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출판물의 매력은 기성 출판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주제와 방식으로 제작된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일 텐데요. 매년 전국 곳곳에서 개최되는 크고 작은 북페어에서는 다양한 독립 출판물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직접 창작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책의 기획 의도나 비하인드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는 건 북페어의 묘미기도 하죠.

2013년부터 시작된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은 국내 최대 규모의 독립 출판 페어입니다. 올해는 10월 17일부터 19일까지, 개관 80주년을 맞이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사흘간 개최되었는데요.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을 각자만의 개성으로 풀어낸 세 권의 신간을 모았습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의 끝자락에서, 지금 주목할 만한 책들을 만나보세요.
낭만 미쳤다

일러스트레이터 누아(NUA)는 알록달록하고 다채로운 색감으로 밝고 경쾌한 에너지를 전달합니다. 이번 퍼블리셔스 테이블에서 공개한 신간 『낭만 미쳤다』는 미술과 음악의 만남이라는 색다른 기획이 돋보이는데요. 세로로 긴 판형과 눈길을 사로잡는 붉은 표지, 통통 튀는 민트색 링 제본에 반짝이는 유광 재질의 종이까지. 기성 출판에서는 볼 수 없는 실험적인 요소가 인상적이죠. 이번 신간에서 누아 작가는 글을 비롯해 그림과 사진으로, 뮤지션 서윤혁은 음악으로 참여했는데요. 내지의 QR코드를 인식하면 이 책을 위해 작곡된 음악 세곡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일상에서 발견한 사소한 기쁨에 ‘낭만’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행복이나 사랑처럼 추상적인 감정보다는, 현실에 선명하게 존재하는 작지만 위대한 순간들을 그러모아 다채로운 이미지로 펼쳐내죠. 틈틈이 수집한 공연 티켓과 영수증, 꽃 포장지로 만든 콜라주나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 색연필과 물감으로 그린 그림들까지. 낭만은 꼭 멋진 순간이 아니라, 평범하고 때로는 엉망인 날들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감사하기보다는 불평하기가 더 쉬운 요즘의 세상 속에서, 일상의 반짝임을 발견하고 선명히 감각하는 비법을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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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GRAM : @libere_nuage
글자여행

정지혜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혜웍스(HYEWORKS)는 글자를 기반으로 로고나 레터링, 폰트 등 그래픽 디자인을 선보이는 스튜디오입니다. 정지혜 디자이너는 넷플릭스 캠페인 슬로건부터 영화 ‘아가씨’와 ‘헤어질 결심’의 타이틀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는데요. 혜웍스는 진(zine)처럼 출판물 기반의 작업을 선보이기도 합니다. 작년에 출간된 『글자를 그리는 여행자』는 여행과 레터링을 주제로 해외 곳곳을 방문하며 느꼈던 인상을 폰트로 표현한 미니북인데요. 글자 ‘이탈리아’ 에서는 뜨거운 태양과 열정이 느껴지고, 스웨덴의 도시 ‘솔나’에서는 숲이 우거진 풍경이 연상되는 듯합니다.

이번 퍼블리셔스 테이블에서 공개한 한정판 『글자여행』은 『글자를 그리는 여행자』의 컬러판 버전인데요. 앙증맞은 손바닥 크기와 실과 바늘로 한 땀 한 땀 바인딩해 수작업의 매력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정지혜 디자이너는 여행과 글자라는 좋아하는 두 가지를 오래 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이렇게 기록을 시작했다고 전하는데요. 각 국가와 도시에서 촬영한 사진과 간판 등을 콜라주한 배경 위로 도시별 폰트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지역별 특성이 글자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이국적인 정취가 느껴지는 책입니다.
WEBSITE : HYEWORKS
INSTAGRAM : @hye.works
The pieces of memory
– Berlin

Gemmanily는 일러스트와 필름 사진을 기반으로 출판물과 상품을 제작하는 젬마(Gemma) 작가의 스튜디오입니다. 작가는 ‘The pieces of memory’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는데요. 집이 아닌 여러 도시에 머물며 마주한 장면을 그림과 사진으로 기록하여 한 권의 이미지북으로 엮어내고 있습니다. 2019년 스페인을 시작으로 2022년에는 파리와 런던, 그리고 얼마 전 퍼블리셔스 테이블에서는 신간 베를린 편을 공개했죠.

책 『The pieces of memory – Berlin』은 ‘기억의 조각들’이라는 이름 그대로 베를린에서 한 달간 채집한 풍경이 담겨 있습니다. 작업 노트를 스캔한 페이지부터 폴라로이드 사진, 연필 드로잉, 수채화, 엽서와 영수증까지.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왜 이 책이 사진집이나 드로잉북이 아닌 이미지북으로 소개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크라프트 재질의 표지 위에 폴라로이드 스티커를 붙이고, 직접 찢어 붙인 마스킹 테이프 위에 도시 이름을 적는 순간 비로소 책은 완성되는데요. 책등을 종이로 감싸지 않고 노출한 제본 방식은 빈티지한 매력을 더합니다. 여행을 기록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시선이 오롯이 담긴, 두툼한 스크랩북처럼 영감으로 풍성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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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GRAM : @gemmanily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감사하게도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에 창작자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새로 제작한 음악 에세이 <프루스트 멜로디>를 처음으로 선보이는 자리였는데요. 신간을 비롯해 많은 분이 부스를 찾아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사흘 내내 행복으로 가득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독자분들과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때로는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며 서로의 경험을 나누기도 했죠. 혼자만의 것이었던 이야기가 누군가의 것이 되고, 책을 통해 연결되는 이 귀한 경험은 오직 오프라인에서만 가능한 일이겠지요.
무언가를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과 처음에 가졌던 그 설렘은 우리를 얼마나 더 멋진 곳으로 데려가게 될까요. 앞으로도 책을 매개로 진행되는 행사들이 다양한 목소리가 오가며 존중받는 소통의 장으로서, 우리의 세계를 더 넓혀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