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는 고민과 갈등을 겪습니다. 때로는 사람 때문에, 때로는 예측불가능한 사건 때문에. 그런 일들은 가끔은 몸집을 키워 우리의 일상을 잡아먹는 고난이 되기도 합니다. 가족의 변화, 경제적 어려움, 이별, 그리고 예측불가능한 사건과 사고…… 이런 고난은 우리 삶의 방향을 바꾸고, 때로는 거대한 생채기를 남기고 지나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하루를 살아냅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사람들과 대화하고 웃습니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잊을 수 없는 것을 추억하며, 우리는 자신과 타인, 그리고 지나온 시간을 끌어안는 법을 배웁니다. 그렇게 다시 세상과 연결됩니다.
음식으로, 시간으로, 삶의 고난을 지나온 이들. 이들이 빚어낸 ‘살아가는 힘’은 타인을 이해하고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용기이자 화합하는 힘이 됩니다.
나를 위한 한 끼,
메뉴델디아

순자의 부엌은 늘 음식 냄새를 풍깁니다. 순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부엌을 지키고 서서 밥을 짓습니다. 아들이 끼니를 거를지 걱정해 서둘러 아침을 차리지만, 바쁘다는 말과 함께 순자의 식탁은 외면당합니다. 남편도 잦은 술자리로 집을 비워, 순자는 늘 혼자 끼니를 때웁니다.
그러던 중 순자는 우연히 ‘밥집’에 가게 됩니다. 메뉴판이 없고, 주인이 그날 재료에 따라 만드는 음식을 내어주는 식당에서 순자는 처음으로 자신만의 밥상을 받습니다. 아들과 남편을 위해 준비한 식탁이 아니라 순자 한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정갈한 음식과 디저트는 단순한 음식이 아닙니다.
매일 세 끼 음식을 만들면서도, 순자는 한 번도 자신을 위한 음식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런 순자의 식탁이 점차 자신을 위한 음식으로 채워지고, 끼니를 때우는 대신 ‘식사’를 하게 됩니다. 희생과 인내로 점철되었던 순자가 ‘나’를 찾아가는 한 끼 식사가 특별한 이유입니다.
삶을 담은 음식,
길 위의 셰프들

광장시장에 가본 적이 있으신가요?
수많은 관광객과 마약 김밥부터 칼국수와 만두 등 다양한 음식들. 호객하는 호탕한 목소리에 순식간에 정신을 빼앗기게 됩니다. <길 위의 셰프들: 대한민국 서울>은 이 광장시장에 자리를 잡은 조윤선 셰프의 목소리와 삶을 담아냅니다.
평범한 주부였다는 조윤선 셰프는 어느 날 남편의 사업 실패를 겪습니다. 아직 어린아이들을 먹이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조윤선 셰프는 광장시장에 자리 잡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서 배운 칼국수를 팝니다.
손이 부르트도록 밀가루를 반죽하고, 손님을 부르고, 시장 상인들의 텃세와 삶의 고단함을 이겨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삶아낸 조윤선 셰프의 국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닙니다. 위기와 불안을 끊어내고 삶을 이어가는 방식이었습니다. 펄펄 끓는 육수 위에 면을 풀고, 다시 면을 삶는 조윤선 셰프의 칼국수를 통해 누군가는 또 다른 살아가는 힘을 얻겠지요.
우리가 모르는 삶의 열정,
황혼의 시간

우리는 매일 수많은 노인과 마주칩니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거리에서 마주친 노인들의 얼굴은 익숙하지만, 그들의 일상은 잘 알지 못합니다. 아침에 깨어 저녁에 잠이 들 때까지, 노인들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요.
직장에서 은퇴하고, 자녀들도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시기. 오롯이 혼자가 된 노인들의 시간은 청춘의 삶보다 더 비어 있으리라 추측하는 시선이 많습니다. <황혼의 시간>은 어떤 추측도 편견도 없이 노인들의 하루를 들여다봅니다.
“난 아직 노인정엔 가본 적도 없어.”
노인정에 가는 대신 헬스장에 가고, 자전거를 타고 체조를 하는 노인들의 모습은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새로운 물건, 기술이 나오면 그것을 익히고 또 다른 성취를 만들고 싶어합니다. 매일 새로운 음식을 만들고, 사랑하는 이와의 대화를 기대합니다. 하루하루를 그저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열정으로 채운 이들의 모습은 어쩌면 나보다도 반짝이지 않나 생각하게 됩니다.
“단 한 순간도 멍청하게 있을 시간이 없어. 얼마나 소중한 인생이야.”
오랜 편견처럼 노인들은 삶의 끝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와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노인이 됩니다. 나이 듦을 받아들이는 방식, 그리고 그 삶을 존중하는 시선은 결국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기에 가끔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그럴 때면 ‘화합’이라는 단어가 무척이나 멀고도 어렵게 느껴집니다.
세 편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지만, 그 삶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닿습니다. 끝없는 변화와 깊은 고난을 삶에서 받아들이고, 삶을 이어가는 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힘이 될 때가 있으니까요.
나와 다른 이의 하루를 통해 위로를 받고, 내일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너와 나 라는 장벽을 넘어, 서로의 삶이 이어집니다. 그것이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우리’가 되는 순간이 아닐까요. 결국 ‘화합’은 이 순간을 함께 살아가는 힘이라, 감히 적어봅니다.
오늘을 살아내는 모든 이들의 하루가 단단하고 힘차기를, 그 하루가 또 다른 이의 삶과 닿아 반짝이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