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이후
예술가의 역할

AI는 작품을 만듭니다
예술가는 무엇을 남길까요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건 소리가 아니라 속도였습니다. 화면은 숨을 쉬듯 움직였고, 이미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생성되는 과정이 그대로 노출된 장면이었습니다. 독자는 묻게 됩니다. 이제 예술가는 어디에 서야 할까요. 이미지는 몇 초 만에 생성됩니다. 스타일은 학습되고, 붓질은 모방됩니다. 크리스티 경매에는 AI가 만든 초상화가 등장했고, 미술관은 알고리즘으로 생성된 빛을 벽에 투사합니다. 기술은 예술의 영역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이 예술을 흔든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사진의 발명은 회화를 위협했고, 영화는 연극을 흔들었으며, 디지털 편집 툴은 제작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이미 1930년대에 기술 복제 시대가 예술의 ‘아우라’를 변형시킨다고 말했습니다. 예술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존재 방식이 이동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지점도 비슷합니다. 이 글은 AI를 찬양하거나 배척하지 않습니다. 대신 한 가지 질문에 집중합니다. 발전 이후, 예술가는 어떤 일을 하게 되었는가. 낙관도, 비관도 아닌 긴장 속에서 세 사례를 살펴보려 합니다.


마리오 클링게만
– 제작에서 설계로 이동한 자리

‘Memories of Passersby I’, 마리오 클링게만

마리오 클링게만(Mario Klingemann)의 작업은 종종 “AI가 그린 초상화”로 소개됩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조건을 설계하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그의 대표작 <Memories of Passersby I>는 데이터베이스에서 이미지를 꺼내는 방식이 아닙니다. 작가가 훈련시킨 신경망이 실시간으로 새로운 얼굴을 생성합니다. 그 얼굴은 저장되지 않습니다. 반복되지도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과정입니다.클링게만은 수천 장의 초상화를 학습 데이터로 입력합니다. 어떤 데이터로 훈련할지, 어떤 모델을 선택할지, 어떤 출력물을 작품으로 인정할지는 모두 인간의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AI는 계산합니다. 그러나 작품으로 남을 이미지를 결정하는 행위는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자 개념이 이동합니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저자의 죽음”을 통해 의미를 저자의 의도에서 해방시키려 했습니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저자를 텍스트를 통제하는 ‘기능’이라 설명했습니다. 클링게만의 작업은 이 담론을 시각 예술로 옮깁니다. 저자는 더 이상 붓을 든 손이 아닙니다. 작동 조건을 설정하는 위치입니다. 발전은 제작 노동을 자동화했습니다. 대신 예술가는 설계자로 이동했습니다. 이 이동은 축소가 아니라 전환입니다.


레픽 아나돌
– 감각을 조직하는 사람

‘기계 환각 — LNM 식물’, 레픽 아나돌 스튜디오(RAS)

레픽 아나돌(Refik Anadol)의 작업을 마주하면, 화면이 아니라 공간이 먼저 다가옵니다. 빛과 데이터가 건물을 감싸고, 관객은 이미지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는 데이터를 ‘마르지 않는 물감’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물감이 많아졌다고 해서 작품이 자동으로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데이터를 사용할지, 어떤 맥락에 배치할지, 어떤 공간에서 경험하게 할지 결정하는 일은 인간의 판단입니다.

AI는 계산을 수행합니다. 그러나 감각의 구조는 인간이 설계합니다.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는 예술을 “감각적인 것의 분배”라 설명했습니다. 무엇이 보이고, 들리고, 인식될 수 있는지 결정하는 질서 말입니다. 아나돌의 작업은 바로 이 질서를 재배치합니다. 그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감각의 조건을 조직합니다. AI는 무한한 패턴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패턴이 관객에게 어떤 경험으로 남을지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발전은 감각을 제거하지 않았습니다. 감각을 설계하는 방식만을 바꾸었습니다.


Obvious
– 저자를 흔들어 놓은 사건

‘벨라미가의 에드몽 벨라미’ , Obvious

2018년, 프랑스 AI 아트 집단 오비어스(Obvious)가 제작한 초상화 <에드몽 드 벨라미>는 크리스티 경매에서 43만 달러에 낙찰되었습니다. 작품 하단에는 화가의 서명이 아니라 알고리즘 수식이 적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가격보다 질문에 주목했습니다.
창작자는 누구인가. GAN을 활용한 이 작업에서 인간은 데이터를 입력하고,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결과를 선택했습니다. 기계는 이미지를 생성했습니다.

이 사건은 예술의 본질을 다시 묻게 했습니다. 저자는 제작자인가, 설계자인가, 선택자인가. 오비어스는 AI를 대체자가 아니라 협업자로 규정합니다. 그들의 최근 작업 방식 ‘Mind to Image’는 단순 프롬프트 입력이 아니라, 개념 지도와 감성 구조를 구성해 AI와 대화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창작은 입력과 출력의 단순한 교환이 아닙니다. 해석과 조정, 선택의 반복입니다. 발전은 작품의 형식을 먼저 바꾸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의 정의를 흔듭니다.


클링게만은 설계자가 되었고, 아나돌은 감각을 조직했으며, 오비어스는 저자의 개념을 질문했습니다. 세 사례는 모두 다른 방향을 향하지만, 한 지점에서 만납니다. 발전은 예술을 제거하지 않습니다. 예술가의 역할을 이동시킵니다. 기술이 가속화될수록, 인간의 주체성은 오히려 더 또렷해집니다. 왜냐하면 자동화가 확대될수록 무엇을 자동화하지 않을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AI 시대의 질문은 “예술은 끝나는가?”가 아닙니다. 우리는 무엇을 인간의 감각으로 남기고 싶은가. 그 선택은 수동적이지 않습니다. 속도 속에서도 방향을 정하는 일입니다. 발전 이후, 예술가는 더 어려운 자리에 섭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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