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는 이동권 보장을 외치는 장애인 단체의 시위를 마주하며 거친 갈등을 겪었습니다. 장애인의 정당한 권리와 시민들의 평온한 일상이라는 두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지요. 하지만 이 갈등의 근본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개인들이 아닌 우리가 발을 딛고 선 도시의 구조로 향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도시가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거대한 장벽이 되는 구조를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배리어 프리(Barrier-free)’는 장애인과 노약자, 임산부 등 사회적 약자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무는 운동입니다. 도시는 비장애인과 장애인, 노약자와 어린이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누군가는 돕고 누군가는 도움을 받는 이분법적인 구조가 아니라, 모두가 도시에 자연스럽게 의존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모두를 위한 사회가 됩니다. 소외된 이들을 일방적인 배려의 대상으로 가두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조건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유럽 연합(EU)은 이러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매년 ‘접근성 도시(Access City)’를 선정합니다. 모든 시민이 차별 없이 인프라를 누릴 수 있도록 설계된 도시를 발굴하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본 글에서는 필자가 오랜 기간 거주하며 직접 경험했던 독일의 세 도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독일은 대도시뿐만 아니라 소도시까지 접근성의 상향 평준화를 이뤄낸 나라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독일의 사례를 통해 한국 또한 모두를 품을 수 있는 배리어 프리 도시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과거를 보존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도시,
튀빙겐(Tübingen)
독일 남서부에 위치한 튀빙겐은 인구 약 9만 명의 아담한 대학 도시입니다.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의 폭격을 거의 받지 않아, 16세기에 지어진 목조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합니다. 사실 유럽의 전통 도시는 배리어 프리(Barrier-Free)를 실천하기에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좁고 가파른 언덕길, 휠체어 바퀴가 걸리는 울퉁불퉁한 돌바닥, 엘리베이터 설치가 어려운 오래된 건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튀빙겐은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전통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접근성을 실현했습니다. 그 노력을 인정받아 2024년 유럽 연합의Access City Award에서 특별상(Special Mention)을 받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변화는 2023년 리모델링을 마친 중앙 버스 터미널(ZOB)과 중앙역 앞 광장입니다. 1960년대에 지어져 낡고 불편했던 버스 터미널은 완전한 무장애 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버스 정류장의 보도 높이를 저상 버스 입구와 딱 맞게 높여서, 휠체어나 유모차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혼자서 안전하게 탈 수 있게 설계했습니다. 터미널 바닥 전체에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유도 블록을 깔고, 버스 도착 정보를 음성으로 안내하는 시스템도 도입했습니다.
중앙역 앞의 ‘유로파 광장(Europaplatz)’은 단순히 지나가는 통로가 아니라, 모든 교통수단이 만나는 허브이자 쉼터가 되었습니다. 광장의 모든 계단을 완만한 경사로로 바꿔서, 기차에서 내려 버스나 자전거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단 한 개의 계단도 마주치지 않도록 동선을 짰습니다. 특히 광장 중앙에 있는 물 테이블은 휠체어 이용자가 앉은 높이에서도 편하게 물을 만지며 쉴 수 있도록 세심하게 제작되었습니다.

튀빙겐은 눈에 보이는 길뿐만 아니라 정보의 장벽도 낮추었습니다. 지적 장애인이나 외국인 등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어려운 용어를 뺀 ‘쉬운 언어 가이드북’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복잡한 중세 도시 구조를 손으로 느낄 수 있도록 ‘청동 촉각 모델(입체 지도)’을 설치했습니다. 시각 장애인들은 손가락 끝으로 건물의 높낮이와 지붕 모양, 골목 너비를 만져보며 도시의 지형을 입체적으로 파악합니다. 주요 건물과 거리 이름은 점자로 표기되어 있어, 도움 없이도 스스로 위치와 목적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모두가 누리는 문화와 관광의 도시,
함부르크 (Hamburg)
독일 북부의 거대 항구 도시 함부르크는 이미 2012년 유럽 연합 Access City Award에서 1위를 차지한 도시입니다. 물과 운하가 많아 이동이 어려울 법한 지형적 한계를 극복하고, 특히 문화와 관광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배리어 프리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함부르크의 랜드마크인 콘서트홀 엘프필하모니(Elbphilharmonie)는 설계 단계부터 ‘완전한 접근성’을 목표로 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세계 최초로 설치된 80m 길이의 곡선형 에스컬레이터입니다. 대개의 건물은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를 구석에 따로 설치하지만, 엘프필하모니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같은 공간적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휠체어 이용자와 동반자가 나란히 탑승할 수 있을 만큼 폭이 넓은 이 에스컬레이터는, 이동 약자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당당히 랜드마크의 진입 과정을 즐길 수 있게 해줍니다. 또한 건물 중간층에 위치한 공용 광장은 바닥 전체가 평평하게 설계되어 있어, 휠체어를 타고도 항구의 360도 전경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항구 재개발 지역인 하펜시티(Hafen City)와 세계문화유산인 슈파이허슈타트(Speicherstadt) 역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입니다. 함부르크는 이곳에 거대한 경사로와 엘리베이터 시스템을 촘촘히 구축했습니다. 덕분에 휠체어 이용자도 물가 바로 옆까지 안전하게 내려가 산책을 즐깁니다. 이러한 배려는 박물관에서도 이어지는데요. 세계 최대 규모의 철도 모형 박물관인 미니어처 원더랜드는 휠체어 이용자의 눈높이에 맞춰 전시대의 높이를 조정하거나 특수 발판을 제공합니다. 이처럼 함부르크는 기본적인 교통 인프라를 넘어, 문화와 예술까지도 누구나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진정한 무장애 도시를 구현해냈습니다.

유니버설 디자인을 실천한 도시,
뉘른베르크
뉘른베르크는 가장 최근인 2025년 유럽 연합 Access City Award에서 2위를 차지하며,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배리어 프리 도시 중 하나로 떠올랐습니다. 이곳은 단순히 시설을 개선하는 수준을 넘어, 적극적인 포용 정책과 환경 디자인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심리적·물리적 경계를 없애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뉘른베르크가 거둔 가장 큰 성과는 생활 밀착형 배리어 프리 공간을 구축했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공공 체육 시설을 들 수 있습니다. 이곳은 환경을 디자인할 때, 휠체어를 탄 채 이용할 수 있는 운동 기구를 일반 기구와 나란히 배치합니다. 장애인 전용 공간을 따로 만들어 격리하는 대신, 같은 공간에서 누구나 함께 활동하도록 설계하여 사회적 소외감을 차단한 것입니다.

또한 모든 아이가 차별 없이 어울릴 수 있는 무장애 놀이터를 도시 곳곳에 300개 이상 조성했습니다. 시각, 청각, 촉각 중 최소 두 가지 이상의 감각을 활용해 아이들이 스스로 길을 찾고 기구를 인지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설계한 것이 특징입니다. 또한 휠체어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모래 대신 탄성 있는 바닥재를 사용했습니다. 특히 뉘른베르크는 “포용적인 디자인은 비용이 많이 든다”는 편견을 깨뜨렸습니다. 치밀한 설계만으로도 추가 예산 없이 충분히 모두를 위한 공간을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한 것입니다. 이제 뉘른베르크의 놀이터는 단순히 기구를 모아놓은 장소가 아니라, 아이들의 신체적 제약을 보완하고 자발적인 움직임을 이끌어내는 하나의 유기적인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사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불편함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래된 돌길 때문에 캐리어를 끌기 힘들고, 어디를 가나 공사 중이며, 지하철 시설은 낙후된 곳이 수두룩합니다. 이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보존하려는 유럽인들이 앞으로도 계속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도시들은 그 숙제를 ‘모두를 위한 공간’이라는 슬로건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배리어 프리가 ‘특정한 누군가’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한때 아이였고, 언젠가는 노인이 됩니다. 누군가의 부모로서 유모차를 밀거나, 노부모를 모시고 길을 나설 수도 있습니다. 혹은 예상치 못한 사고로 잠시 손이나 다리가 불편해질 수도 있습니다. 즉, 우리 모두는 언제든 사회적 약자가 되거나 그들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엄격히 구분 짓는다면, 우리는 결코 모두가 함께 사는 도시를 만들 수 없습니다.
배리어 프리는 특정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 나중에 덧붙여야 할 추가 옵션도, 일시적인 이벤트성 제도도 아닙니다. 도시가 물리적 인프라를 넘어 문화와 예술, 정보 환경까지 모든 사람을 전제로 설계될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을 의존적인 대상이나 도와야 할 존재로만 바라보지 않게 됩니다.
또한, 배리어 프리는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도시가 갖춰야 할 기본 조건입니다. 도시의 구조가 바뀌면 타인을 향한 시선이 바뀌고,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됩니다. 결국 배리어 프리는 우리 중 누군가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가장 단단하고 다정한 구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