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보다 먼저
정답을 매기는 사람들

빅테크 기업들이 철저하게 은폐하는
'숨은 노동'에 대해여

어느새 탄생한 AI는 우리의 노동을 점점 덜어주는 존재처럼 보입니다. 단순 작업과 판단은 기계에 맡긴 채, 미래의 인간은 더 고상하고 창의적인 일에만 집중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생겨나는 노동이 있습니다. AI가 이미지를 이해하고 문장을 분류하도록 돕는 ‘데이터 라벨링(Data Labeling)’입니다. 에이전트가 우리에게 답을 알려주기 이전에, 누군가는 그 기계를 학습시키기 위해 더 낮은 층위의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은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세 편의 작품들을 통해, 전 세계 데이터 라벨러들의 세계를 살펴봅니다.


자율주행 차량의
‘눈’이 되어주는 사람들

다큐멘터리 <Their Eyes>


The New York Times <Their Eyes> 영상 보러 가기


2025 베를린 영화제 단편작 ‘Their Eyes’는 자율주행 AI를 학습시키는 노동자들에 관한 다큐멘터리입니다. 20분의 짧은 러닝 타임이지만, 그들의 모니터 속 세상을 담기에는 충분합니다. 영화는 노동자들의 실제 작업 화면과 유사한 그래픽 영상을 통해 전개됩니다. 마우스 클릭 음이 반복되자 영상의 거리에 보이는 사람과 사물들에는 하나씩 이름들이 붙여집니다.

이미지 출처 : berlinale ‘Their Eyes’ 다큐AIA

영화는 데이터 라벨러들과의 인터뷰 음성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베네수엘라와 케냐, 필리핀에 살고 있는 그들은 원격으로 근무하며 미국 도로 교통 이미지를 라벨링 합니다. 도심 속 중앙에 쭉 뻗은 넓은 도로, 길가의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기는 사람들, 갓 길에 보이는 수많은 시위대와 경찰차들까지. 미국을 가본 적은 없어도 그들은 누구보다 미국의 풍경과 문화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사는 진짜 세상은 모니터 속 그 거리들과는 다릅니다. 노트북 너머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는 무성히 난 잡초 들판과 칠이 벗겨진 채 열려있는 집 대문들, 체계 없이 도로를 지나는 차와 사람들이 보입니다.

이미지 출처 : The New York Times ‘Their Eyes’

그들에게 데이터 라벨링은 하나의 ‘창조적 행위’입니다. 물체를 파악하고, 테두리를 따라 선을 그리고, 물체의 이름을 붙이는 이 행위는 실로 자율주행 차량의 뇌를 만드는 일입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는 창조해 내는 그 자율주행 AI 자체에 있습니다. 아직은 사람의 힘을 빌리고 있는 이 기계가, 머지않아 그들을 대체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미국 국경 바깥에 있는 빽빽한 케이블 전선과 길이 아닌 곳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 각기 다른 형태의 자동차들을 AI가 명확히 구분해 낼 수 있을까요? AI가 정말로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까요?


언제나 해고할 수 있는
‘유령’ 노동자들

다큐멘터리 <Ghost Workers>

동영상 출처 Java Discover ‘Ghost Workers’

2019년에 공개된 이 다큐멘터리는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비슷한 플랫폼 노동자들의 실상을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는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으로 대표되는 빅테크 기업들의 성공 뒤에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저임금 노동을 수행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사는 곳도 소속된 기업도 하는 업무도 제각각이지만, 이 ‘고스트 워커’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최저 시급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며 언제든 해고가 가능한 구조로 계약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불합리한 구조가 가능한 배경에는, 기술 발전으로 인한 전 세계적인 노동의 과잉 공급이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Java Discover ‘Ghost Workers’

AI 기업과 크라우드 소싱 업체, 노동자들 사이의 관계를 밝혀내기 위해 제작진은 페이스북(현 ‘Meta’)의 콘텐츠 검수자로 위장 취업을 합니다. 그곳에서 마주한 노동자들은 매일 같이 민감한 콘텐츠를 확인하고 삭제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작업은 페이스북의 규칙에 따라 행해지며, 노동자의 자율적인 판단은 철저히 금지됩니다. 기업과 업무에 관한 정보는 계약상 기밀로 규정되어 외부에 절대 발설할 수 없고 추후 발생하는 정신적 문제에 대한 지원도 거의 받지 못합니다. 한 정신과 의사는 이러한 계약 구조가 사실상 정신적 조종(mental manipulation)에 가깝다고 분석합니다.

‘그들은 아주 적은 돈을 지불하고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때 해고할 수 있는 노동자입니다’ 이미지 출처 : Java Discover ‘Ghost Workers’

“데이터 라벨링 시장은 마치 소세지 공장과 같습니다. 소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결코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하니까요.”

_<GHOST WORKER> 중에서

궁극적으로 영화가 비판하는 것은 플랫폼 노동자들이 처해진 노동 구조입니다. 노동 윤리는 신경 쓰지 않는 소위 ‘실리콘밸리의 엘리트’들이 만든 오늘날의 빅테크 기업들은 기술이 주는 막대한 이익은 직접적으로 취하지만 하청의 구조를 통해 노동자들에 대한 책임은 교묘하게 회피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기계가 더 똑똑해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AI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수록, 더 많은 고스트 워커들이 그 속에 생겨납니다.


AI를 ‘아이’처럼 키우는
양육자들

영화 <Humans in the Loop>

이미지 출처 : IFFLA ‘Humans in the Loop’

‘Humans in the Loop’는 AI와 노동자의 관계를 서정적으로 풀어낸 인도의 독립 영화입니다. 영화는 인도 자르칸드에 살며 데이터 라벨링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여성 네마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남편과 이혼 후 초등학생의 딸과 갓난 아이를 키우는 그녀는 친구의 도움으로 데이터 라벨링 센터에 취업합니다. 논과 밭, 자연이 있는 농경 사회에서 평생을 커오고 자라던 그녀에게는 화면 속의 도심도, 사람과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도 모두 생소하기만 합니다.

이미지 출처 : Netflix India ‘Humans in the Loop’

작품 속에서 AI는 이제 막 태어난 생명체처럼 묘사됩니다. 네마가 AI를 학습시키는 모습과, 그녀가 퇴근 후 두 아이를 키우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교차됩니다. 그렇게 네마는 회사 안팎에서 두 골칫덩이 생명체들을 키워나갑니다. 한 명은 힘든 자신을 도와주기는커녕 전 남편과 더 가깝게 지내는 첫째 딸 ‘다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입력한 프롬프트에 자꾸 틀린 값만 만들어 내는 그녀의 AI 에이전트입니다. 어느 날 그녀는 농업용 AI 학습을 위해 애벌레를 ‘해충’으로 라벨링 하라는 지시를 두고 고민에 빠집니다. 그녀가 경험한 세상에서 애벌레는 자연에 이로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애석하게도 클라이언트의 평가 기준에 그녀의 의견은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이미지 출처 : Netflix India ‘Humans in the Loop’

하지만 영화는 그녀와 기술 사이의 간극을 마냥 불편하게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녀가 하는 일, ‘AI에게 무엇을 무엇으로 보게 만들지 결정하는 일’이 굉장히 복잡하고도 중요한 과정임을 자연스럽게 드러냅니다. 네마의 상사는 그녀의 세계가 온전해야, 그녀가 제대로 바라보아야 AI를 바르게 만들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마치 한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처럼 말이죠. 네마가 AI에 차츰 익숙해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 노동에 담긴 숭고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필자 또한 부업으로 데이터 라벨링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돈을 더 벌고 싶어 발을 디딘 이곳에서, 많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했습니다. 오늘날의 AI 빅테크 기업들은 실로 인간을 부품처럼 쓰고 버리는 일에 도가 텄습니다. 한두 개의 작업 퀄리티가 낮다는 구실만으로도 바로 작업 권한이 해제되거나 이메일이 지워지는 경험들을 반복해서 겪으니, 문득 제 존재 자체가 무용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모든 라벨러들은 등급 매겨집니다. 학위와 이력, 나이,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국적입니다. 국적별 시급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시급에 대한 공개적인 언급은 엄격히 금지됩니다. 작업을 따기 위해서는 여러 차례의 AI 인터뷰와 지능 테스트, 그리고 얼굴 촬영과 신분증 정보를 제출하는 꽤 복잡한 신원 인증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들은 철저히 AI를 통해 진행되며, 모든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사람’ 직원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나의 모든 정보는 까고 시작하지만, 업무와 클라이언트에 관한 정보는 철저하게 기밀입니다. 그들은 메일 한 통과 클릭 한 번으로 언제든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지만, 모니터 바깥의 우리는 그 결정에 한마디도 얹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근미래를 좌우한다는 빅테크 기업들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100% 자동화’로 포장된 에이전트가 여전히 인간의 지능과 노동을 빌리고 있다는 사실은, 기업들에 의해 철저히 은폐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알아야 합니다. 발전이 누군가의 노동을 없애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수히 많은 노동들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요. 작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AI 윤리 선언이 아니라, 이 숨은 노동들을 인지하는 것부터 일지 모르겠습니다.


ANTIEGG - 프리랜서 에디터 공동체


• 위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로 ANTIEGG에 저작권이 있습니다.
• 위 콘텐츠의 사전 동의 없는 2차 가공 및 영리적인 이용을 금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