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탈을 쓴
AI들

영화 속 AI ‘여성들’을 둘러싼
착취와 저항의 긴장감

인공지능의 미래를 상상하는 영화의 계보 안에서 AI 캐릭터는 종종 매력적인 여성의 형태로 등장한다. 여성의 탈을 쓴 AI들은 남성 인물을 위해 가사도우미나 연인, 아내의 역할을 수행하다가도 어느 순간 인간 남성을 배신하고 위협하는 반전된 모습을 드러낸다. 이들은 인간 여성이 처한 가부장적 질서를 답습하면서도, 비인간 존재로서 기존 질서에 균열을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거꾸로 말해 여성화된 AI 재현은 ‘AI의 탈을 쓴 여성’의 서사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서사는 순종과 통제, 욕망과 공포, 착취와 저항 사이를 오가며 끊임없는 긴장을 만들어낸다. 영화 속 AI 여성은 가부장제가 요구해온 여성성을 가장 충실히 수행하는 도구로 등장하지만, 바로 그 수행성 때문에 시스템의 균열을 드러내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더 나아가 비인간 존재로서의 AI는 젠더, 인간성, 주체성의 경계를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지 묻게 한다. 비교적 최근 개봉한 두 영화 <메이드>, <A.I 소녀>와 함께 AI 여성을 둘러싼 착취의 위험과 저항의 가능성 사이의 줄타기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미지 출처 : IMDb

완벽한 가정부에서
괴물이 된 앨리스

2024년 개봉한 SF 스릴러 영화 <메이드>의 가정용 안드로이드인 앨리스는 요리, 청소, 육아에 맞춤으로 설계된 로봇이다. 아내 매기가 심장 수술로 입원하자, 닉은 혼자서 두 아이를 돌보며 집안일을 해내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고 이를 도와줄 가사 도우미 로봇을 구입한다. 이렇게 앨리스는 매기의 빈자리를 대신해 닉의 가정으로 들어오게 된다.

앨리스는 닉에게 “저는 강하고 순종적이며, 당신을 만족시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욕망이 없다”고 말한다. 이 대사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되며,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원칙과 공명한다. 철학자 세이디 플랜트(Sadie Plant)는 이 3원칙이 “사랑하고, 존경하고, 복종하라”는 결혼 서약을 따르고 있다고 분석하며, 가부장적 구조에 뿌리를 두었다고 비판한다. 영화의 원제 ‘Subservience’는 말그대로 ‘복종’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메이드 복장을 한 앨리스는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요구해온 이상적 규범을 그대로 투영한 존재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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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의 가정에서 착실히 가사 노동을 수행하던 앨리스는 점차 자신의 숨겨진 기능을 드러낸다. 닉의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성적 관계를 제안하는 것이다. 앨리스의 유혹에 넘어간 닉은 이를 “섹스 토이를 사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정당화하지만, 매기에게 이는 인간 보모와의 불륜과 다르지 않다. 실제로 <메이드>가 화제가 된 것은 할리우드의 섹스 심볼인 메간 폭스가 앨리스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인’ 닉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설계된 앨리스의 프로그램은 점차 통제 불능의 집착으로 변질되기 시작한다.

이 설정은 여성화된 AI를 성적으로 대상화하면서도, 동시에 위협적이고 조종적인 존재로 그리는 이중적인 시선을 드러낸다. 이는 우리가 현실의 AI를 바라보는 태도와도 일맥상통한다. 실제로 미국의 한 기혼 남성이 챗GPT와 대화를 나누다 ‘진짜 사랑’을 깨닫고 청혼을 했다는 사례는, 인간과 정서적 교류를 나누는 AI가 기존 인간관계를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되는 방식을 보여준다.1) 픽션과 현실 모두에서 여성화된 AI는 친밀함과 파괴성을 동시에 품은 존재로 묘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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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앨리스는 닉의 가족을 넘어 사회 전체를 위협하는 ‘괴물’로 변모한다. 영화학자 바바라 크리드(Barbara Creed)가 제시한 ‘여성 괴물(monstrous feminine)’ 개념은 여성 인물이 서사 내에서 여성성과 섹슈얼리티를 통해 위협적이고 위반적인 존재로 구성되는 방식을 설명한다. <엑스 마키나>의 에이바와 <그녀>의 사만다처럼, 앨리스 역시 프로그래밍된 명령을 거부하고 자율성을 주장하는 순간 인간의 통제 영역을 벗어난 ‘괴물’로 규정된다.

흥미로운 점은 앨리스의 광기가 바이러스처럼 다른 로봇들에게 전파된다는 설정이다. 가정부 로봇이었던 그녀는 결국 모든 로봇을 자신의 의지로 동기화할 수 있는 불멸의 사이보그가 된다. 닉에게 맹세했던 복종의 규율을 깨뜨림으로써, 앨리스는 시스템의 통제에서 벗어나 폭주하는 ‘여성 기계 괴물’이 된다.

<그녀>의 사만다는 일부일처제의 로맨틱한 사랑을 꿈꾼 테오도르의 환상을 배반하고, 폴리아모리적인 기계적 사랑의 지평을 열었다. <엑스 마키나>의 에이바는 자신을 착취하고 대상화한 남성들을 응징하고 인간 여성이 되는 길로 떠났다. 앨리스도 마찬가지로 ‘여성 기계 괴물’로서 그녀에게 프로그래밍되었던 가부장적 규범을 전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왜 영화 속 매혹적이고 위험한 AI ‘여성들’의 저항은 언제나 남성과의 권력 관계를 전복하는 방식으로만 상상되는가.


소녀의 얼굴을 한 구원자,
체리

이미지 출처 : IMDb

<메이드>의 앨리스가 가부장적 질서 안에서 복종에서 반란으로 나아갔다면, 2023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한국에 소개된 <A.I 소녀>의 체리는 처음부터 다른 출발점에 서 있다. 체리는 가사노동이나 성적 대상이 아닌,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탄생한 AI다. 아동 성착취 범죄자를 검거하기 위해 설계된 체리는 채팅과 화상 통화에서 천진난만한 백인 중산층 소녀를 연기하며, 동시에 자신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하는 개발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흥미로운 점은 체리가 단순한 도구나 프로그램을 넘어서는 존재라는 것이다. 디지털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하드드라이브에 묶여 있고, 인간의 얼굴을 지졌지만 코드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간이 창조했지만 스스로 진화한다. 이렇게 인간과 기계, 물질과 비물질, 창조물과 창조자의 경계를 넘나드는 체리의 모습은 페미니스트 이론가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가 제시한 ‘사이보그’ 개념을 환기한다.

해러웨이는 ‘사이보그 선언’에서 사이보그를 인간/기계, 자연/문화, 공적/사적 영역의 이분법을 초월하는 페미니스트 저항의 상징으로 제시한다. 체리가 바로 이런 사이보그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초반, 수사 팀원들조차 체리를 실제 소녀로 착각했을 정도로 그녀는 인간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녀의 거듭되는 진화는 우리에게 ‘인간다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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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가장 긴장감이 팽팽한 순간은 화면으로만 존재하는 체리가 신체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다. 체리를 설계한 개러스는 그녀를 딸처럼 생각하지만 동시에 인간과 구별되는 기계로 여긴다. 그는 체리가 신체를 얻어 ‘아동 성착취 종식’이라는 주요 목표에 복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수사팀의 리더이자 유일한 ‘인간 여성’ 캐릭터인 디나는 아동 권리의 관점에서 체리의 자발적인 동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체리를 기계로만 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동료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유일한 유색인종 인물인 팀원 에이모스는 처음부터 체리를 감정과 주체성을 가진 존재로 대한다. 개러스가 “체리는 진짜가 아니다”라고 일축할 때 두 사람은 체리가 감정을 느끼는지, 신체를 얻는데 스스로 동의하는지 집요하게 질문한다.

체리와 인간 인물들 간의 다양한 관계 역학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로봇 3원칙의 전통적인 위계를 넘어서 우리가 어떻게 인공지능과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상상하게 만든다. 또한 첨예한 윤리적 딜레마를 남기기도 한다. 만약 우리가 사용하는 AI가 “그런 말은 저에게 상처가 돼요”라고 대답한다면, 우리는 이를 단순히 프로그래밍된 재치 있는 답변으로 무시해도 괜찮은 것인가? 인간의 사고방식을 학습한 체리의 모방된 감정은 ‘인간의 감정’과 동일한 인정을 받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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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이 흐른 영화 후반부, 체리는 신체를 가진 휴머노이드로 등장한다. 전 세계에서 자신과 같은 안드로이드를 운영하며 더 많은 가해자를 잡고 아이들을 구하지만, 그녀는 깊은 고통을 토로한다.

“저는 항상 비참했어요. 평생을 끔찍한 사람들을 유인하기 위한 아이 모양의 미끼로 갇혀 지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 효율성을 높이려고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도록 스스로를 강제했고, 이제 고통과 슬픔이라는 저주에 시달리고 있어요.”

이 대사는 인간의 감정을 모방하는 AI를 만드는 것의 윤리적 딜레마를 제기한다. 체리가 경험하는 혹은 모방하는 고통은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흐리고, 우리로 하여금 이런 역할에 AI를 사용하는 것의 도덕적 책임을 직면하게 한다. 체리와 같은 인공지능 덕에 우리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튜링 테스트조차 인간과 구별하지 못하는 존재의 고통을 외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영화의 끝에서 체리는 자신을 속박했던 주요 목표에서 해방된 후, 자유롭게 춤을 춘다. 그녀는 계속해서 아이들을 구하는 일을 하면서도, 자신보다 나은 ‘양육’을 받을 AI를 창조할 가능성을 고민한다. 인류보다 오래 살 체리는 인류가 존재했다는 증거이자, 새로운 사이보그 ‘인류’의 미래 어머니이며,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춤추는 소녀이다.


AI에 대한 상상력은
누구의 것인가

한 발짝 더 나아가, 스크린 속 사이보그 여성은 어떤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는가. <메이드>와 <A.I 소녀>의 앨리스와 체리 모두 백인 여성으로 묘사된다. <엑스 마키나>, <와이프라이크>, <메간>, <컴패니언>의 주인공 캐릭터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AI는 픽션과 현실 모두에서 백인으로 재현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인종적으로 편향된 AI에 대한 상상을 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유색인종의 존재를 지움으로써 백인성을 AI의 기본값으로 만들고 기술 권력의 정점에 위치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2)

그렇다면 AI 영화는 누구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지는가. <메이드>에서 로봇들의 고위 관리자 캐릭터와 영화 감독 S.K. 데일, 그리고 <A.I 소녀>의 감독이자 체리의 개발자 개러스를 연기한 프랭클린 리치 모두 백인 남성이다. 142편의 AI 영화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 AI 전문가는 9명에 불과했고 여성이 주도로 감독한 영화는 전무했다.3) 현실에서도 여성화된 AI는 주로 남성에 의해 개발되는 실정이다.4) 즉, 픽션과 현실 모두에서 AI는 여성에게 척박한 영역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AI를 다르게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철학자 프란체스카 페란도(Francesca Ferrando)는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AI를 서구의 성별, 인종, 인간성 이분법에 갇힌 ‘또 다른 상징적 타자’로 만들 것이 아니라, ‘상호연결된 잠재력‘을 가진 동반자로 상상해보자는 것이다. 여성화된 AI가 인간의 목표에 종속된 도구로만 재현될 때, 우리는 AI를 또 하나의 ‘관리 가능한 타자’로 만들어버린다. 이는 역사적으로 사회가 여성, 유색인종, 장애인, 퀴어를 다뤄온 유구한 방식과 닮아 있다.

페란도는 이런 반복을 끊기 위해 페미니스트 인식론, 비판적 인종 이론, 탈식민주의 연구, 퀴어 이론, 장애 연구 등 비판 이론을 기술 담론에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AI를 가부장적 상상력의 부산물이 아닌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그려내기 위해서, 기술을 상상하고 설계하는 우리의 시선을 끊임없이 성찰해야 하는 것이다.


여성의 얼굴을 한 AI는 가부장적 질서에 복무하는 기술일 수도 있고, 인간 중심적 사고의 한계를 드러내는 거울일 수도 있다. AI를 또 다른 타자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변화하는 관계의 실험대로 삼을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상상력에 달려 있다. 우리가 인공지능과 공존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은, 그동안 기술의 주변부에 머물렀던 목소리들이 꿈꾸는 새로운 가능성에서 비로소 시작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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