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은 늘 편리함을 약속하지만, 그 대가로 누군가의 고유한 권리를 희생시키기도 한다. 오늘날 댄서들의 움직임은 더이상 무대 위의 퍼포먼스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게임 속 캐릭터의 감정표현으로 활용되거나 AI의 학습 재료가 되어 기업의 수익을 창출하는 핵심적인 디지털 자원으로 변모했다.
인간의 몸짓을 데이터로 추출해내는 속도가 법과 윤리의 성찰 속도보다 앞서나가고 있는 지금, 우리는 데이터 자산화의 이면에 숨겨진 그림자를 직시해야 한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무형의 예술이 디지털 자산으로 치환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외를 짚어보고, 역설적으로 그 위기를 기회로 바꾼 AI의 진정한 양면성을 파헤쳐 보려 한다.
우아한 약탈,
그들의 숙련은 누구의 수익이 되는가
AI를 활용하는 것이 댄서를 보호하는 새로운 길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 존재하지만, 앞서 언급한 데이터화의 본질에는 여전히 서늘한 의구심이 남는다. 기술이 가져온 우아한 약탈의 단면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은 게임 ‘포트나이트(Fortnite)’의 안무 무단 데이터화 논란이다. 이 분쟁은 2017년, 안무가 ‘카일 하나가미(Kyle Hanagami)’가 창작한 고유 안무를 제작사 에픽게임즈가 유료 아이템인 ‘이모트(Emote)’로 무단 제작해 수익을 올리며 시작되었다. 이어 래퍼 ‘투 밀리(2 Milly)’와 배우 ‘알폰소 리베이로(Alfonso Lincoln Ribeiro)’ 등 수많은 아티스트가 자신의 정체성과도 같은 무브가 기업의 영구적인 데이터 자산이 되는 것에 항의하며 소송의 불을 지폈다. 하지만 초기 법원의 시각은 냉담했다. 안무가 저작권으로 보호받기엔 너무 짧고 단순한 시퀀스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그들의 호소를 외면했었다.
그러나 끈질긴 법적 공방 끝에 카일 하나가미의 소송은 완전히 결과를 뒤집어 놓았다. 1심의 패배를 딛고 일어선 2023년 항소심에서, 법원은 ‘단 2초의 짧은 움직임이라도 고도로 훈련된 댄서의 창의적 표현이 담겼다면 저작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역사적 판결을 내놓았다. 이는 그가 저작권 등록을 거쳤기에 가능한 결과였으며, 덕분에 단 2초 내의 8가지 동작을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었다. 댄서의 숙련된 시간이 기술에 의해 무의미한 데이터 조각으로 파편화되는 시대에, 인간 고유의 창의적 가치를 법적으로 증명해낸 사건이었다. 이후 2024년 양측의 합의로 소송은 종결되었으나, 이 사건은 댄서의 움직임이 자산화되는 과정에서 정작 창작자는 철저히 소외될 수 있다는 위험성과 동시에 그 권리를 되찾기 위한 법적 투쟁의 근거를 전 세계에 알렸다.
자산화의 딜레마는 우리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댄서의 움직임을 수치화하여 등록하는 것이 정말 그들을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일까? 포트나이트 사례에서 보듯, 춤이 가진 고유한 맥락과 생명력이 좌표값으로 변환되는 순간 댄서의 예술적 가치는 거대 기업의 수익 모델을 위한 규격화된 상품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자신의 정체성이 기업의 유료 아이템으로 소모되는 것에 대한 창작자의 거부감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숙제로 남아있다.
결국 우리는 기술이 예술을 다루는 방식인 표준화의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 AI가 안무를 데이터로 치환하는 과정, 즉 인간의 움직임이 숫자의 나열로 바꾸는 공정은 누구나 창작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민주화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복잡하고 입체적인 인간의 움직임을 알고리즘이 해석 가능한 선에서 규격화하는 작업에 가깝다. 실제로 AI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댄서의 데이터를 재조합할 뿐이기에, 그 과정에서 춤이 가진 고유한 호흡과 미세한 떨림은 디지털 표준 속에 갇혀 사라지게 된다. 기술이 창작의 장벽을 낮추었을지 몰라도, 예술의 깊이를 단일한 규격으로 평탄화하며 창작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이 필요하다. 과연 우리는 기술이 건네는 편리함의 대가로 무엇을 내어 주고 있는지, 그 본질적인 상실에 대해 질문할 준비가 되었을까?
기회로서의 AI
– 성장을 지향하는 발전의 본질
1) 웨인 맥그리거 x 구글 아트 앤 컬쳐
그렇다면 기술이 예술을 학습하고 데이터로 기록하는 것 자체에 부정적인 시선으로 봐야 할까? 아니다. AI 기술 그 자체에 인간의 자리를 빼앗거나 예술을 상품으로만 취급하려는 목적성이 존재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이용해 창작자의 동의 없이 수익을 올리려는 무분별한 약탈자들에게 있다. 반면 기술의 본질인 보조와 확장에 집중하여, 이를 주체적으로 활용해 진정한 발전을 이뤄낸 사례들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현대무용의 거장 웨인 맥그리거(Wayne McGregor)가 있다. 그는 AI를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경계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본인의 30년치 내공이 담긴 안무 데이터와 스타일을 구글 딥마인드에 직접 학습시키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는 단순히 데이터를 내어준 것이 아닌, AI를 자신의 감각과 뇌가 가진 관성적 사고를 깨뜨리는 영감의 증폭기로 삼은 전략적 선택이었다. 웨인 맥그리거는 AI가 제안하는 비정형적이고 낯선 움직임들을 통해 인간의 물리적﹒정신적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춤의 언어를 발견했다. 기술이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기술을 장악하는 사례이다. 인간의 창의성과 AI 역량이 결합했을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예술적 성취의 가능성을 증명해냈다.
웨인 맥그리거의 철학을 직접 확인하고 싶다면 오는 3월 27-28일 GS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리는 한국 초연작 <딥스타리아>를 추천한다. 그는 AI를 11번째 무용수라 칭하며, 실시간 알고리즘과 밴타블랙 기술이 구현한 극한의 암흑 속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다. 무용수의 유기적인 움직임과 AI 오디오 엔진이 만나는 이 무대는, 기술이 예술의 영혼을 잠식하는 것이 아닌 그 심연을 확장하는 도구임을 증명할 것이다.
2) 스탠퍼드 대학교의 EDGE 모델

예술가들의 결단은 공학적인 보조 도구를 통해 구체화되기도 한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EDGE(Editable Dance GEneration)’ 모델은 댄서가 상상 속에만 그리던 무브를 정교한 3D 시뮬레이션으로 시각화하여 검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댄서가 상체의 특정 동작을 취하면 AI는 그 흐름에 어울리는 최적의, 혹은 인간이 미처 생각지 못한 하체의 비정형적인 패턴을 실시간으로 제안한다. 이는 창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줄여주고 창작의 범위를 물리적 제약 너머로 확장해 주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댄서는 AI가 제시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자신의 무브를 더 정교하게 다듬거나 예상치 못한 연결 동작을 채택함으로써, 홀로 도달하기 힘들었던 고난도 안무를 다다를 수 있다. 결국 기술은 댄서의 고유한 표현력을 억압하는 것이 아닌 더 넓은 선택지를 제공함으로써, 더욱 자유롭게 무대 위에서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발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든든한 기반이 된다.
3) MIT 미디어 랩의 Human-AI co-dancing

더 나아가 발전은 인간과 기술 사이의 계층적 구조를 허물고 대등한 파트너십을 형성하기 한다. 2024년 발표된 MIT 미디어 랩의 휴먼AI 코댄싱(Human- AICo-Dancing) 연구는 AI를 단순한 소모적 도구가 아닌 가상의 파트너이자 공동 안무가로 설정하는 비계층적 협력 모델을 제시했다. 기술이 인간을 소외하고 일방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여 돈을 벌려는 단계를 넘어, 가상의 존재와 실재하는 댄서가 무대 위에서 함께 호흡하고 성장하는 공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기술이 인간의 예술적 자존감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술과의 협력을 통해 인간만이 줄 수 있는 즉흥성과 감정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현재 댄스씬의 AI는
어디에 있는가?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혼란 속에서, 그 혼란을 잠재우고 댄서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하려는 움직임 또한 기술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안무 전문 기업 ‘댄스트럭트(Danstruct)’는 이러한 흐름의 최전선에서 국가와 협력하여 안무 저작권 보호를 위한 기술적 해법을 고도화하고 있다. 그동안 안무는 음악이나 미술과 달리 고유성을 입증할 객관적 기준이 모호하여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댄스트럭트는 안무가의 무브를 정밀한 데이터로 추출하고, 이를 블록체인 기반의 시스템에 등록함으로써,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디지털 지문을 형성하는 길을 열었다. 여기서 AI 기술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도구로 작용한다. 수많은 영상 데이터 속에서 특정 안무의 유사성을 초 단위로 분석하고, 원본과의 일치 여부를 과학적으로 판별해내는 작업은 오직 고도화된 AI의 연산 능력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AI에게 ‘약탈자’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 얼마나 편향적인 시각인지를 일깨워준다. AI 그 자체에는 인간의 자리를 뺏으려는 나쁜 의도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이 구축한 시스템 안에서 AI는 모호했던 안무의 경계를 명확히 획정하고, 창작자가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감시하고 증명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댄스트럭트가 지향하는 기술적 고도화는 결국 댄서들이 기술에 소외되는 것이 아닌 AI라는 정교한 도구로 자신의 창작적 영토를 법적·경제적으로 확고히 다지는 과정이다. 국가 차원에서 추진되는 이러한 안무 저작권 보호 체계는 기술의 발전이 창작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술을 통해 그동안 보장받지 못했던 예술가의 권리를 되찾아주는 ‘진정한 의미의 진보’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발전은 멈출 수 없다. 우리는 이미 AI와 공존하는 시대로 진입했다. AI는 댄서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기술의 효율에 매몰되어 댄서의 노고와 권리를 데이터 속에 매몰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 포트나이트가 보여준 약탈의 경고와 웨인 맥그리거가 보여준 장악의 기회 사이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명확하다. 기술이 댄서의 주권을 지키는 방패가 되고, 창작자가 그 데이터를 스스로 다루는 설계자가 될 때 비로소 예술과 기술이 공존하는 진정한 발전이 완성될 것이다. 필자는 춤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숫자와 좌표값 너머에 존재하는 댄서의 뜨거운 숨결과 진심만큼은 결코 기술이 흉내낼 수 없는 영역으로 굳건히 지켜지길 바란다. 10년의 수련을 삼키는 0.1초의 데이터가 아닌 그 수련의 가치를 수천배로 증폭시키는 매개로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