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책임지는 삶을 성숙함의 미덕으로 여깁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일은 나약함으로,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내 일상을 잠식하는 희생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그래서 돌봄은 피하고 싶은 일이 되거나, 감당해야 할 불운처럼 이야기됩니다. 하지만 정말 돌봄은 약자를 구제하는 번거로운 일에 불과할까요. 누군가를 돌보고, 또 누군가에게 기대는 삶은 정말로 불행한 삶일까요.
이번 글에서 소개할 세 편의 이야기는 돌봄이 때로는 삶을 버티게 하고, 관계를 새로 만들며, ‘나’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의존과 돌봄을 부담과 희생의 구도로 단순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넘어, 돌봄이 지닌 다양한 의미와 가능성을 함께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돌봄은 그저 삶을 짓누르는 짐일까
— 에세이 『아빠의 아빠가 됐다』

돌봄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장면이 먼저 떠오르나요? 미디어 속 요양시설의 노인처럼 막연한 이미지가 스칠 뿐, 구체적인 순간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청년에게 돌봄은 더욱 낯설게 느껴집니다. 아직 누군가를 직접 돌본 경험이 없거나, 돌봄을 받았던 기억이 흐릿할 수 있죠. 그러나 돌봄은 예고 없이 삶에 불쑥 나타나기도 합니다. 에세이 『아빠의 아빠가 됐다』의 저자 조기현은 스무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알코올성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홀로 돌봐야 했던 과정을 기록합니다.
“고졸 흙수저”에 불과한 그는 간병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공돌이”, “노가다”라 불리는 노동을 전전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이 한창 많을 나이였지만, 돌봄은 그의 시간을 집어삼켰고 금전 부담은 나날이 커져만 갔죠. 갑작스러운 병원비를 위해 보증금까지 빼야 했던 순간, 그는 영화감독이라는 꿈이 한 걸음 더 멀어졌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비롯되는 억울함은 아버지의 죽음을 상상하면서 드는 죄책감, 더 잘 돌보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뒤섞이며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했죠.
하지만 저자에게 돌봄은 장애물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돌봄을 통해 오히려 인간의 지위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당장의 생활비를 위해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며, “노동자도 군인도 아닌 열외의 무엇”이라는 낙인 속에서 생활했습니다. 이때 그는 아버지를 간병하며 생존의 이유를 찾고 무기력을 견뎠습니다. 나아가 돌봄의 경험은 그가 활동가로서 일하고 아버지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는 계기가 됩니다. 돌봄은 그의 인간됨을 지탱하는 버팀목이자 다채로운 정체성의 기반이 된 셈입니다.
그는 처음에 책 제목으로 ‘나는 효자가 아닌 시민이다’라는 문장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주변에선 그를 ‘효자’라고 불렀지만, 그는 단순히 효도한 게 아니라 시민의 책임을 다한 것이라 선언합니다. 돌봄이 개인의 몫으로 남겨질 때 그것은 삶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될 수 있지만, 사회의 책임이 될 때 공존을 위한 토대를 만드는 일이 되죠. 에세이에 담긴 치열한 기록은 돌봄을 개인의 미덕이 아닌 시민 모두의 책임으로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돌봄이 다시 쓰는 가족의 경계
— 소설 『딸에 대하여』

가족의 경계를 뛰어넘은 돌봄은 관계를 어떻게 바꿀까요? 소설 『딸에 대하여』는 섞일 수 없을 것 같던 이들이 돌봄을 통해 서로에게 다가서는 과정을 그립니다. 소설은 경제적 이유로 딸 그린이 파트너 레인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며 시작합니다. 여유 없는 형편에도 가족인 딸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레인은 ‘나’에게 돌봐야 할 이유가 없는 불청객입니다. 게다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딸의 성 지향성을 직시하게 만드는 존재기도 하죠. 레인을 향한 외면과 배척, 딸과의 다툼이 이어지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돕니다.
한편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나’는 가족 없이 홀로 말년을 보내는 노인 젠을 돌봅니다. 젠은 젊은 시절 타인을 도우며 사회적으로 존경 받아왔지만, 요양원의 열악한 처우 속에서 비참하게 지내죠. ‘나’는 그 모습에서 자신의 가까운 미래를, 딸의 미래를 떠올립니다. 그렇기에 ‘나’는 딸이 부당해고 당한 퀴어 동료를 위해 앞장서 항의하지 않기를, 하루빨리 적당한 남자와 결혼해 평범한 가정을 꾸리길 바랍니다. 상관없는 타인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정상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머물길 바라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젠이 겪는 부당함에 목소리를 높입니다. 거기서 딸의 마음을 발견한 걸까요. ‘나’는 딸의 시위 현장을 찾아가 딸을 향한 폭력적인 언행을 목격하며 자신은 어느 편에 서 있는지 묻게 됩니다. 이후 젠을 집으로 데려와 레인과 함께 돌보는 동안, 레인을 향한 불편함을 잠시 내려놓죠. 이 경험들은 작은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늘 곁에서 딸을 돌봐온 레인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딸의 정체성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그들을 이해해 보고 싶다는 마음도 존재함을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가치관과 세대가 다른 네 여성이 한 집에서 밥을 나누고 잠자리를 살피는 풍경은 잠시나마 대안 가족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날 선 말로 서로를 할퀴던 모녀의 예전 모습보다 더 가족다운 모습으로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딸에 대하여』 속 돌봄은 혈연의 책임이나 경제적 보상을 위한 노동을 넘어, 타인을 내 삶에 들이는 행위입니다. 그러한 돌봄은 서로 다른 존재를 이해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며, 서로 기댈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가족을 만들어내죠.
타인의 손길에 기대 ‘나’를 발명하는 일
— 영화 ‘3670’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채 외로움을 느껴본 적 있나요? 영화 <3670>은 북한이탈주민이자 게이인 철준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커뮤니티에 소속되며 외로움을 해소하는 과정을 그립니다. 먼저 철준은 게이이기 때문에 탈북민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낍니다. 형제처럼 지내는 탈북민 친구들은 그의 성적 지향을 몰라 계속 탈북민 여성과 이어주려고만 하죠. 반대로 철준은 탈북민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게이들 사이에서도 겉돕니다. 남한 문화에 익숙지 않아 친밀한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느끼죠.
철준에겐 다른 게이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커뮤니티가 절실하지만, 퀴어 커뮤니티는 외부인에게 폐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진입장벽을 넘기 위해선 내부인의 도움이 필요하죠. 영준은 철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줍니다. 용기 내 나간 술 모임에서 만난 영준은 철준을 또래 집단인 97모임에 데려갑니다. 또 철준이 모임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습니다.

퀴어 사회학자 디디에 에르봉의 표현을 빌리면, 철준은 새로운 사회적 관계망 안에서 자신을 게이로 발명하고 게이로서의 삶을 배워나갑니다. 영준을 통해 헤어 스타일링부터 메이크업 방법, 커뮤니티의 언어를 익히고, 97모임과 술집과 클럽을 오가며 삶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일부를 숨기지 않아도 되는 공간에서 소속감과 친밀함을 쌓으며, 자기 자신으로서 남한 사회에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영준의 도움으로 커뮤니티에 발을 디딘 철준은 이후 다른 이에게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철준은 과거의 자신처럼 홀로 고립된 탈북민 게이를 만나 그를 종로의 술집으로 데려갑니다. 헤어지기 전 그는 철준에게 해방감을 고백합니다. 한때 철준이 영준에게 했던 말과 비슷하게 말이죠. 이렇게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돌봄의 선순환은 고립된 개인을 커뮤니티로 끌어내는 든든한 기반이 됩니다.
생각해 보면 누구나 살아가며 종종 새로운 환경에 놓이고 낯선 역할에 적응하게 됩니다. <3670>은 길을 먼저 걸어 본 누군가의 손길에 기대 우리가 어떻게 ‘나’로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다정한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세 작품은 말합니다. 돌봄은 약자를 일방적으로 떠안는 짐이 아니라, 누구나 관계 속에서 주고받으며 삶을 지속하게 하는 조건이라는 점을요. 돌봄을 개인의 도덕성이나 헌신의 문제로만 남겨둘 때, 우리는 그 무게를 고립 속에서 감내하게 됩니다. 반대로 돌봄을 관계와 사회의 문제로 다시 바라볼 때, 그것은 삶을 무너뜨리는 장애물이 아니라 서로를 지탱하는 기반이 되죠.
홀로 선 줄 알았던 나의 일상이 누구의 돌봄 위에 세워져 있는지, 그리고 나의 온기가 가닿을 또 다른 누군가의 자리는 어디일지 한 번쯤 되짚어보는 건 어떨까요. 서로를 향한 그 다정한 돌봄이 우리를 고립에서 건져내 함께 나아가게 할 힘이 될 테니까요.
- 디디에 에르봉, 이상길 역, 『랭스로 되돌아가다』, 문학과지성사, 2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