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인 12월,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한 해를 정리합니다. 누군가는 그동안 미뤄두었던 일을 마무리 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계획을 세웁니다. 한 해를 돌아보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일기를 다시 열어보는 사람, 한 해의 추억을 이야기 하며 기억하는 사람, 조용히 회고 하는 사람 등… 필자는 이미 여러 번 본 영화를 다시 한 번 반복해 보는 편입니다.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반복해서 볼 수 있는 이유는 그 영화를 처음 봤을 때의 감정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영화는 내 고민을 대신 해주고, 어떤 영화는 잊고 지낸 감정을 일깨워줍니다.
올해도 오랜 친구처럼 곁을 지켜준 영화들이 있습니다. 반복해서 본 영화 3편과 비밀 일기처럼 숨겨 두었던 마음을 함께 공개합니다.
잃는 것이 더이상 두렵지 않을 때,
라라랜드
우리는 삶에서 수많은 분기점을 지나게 됩니다. 어떤 선택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미가 또렷해지고, 어떤 선택은 미련 같은 후회를 남길 때도 있습니다. 이런 고민 앞에서 또 다른 선택을 망설이고 있을 때, 그 이후의 이야기가 고민될 때. 영화 <라라랜드>를 추천합니다.

영화 <라라랜드>는 배우를 꿈꾸는 미아와 재즈를 사랑하는 아티스트 세바스찬의 이야기입니다.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열정에 반하게 되고, 꿈을 응원해주는 친구이자 연인으로 발전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두 사람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불안정한 현실 앞에서 고민하던 세바스찬은 원치 않던 밴드에 합류하게 되고, 미아는 계속되는 오디션 탈락과 외로움 속에서 흔들립니다. 세바스찬은 꿈과 멀어지고, 미아는 사랑과 멀어지게 됩니다. 두 사람은 여전히 꿈을 꾸고 있지만 서로 다른 곳을 향해 가고 있던 것입니다.
시간이 흐른 뒤 두 사람은 우연히 재회합니다. 미아는 배우가 되고, 세바스찬은 자신이 꿈궜던 재즈바를 여는데 성공합니다. 오래도록 바라온 꿈을 이룬 두 사람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꿈을 이루도록 응원해주었던 두 사람은 서로의 곁에 없습니다. 더는 같이 미래를 약속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따뜻한 미소를 짓습니다.

<라라랜드>에는 두 가지 이별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랑, 그리고 꿈과의 이별. 세바스찬이 생계를 위해 선택한 일이 꿈에서 멀어지게 만들던 순간, 사소한 오해로 틀어진 두 사람의 모습은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주위에서 너무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라라랜드는 이별을 비극으로, 상실로 그리지 않습니다. 삶의 과정으로 그려냅니다. 우리는 수많은 분기점을 지나며 누군가와 멀어지고, 누군가와는 가까워지며 다음 삶으로 나아갑니다. 미아와 세바스찬의 이야기처럼 이별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남기고 떠납니다. 그 시절을 함께 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그리울 때, <라라랜드>를 다시 꺼내보고 싶을지 모릅니다.
일단 부르면 노래가 될 거야,
싱 스트리트
‘회고 모임’이 많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친한 지인, 혹은 같은 일을 하는 이들끼리 모여 한 해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루지 못한 일들, 미뤄둔 마음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면 영화 <싱 스트리트>를 통해 용기를 얻어보시면 어떨까요?

영화 <싱 스트리트>는 노래로 시작합니다. 경제 불황을 겪고 있던 시기, 주인공 코너는 매일 같이 다투는 부모님의 목소리를 가사 삼아서 노래를 부릅니다. 폭력적인 학교, 꿈과 희망도 없는 어른들의 모습, 힘든 순간 늘 코너를 일으킨 것은 노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너는 같은 학교의 라피나에게 반하게 됩니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코너는 “밴드를 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라피나에게 한 거짓말을 진짜로 만들기 위해 밴드를 만들게 됩니다. 그렇게 코너의 노래는 집에서 거리로, 무대로 오르게 됩니다.
연말이 되면 가장 많이 하는 것 중 하나가 후회인 것 같습니다. 그 순간 조금 더 용기를 냈다면 어땠을까?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싱 스트리트>는 그런 질문 앞에서 우리를 위로합니다.
라피나에게 말을 걸고, 밴드를 만들고, 무대 위로 오르는 과정 모두가 코너의 아주 작은 용기로 시작됩니다. 서툰 음이라도 일단 부르면 노래가 되는 것을 우리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을지 모릅니다. 완벽하지 않고, 결과를 알 수 없어도 괜찮다고 <싱 스트리트>는 끊임없이 일러줍니다.
그럼에도 계속 흐르는,
흐르는 강물처럼
가끔 한강에 갑니다. 강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흐르지만 먼발치에서 보면 마치 그림처럼 멈춰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가 삶을 강으로 표현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지 모릅니다. 가족과의 관계에서 고민하고 있다면 흘러가는 대로 두어도 된다는 이야기를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을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흐르는 강물처럼>은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몬태나의 강가에서 자란 두 형제 노먼과 폴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같은 집에서 생활하고 같은 강에 낚싯대를 드리우지만 두 형제는 다른 방향으로 자랍니다. 학업을 위해 떠났던 고향에 6년 만에 돌아온 노먼은 어른이 된 동생 폴과 마주합니다.
노먼은 동생이 도박 등 위험한 일을 일삼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동생을 사랑하지만 이해하지 못하고, 도와주고 싶지만 다가가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둘은 여전히 강가에 가 낚시를 합니다. 강물은 두 형제 사이를 이어주는 것처럼 흐르고, 폴이 영영 떠난 뒤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이라는 관계는 묘합니다.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며 쌍둥이처럼 자라다,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의 내밀한 이야기를 모르는 관계가 되기도 합니다. 끝없이 멀어졌다고 느끼다가도 금방 가까워지기도 합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앞에서 자주 머뭇거리게 될 때, <흐르는 강물처럼>을 꺼내보시면 어떨까요? 강물이 흐르듯 붙잡지 않아도 다시 만나는 관계에 대해 위로받게 될 것입니다.
라라랜드를 다시 보면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열정에 끌려. 자신이 잊은 걸 상기시켜주니까”라는 대사를 다시 만났습니다. 이번엔 그 대사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우리가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이유는 어쩌면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이유와 닮아있을지 모릅니다. 주인공들이 소중한 것을 지켜내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 그 안에 숨겨둔 내 마음을 다시 발견하게 되어서 말입니다.
<프렌치 디스패치>, <카모메 식당>, <오펜하이머>, <인셉션>, <노트북>… 동료 에디터들이 각자의 마음을 담아 반복해 본 영화의 이름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영화를 보셨나요? 어떤 마음을 느꼈는지도 궁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