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처진
이미지

진보는 왜
과거를 호출하는가

최근 몇 년간 대중문화 전반에서 레트로 열풍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지금의 흐름을 만든 ‘뉴진스NewJeans’를 비롯한 동시대 대중문화는 과거의 시각적 레퍼런스와 기술적 텍스처를 꾸준히 호출하고 있죠. 음악, 패션, 게임, 영상 이미지까지, 지나간 과거의 감각 형식들이 다시 전면에 등장했고, 사그라들지 않는 이 흐름은 더 이상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장르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필자는 대중문화 전반에서 반복되는 이러한 경향을 현재의 속도에 대한 집단적 피로와 불안이 만들어낸 감각적 반응으로 읽었습니다. 우리는 발전을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는 움직임으로 이해해왔습니다. 기술과 문화는 끊임없이 새로움을 요구받았고, 뒤돌아보는 일은 도태, 정체로 간주되었습니다. 가속되는 발전의 속도는 역설적으로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게 하고, 더 큰 피로와 불안을 떠안게 되죠. 그래서 경험해보지 않은 과거에 대한 향수, 이른바 ‘아네모이아’는 과거로의 회귀라기보다는 이상화된 직선적 진보 서사가 더 이상 충분히 설득되지 않는다는 징후에 가깝습니다.

이번 아티클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과거의 기술 형식과 미학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미디어 작업들을 살펴봅니다. 저해상도 이미지, 픽셀 그래픽, 초기 3D 렌더링 같은 낡은 기술은 발전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질문하게 만듭니다. 발전을 직선적 진보가 아니라, 오류와 되돌아봄, 재조합이 반복되는 비선형적 과정으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과거를 경유해 현재를 다시 읽고, 그 틈에서 다른 미래의 가능성을 상상해 봅니다.


우리의 현재는 불완전하다

Jon Rafman, ‘Dream Journal2015-2016(2016)’ 캡처

현실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진짜같은 이미지를 한 번의 클릭으로 생성하는 시대입니다. 인터넷 보급 이후 기술은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그 기술을 사용하는 감각과 윤리의식은 그 속도에 못미치는 것 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기술을 활용하는 사용자의 윤리 의식과 고립, 익명성을 대하는 태도와 감수성 등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죠. 고도로 발전한 기술의 사용은 이미 일상이 되었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여전히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과거의 흔적과 잔재를 남겨둔 채 계속해서 발전의 레이어를 쌓아간다면, 그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고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을 겁니다.

Jon Rafman, ‘Dream Journal2015-2016(2016)’ 캡처

캐나다의 예술가 존 라프만(Jon Rafman)은 구글 스트리트 뷰 이미지, 초기 3D 게임 그래픽, 온라인 포럼과 밈 문화 등 인터넷의 잔해들을 수집하고 재구성합니다.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가상 공간은 매끄럽게 업데이트된 플랫폼과 다르게 어딘가 어색하고 불완전합니다. 저해상도 아바타, 조악한 렌더링, 익명의 사용자들이 인터넷에 남긴 흔적들은 기술 발전의 속도에서 밀려나고 도태된 과거의 잔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폐허와 같죠. 원시적 디지털 문화, 익명 커뮤니티, 서브 컬쳐가 뒤엉킨 디지털 폐허는, 발전이 앞을 향하는 직선이 아니라 과거의 잔해 위에서 반복적으로 재구성되는 불완전한 현재임을 말합니다.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사용자가 여전히 낡은 구조 안에 머물러 있다면, 과거와 현재의 간극은 점점 어긋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WEBSITE : 존 라프만


발전이 감춘 것

Rosa Menkman & Ted Davis, ‘DCT Encryption Station(2015)’, 이미지 출처 : PHROOM

로사 멘크만(Rosa Menkman)은 디지털상의 오류, 데이터 손상, 화면 깨짐 같은 기술적 결함을 의도적으로 발생시키는 ‘글리치’ 미학을 적극적으로 차용합니다. 글리치는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완벽한 것 처럼 보이는 시스템이 스스로 취약함을 드러내는 순간이죠. 매끄럽게 작동하는 인터페이스는 불안정한 코드와 저장 체계를 감춘 채 유지됩니다. 고해상도와 안정성을 향해 나아가는 기술 환경은 이러한 취약성을 보이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멘크만의 작업에서 오류는 배제되어야 할 이상치가 아니라 구조의 취약함을 가시화하는 장치가 됩니다.

Rosa Menkman, ‘The BLOB of Im/Possible Images(2021)’, 이미지 출처 : HEK

멘크만은 그의 영상 작업에서 과거의 디지털 포맷과 초기 이미지 처리 방식을 다시 호출합니다. 불안정한 파일과 저해상도 손상된 이미지를 통해 현재의 기술 환경과 기술의 옹호자들이 감추는 ‘글리치’가 분명히 존재함을 말합니다. 더 높은 해상도와 더 안정적인 시스템을 향해 나아가는 기술의 흐름에 역행하며, 실패한 이미지들을 통해 기술 뒷편의 균열을 드러내죠. 테라바이트 단위의 데이터 역시 오류 한 번으로 사라질 수 있는 취약한 기반 위에 놓여 있습니다. 즉 발전은 취약성을 유예하거나 감추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WEBSITE : 로사 멘크만


더 선명히 보인다는 것

Hito Steyerl, ‘How Not to Be Seen: A Fucking Didactic Educational .MOV File(2013)’, 이미지 출처 : MoMA

알고리즘이 일상이 된 지금, ‘보인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자원입니다. 점점 더 선명한 이미지와 화면을 기대합니다. 동시에 우리의 클릭과 사이트 접속 경로, 심지어는 음성 데이터까지 분석의 대상이 되었고, 알고리즘의 자원이 되었죠. 발전한 기술 덕분에 세상을 더욱 다채롭고 선명히 보게 된 건 사실이지만 동시에 우리 또한 더 선명히 분석되고, 감시받으며 기술을 소유한 이들의 통제 하에 존재합니다. 더 선명하게 본다는 감각은 더 정밀하게 포착된다는 조건과 함께 작동합니다. 발전은 우리의 시야의 확장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우리의 삶도 더 정교하게 분석되고 통제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Hito Steyerl, ‘How Not to Be Seen: A Fucking Didactic Educational .MOV File(2013)’, 이미지 출처 : MoMA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은 그의 작품 ‘How Not to Be Seen: A Fucking Didactic Educational .MOV File(2013)’에서 군사용 해상도 차트, 초기 CGI, 교육 영상의 문법을 차용해 ‘보이지 않는 법’을 가르치는 가짜 튜토리얼을 구성합니다. 초고해상도 이미지가 표준이 된 환경에서 그는 의도적으로 흐릿한 화면과 조악한 그래픽을 사용함으로써 기술 발전이 만들어온 가시성과 통제의 구조를 드러내기 위함이죠. 기술 발전이 구축해온 가시성과 통제의 구조를 역으로 드러냅니다. 동시에 더 정확히 보고 더 많이 기록하려는 기술의 방향과 반대로, 그는 덜 보이기와 사라지기를 제안합니다. 선명한 재현이 곧 진보라는 통념을 전복하죠. 이미지의 질을 낮추는 행위는 현대 사회에서 가시성의 과잉과 감시 체계를 노출하는 장치로 작동하며, 우리는 그 흐릿함 속에서 과연 더 선명히 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묻게 됩니다.


<How Not to Be Seen: A Fucking Didactic Educational> 작품 보러 가기


왜 우리는 점점 더 선명해질수록 흐릿했던 화면을 다시 꺼내 들까요. 왜 더 많이 기록되는 시대에 덜 남겨지던 시절을 떠올릴까요. 레트로의 반복이 단순한 취향의 순환인지, 아니면 지금의 발전 방식에 대한 불안과 그로부터의 도피인지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과거를 갈망하고 현재로 다시 호출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지금까지 세 동시대 예술가의 작업을 통해 발전이라는 말을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저해상도 이미지와 초기 게임 그래픽, 온라인의 파편은 이미 지나간 기술 형식이면서 동시에 현재를 비추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매끄럽게 업데이트되는 화면 뒤에서 무엇이 밀려나고 지워졌는지를 확인하는 순간, 기술과 발전의 신화를 그저 낙관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게 됩니다. 나아가 발전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처럼 매끄러운 일직선을 그리며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죠. 지금의 기술 환경도 수많은 오류와 잔해, 우회와 수정의 과정을 거치며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니 완벽한 이상향을 향해 달려가던 이들이 발전의 흐름에서 한 걸음 물러나 아련한 과거를 음미하고 싶은 건 당연한 결과인듯 보입니다.

본 아티클을 통해 제안하고 싶은 건, 이미 축적된 이미지와 감각을 다시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기술이 제공하는 편리함은 분명하고, 우리는 과거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그 환경에 깊이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 과거를 돌아보는지, 이 반복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질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레트로의 유행이 왜 사그라들지 않는지, 왜 경험해보지 않은 과거를 그리워하게 되는지 생각해 볼 시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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