와 내 주변을 돌보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일상을 정성스럽게 영위하는 데서 많은 위대함이 출발한다.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면 그제야 질문할 여유도 생긴다. 수면, 위생, 기타 개인생활을 희생하면서까지 업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 과연 정당한 걸까?”
_황선우,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일과 나, 일터와 나의 관계를 고민할 때 빠짐없이 늘 언급되는 것은 동료와의 관계였습니다. 일도, 일터도 결국 동료들과 함께 일궈나가는 것이기 때문이죠. 세상에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토록 중요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는 만큼 동료와의 관계는 세상의 그 어떤 관계 중 가장 복잡하고, 어렵고, 다루기 힘든 관계입니다. 그렇기에 일을 주제로 하는 책에서 동료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를 다루는 내용이 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상에서 가장 많은 시간 함께 보내기에 서로의 최악의 모습도 최고의 모습도 내보이는 사이이지만,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때론 부정적인 피드백도 해야 하는 사이, 원활한 협업을 위해 적당한 예의와 다정과 관심을 갖춰야 하는 사이인 동료와 과연 어떤 모습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할까요?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선선한 바람이 통할 정도로 적당히 쾌적한 거리를 두며 서로의 성장을 도울 수 있다면 정말 이상적이겠지만, 각자 다른 모양의 사람들이 모인 일터에서 모두와 이런 관계를 맺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럴 땐 어느 먼 훗날 동료가 내 곁을 떠나는 우리의 마지막 날을 상상해 보려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관계에는 끝이 있다는 것을 우린 종종 잊곤 하니까요. 관계의 종착점에 서서 동료에게 무심코 했던 날카로운 말을, 오래 품었던 미움의 감정을, 귀찮아서 건네지 않았던 안부를 후회하지 않도록 우리의 끝을 부러 의식해 봅시다. 삶의 마지막을 떠올리면 지금의 순간에 감사할 수 있게 되듯, 이 관계의 끝을 떠올리면 ‘가족보다 자주 보는 사이’인 동료와의 관계를 조금은 더 애틋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그 애틋함이 일터에서의 시간들을 더 행복하고 충만하게 만드는 시작점이 되어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