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방송에서 오은영 박사가 부모의 역할은 자녀의 독립이라고 말한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이 오래도록 남았던 이유는,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독립과 자립이 너무나도 당연하고 중요한 가치가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비슷하게, 스스로를 믿어야 다른 이를 사랑하고 주변 환경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는 말 역시 자주 접할 수 있는데요. 이러한 말들이 유독 필자에게 강한 거부감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누군가에게 기댄다는 것이 자기애의 결여로 해석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주체적인 삶이 반드시 기대지 않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에도, 의존적인 사람은 쉽게 불완전한 존재로 그려집니다.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인데 말이죠. 서로 기대는 삶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자연스럽고도 이상적인 삶일지도 모릅니다.
부대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적인 인간에게 필수적인 조건인 ‘의존’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눈치는 생존전략

한때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던 ‘MZ’ 라는 말은 종종 할 말은 다 하고 남의 시선이나 눈치를 보지 않는 태도를 가리키곤 했습니다. 그의 영향으로, 기피되곤 했던 꼰대 이미지는 어느 순간부터 반갑게 맞이되기도 했죠. 이렇듯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나를 감춰야 편해지는 일들이 생깁니다.
사회는 줄곧 주체적이고 자기 생각이 분명한 사람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삼습니다. 그 과정에서 의존적인 사람은 주체성을 잃은 존재로, 줄곧 이분법적인 잣대로 평가되어왔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보다는 타인을 더 의식하고 배려하고자 하는 태도는 현대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생존 전략이기도 합니다.
‘피플플리저(People Pleaser)’란 타인의 만족과 인정을 위해 본인의 욕구를 희생하는 이들을 말합니다. 소외되지 않기 위해 눈치를 배우고, 관계가 깨지지 않도록 자신의 감정을 뒤로 미루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갈등을 피하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조정하는 방식을 선택합니다.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눈치는 하나의 덕목이 되었습니다. 피플플리저는 알게 모르게 많은 이들이 지니고 있는 성향에 가까운데요. 그렇기에 내가 타인을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해도 스스로를 특이하게 여기며 너무 나무라지 않았으면 합니다. 타인을 의식하는 사람이 의존도 주고 받을 줄 아는 법!
의존이 채워지지 않으면

JTBC 〈이혼숙려캠프〉에 등장하는 많은 부부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린 시절 돌봄의 결핍에서 비롯된 상처가 반복적으로 드러납니다. 유년기 시절에 겪은 어른의 부재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관계 내에서 여러 문제를 동반합니다. 누군가에게 과도하게 매달리거나, 반대로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한 채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모습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죠.
요즘 이처럼 관계와 심리를 다루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많은 관심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화면 속 타인의 이야기를 보며 함께 분노하고 공감하고, 때로는 위로를 받습니다. 타인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말로 설명하지 못했던 결핍을 발견하기도 하죠.
영상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은 본래 의존적인 존재라는 사실, 그리고 그 의존이 충족되지 않을 때 결핍으로 남는다는 점입니다.
기대고 돌볼 수 있는 관계가 충분히 주어져야 합니다. 의존을 결핍으로 남기지 않기 위해서는 기꺼이 기댈 수 있는 마음근육을 만들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의존이 어려운 이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기대는 일이 유독 어려운 사람들도 존재합니다. 하물며 본인 속마음을 밖으로 꺼내는 일 자체도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죠.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약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한때 유행하던 말 중에, ‘슬픔을 나누면 둘이 된다’는 표현이 있었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자연스레 필자의 10년지기 친구가 떠오릅니다. 힘든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아도 달라질 것은 없다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혼자서도 뭐든 척척 해내는 그를 보고, 누군가는 굉장히 독립적이고 이성적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 속내는 알 길이 없지만 말입니다.

린 시걸의『서로가 아니라면 우리가 누구에게』는 이러한 태도에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 돌봄 없이는 살아갈 수 없고, 나이가 들면 다시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하죠. 시걸 또한 인간을 본질적인 상호의존적 존재로 바라봅니다. 그렇기에 묻습니다.
“서로가 아니라면, 우리가 누구에게 기댈 수 있겠는가?”
가끔은 언제나 기대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회를 상상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혼자 견뎌야 하는 삶이 아닌, 마음 편히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삶 말입니다.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비로소 돌봄으로 가득한 서로에게 기대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 기대도 괜찮다!
한 방향으로만 흐를 때 의존은 통제가 되지만, 서로 오갈 때 그것은 돌봄이 됩니다. 우리는 서로가 돌봄이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기대는 사람’과 ‘버티는 사람’을 나누고는 전자를 더 약한 존재로 바라봅니다. 하지만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려는 태도 역시 또 다른 형태의 취약함일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한 채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일은 또 다른 결핍이라는 의존을 불러일으키니까요.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관계는 숨을 쉽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받고 채워나가는 것이 당연하죠. 그러니, 너무 깊이 빠져 스스로를 잃지는 말되 의존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이번 아티클이 의존적인 성향을 인간다움의 한 방식으로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의존이 돌봄이 되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관계의 형태를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니, 충분히 서로에게 기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