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소설이
노래가 된다면

문학을 음악으로 번역한
세 곡의 밴드 음악

문학, 미술, 영화, 음악 등 각기 다른 예술은 서로를 비추며 상호작용 해 왔습니다. 한 편의 소설은 음악이 되기도 하고, 한 폭의 회화에서 영화가 탄생하기도 하죠. 이렇게 만난 두 예술은 단순한 모방을 넘어 원작의 메시지를 확장하거나 비틀어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데요. 문학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세 곡의 음악을 소개합니다. 익숙한 소설을 낯선 시선으로 재해석한 노래를 통해 익숙한 이야기를 낯선 감각으로 마주해 보세요.


1984 주인공이 부르는 절규

이미지 출처 : The Times

이미지 출처 : The Vegan Stoic

1992년 데뷔 이후 정규 9집까지 발매한 세계적인 영국의 록 밴드 라디오헤드는 실험적인 사운드와 철학적인 가사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 왔습니다. 이들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등을 비판하며 사회에 꾸준히 메시지를 던져 왔는데요. 6집 [Hail to the Thief]는 정치적인 색채가 가장 돋보이는 앨범으로, 디스토피아 세계를 다루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대표작 『1984』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소설에서 ‘2+2=5’는 진실을 왜곡하는 당국의 정치적 구호로, 빅브라더가 통치하는 숨 막히는 전체주의 체제를 다룬 작품은 1949년 출간 이후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피할 수 없는 감시와 검열, 기술 발달로 인한 인간 소외와 파괴된 존엄성까지. 현대 사회를 예견한 듯한 작품은 여전히 독자에게 서늘한 경고장을 건네죠.

라디오헤드가 6집을 작업할 당시 세계는 부정선거와 테러 등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보컬 톰 요크(Thom Yorke)는 끔찍한 일을 방관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모습으로부터 『1984』의 주인공 윈스턴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렇게 탄생한 앨범의 첫 번째 트랙 ‘2+2=5’의 가사는 평범한 인간이 권력에 무릎 꿇고 현실에 순응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불길한 멜로디의 기타 리프로 시작되는 곡의 목소리는 점차 절규에 가까워지는데요. 노래의 부제 ‘Lukewarm’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미적지근한 이들을 뜻하는 단어라고 하죠. 마치 주인공 윈스턴이 부르는 듯한 노래는 소설 속 분위기를 재현하며 조지 오웰이 건넨 메시지를 또렷이 감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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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히즘을 청각화한다면

이미지 출처 : Classic Album Sundays

1964년 보컬 루 리드(Lou Reed)를 중심으로 뉴욕에서 결성된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전위적인 사운드로 록앤롤의 역사를 새롭게 쓴 밴드입니다. 마약이나 섹스 등을 다루는 퇴폐적인 가사와 우울한 목소리로 인해 당시 밴드는 공연장에서 자주 쫓겨나기도 했는데요. 단 하루 만에 녹음된 [The Velvet Underground & Nico]는 밴드의 놀랍도록 실험적인 면모가 응축된 데뷔 앨범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음악 잡지 롤링스톤이 꼽은 역사상 13번째로 위대한 앨범이자, 20세기 최고의 앨범 커버로 손꼽히는 작품이기도 하죠. 앨범 속 바나나는 밴드의 후원자였던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작품으로 발매 당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앨범의 네 번째 트랙 ‘Venus in Furs’는 사실 동명의 소설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작가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Leopold von Sacher-Masoch)는 1870년 『모피를 입은 비너스』라는 장편 소설을 발표하는데요. 고통에서 쾌락을 찾는 남성과 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마조히즘’이라는 단어 또한 이 작가로부터 탄생했죠.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인간의 욕망과 권력을 대담하게 탐구하는 소설 속 한 장면을 음악으로 재구성하여 눈앞에 펼쳐놓는데요. 덤덤하게 울리는 드럼과 같은 음으로 늘어지는 비올라 소리, 주술처럼 읊조리는 목소리는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금기시된 소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시대를 앞서간 이들의 음악은 60년이 흐른 지금도 낡지 않은 신선함을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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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의 암살자가 품고 있던 책

이미지 출처: The First Edition Rare Books

J.D 샐린저(J. D. Salinger)의 『호밀밭의 파수꾼』은 전 세계 누적 판매 7천만 부를 기록한 성장 소설인데요. 방황하는 사춘기의 혼란스러운 감정선과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했다고 평가받으며 10대들의 필독 도서로 자리 잡았죠. 놀랍게도 존 레논의 암살자 또한 이 책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25세였던 그는 존 레논(John Lennon)에게 총을 쏜 후 근처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있었고, 경찰에게는 이 책에 자신의 모든 진술이 담겨있다고 전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이후 등장한 여러 암살자에게도 이 책이 발견되었다고 하죠.

이미지 출처: TIDAL

빌리 조엘부터 그린데이에 이르기까지 많은 음악가가 그러했듯, 미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 건즈 앤 로지스 역시 이 소설에 영감을 받아 2008년 ‘Catcher In The Rye’를 발표했습니다. 힘차게 시작되는 곡의 가사는 주인공 홀든 콜필드의 시선을 따라가지만, 후반부에서는 전환점을 맞이하는데요. 즉 『호밀밭의 파수꾼』이 건네는 메시지가 때로는 잘못된 논리를 정당화하는 것을 넘어 범죄 동기로까지 사용될 수 있음을 암시하며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죠. 존 레논의 추모곡이기도 한 이 곡은 작품이 지닌 책임을 비롯해 사회와 개인에 미치는 영향을 되짚어보고, 소설을 다각도로 해석하도록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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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곡의 음악은 원작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라디오헤드는 작품이 현대사회에 던지는 섬뜩한 메시지를 앨범 전반에 녹여내며 무책임한 방관자가 되어가는 현대인들의 초상을 비췄습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파격적인 소재와 실험 정신으로 아방가르드 록의 지평을 넓히고, 건즈 앤 로지스는 전 세계가 사랑한 베스트셀러에 비판적 시선을 더하며 숨겨진 균열을 드러냈죠. 이처럼 하나의 예술은 또 다른 예술을 낳고,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며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예술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사유는 더 깊고 넓어지겠죠. 오늘날의 작품은 또 어떤 형태의 예술로 다시 태어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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