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세상에서 아이들 공간은 언제나 따로 만들어졌습니다. 식당 한쪽 놀이방, 카페 안쪽 키즈존처럼 말입니다.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실상은 어른의 공간에서 아이들을 두는 것에 가까웠습니다.
정말로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라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이러한 질문에 DDP 어린이디자인놀이터 디키디키는 하나의 공간을 보여줍니다. 4층에 자리한 이곳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열리는 장소입니다. 이 디키디키가 특별한 이유는 분리와 배제의 차이를 공간으로 구현했다는 점입니다.
분리는 안전을 위한 물리적 구분이지만 배제는 시야와 경험에서 완전히 차단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놀이방은 아이들을 배제합니다. 벽으로 막고 소리를 차단하며 어른의 세계와 단절시킵니다. 반면 디키디키는 분리합니다. 안전한 공간은 확보하되 유리창 너머로 세상을 보고 행사를 구경하며 지나가는 사람과 눈을 맞춥니다.
이 미묘한 차이가 아이들의 경험을 완전히 바꿔놓습니다. 특히 아이를 위한 안전한 놀이 공간을 만들었지만, 세상과 차단하지 않고 흐릿한 경계를 통해 아이들이 세상과 자연스럽게 마주하도록 공간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분리하되 고립시키지 않는 설계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구현한 연속적 공간
DDP를 설계한 건축가 자하 하디드는 공간의 경계가 사라진 비정형의 건축을 구현했습니다. 본인도 모르게 외부에서 실내로 들어온 뒤로는 유동적인 선의 구조로 둘러싸이며 어느새 다음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방문객은 여러 공간을 끊김 없이 연속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DDP 어린이디자인놀이터가 있는 4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곳 역시 턱없는 출입구로 아이가 자유롭게 공간 내 여러 시설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잔디언덕, 잔디사랑방은 놀이터와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만 공간은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4층을 방문한 아이는 해당 공간의 행사, 전시를 놀이터에서 자연스럽게 구경하게 됩니다. 이렇게 놀이터에 있지만 세상과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끝없는 만남이 만드는 교육
전시와 행사가 선사하는 우연한 배움

아이들은 놀이공간을 방문하려는 목적으로 DDP를 들어서지만, 그곳에 도착하는 과정도 하나의 놀이가 됩니다. 특히 DDP의 지하 2층부터 4층까지 이어진 디자인둘레길은 아이들에게 새로움을 배우는 공간이 됩니다.
나선형으로 이어진 완만한 경사를 걸으면서 벽면의 작품을 발견하게 되고 다음 코너를 돌면 다른 형태의 설치 작품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아이들은 목적지로 가는 길에 이미 작품을 보며 여러 요소를 관찰하고 반응하기도 합니다.

또한 4층에는 정기적으로 농부시장 마르쉐@DDP가 열립니다. 이때 직접 생산한 농축산물과 가공품을 판매하는 농부는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우연히 시장의 한 부스 앞을 지나가던 아이가 멈춰서 흙 묻은 당근을 보며 ‘이거 왜 이렇게 생겼어요?’라고 묻는 장면을 종종 목격하게 됩니다. 그간 정형화된 농산품을 보던 아이들은 무농약으로 키운 삐뚤빼뚤한 채소와 과일을 보며 새로운 호기심을 가지게 됩니다.
주인공이 되는 경험
세상과 연결되는 경험이 주는 새로움

또한 아이들은 여러 요소를 수용하는 걸 넘어 직접 상호작용을 하는 주체가 되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는 자신의 물건을 판매하는 플리마켓인 키마키마에 참여하는 것인데요.
DDP의 방문객들이 플리마켓 공간을 지나다니며 물건을 구경하고, 반대로 아이들은 그 방문객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자신의 물건이 돋보이도록 괜히 돗자리 위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구매자를 기다리기도 합니다.

소외된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그들을 분리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세상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을 설계하는 것일까요?
DDP 어린이디자인놀이터가 보여준 답은 명확합니다. 아이들은 안전한 놀이터 안에 있지만 동시에 지나가는 사람을 관찰하고 못난이 채소를 발견하며 직접 물건을 팔아봅니다. 이 모든 경험은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기에 가능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벽을 세웁니다. 하지만 그 벽이 너무 높으면 아이들은 세상을 배울 기회를 잃습니다. 호기심도 실패도 낯선 사람과의 교류도 어려워집니다.
DDP 어린이디자인놀이터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벽은 세우되 그 벽을 투명하게 만들었습니다. 공간은 나누되 경험은 차단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아이들에게 필요한 ‘흐릿한 경계’일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키즈존이 아니라 이런 경계를 다르게 그리는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흙 묻은 못난이 채소 앞에서 “이건 왜 그래?”라고 물을 수 있는 그런 열린 공간 말입니다.
공간 정보
-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281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뮤지엄 4층
- 문의 : 02-2153-0760
- 운영 : 오전 10시 30분 ~ 오후 6시 30분 (매주 월요일, 설/추석 당일, 보수 기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