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아져야만
진짜 내가 될까

성취 너머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 3편

새해 목표로 자격증 취득, 공부, 운동을 다짐하는 우리에게 발전은 익숙함을 넘어 늘 좋은 것으로 취급됩니다. 더 나아지는 것, 지금의 나보다 더 괜찮아지는 것으로 이야기 되며, 때로는 발전한 미래의 나만이 행복을 보장해줄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발전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버리면, 지금의 나와 현재의 삶은 자꾸만 미완성인 상태로 밀려나게 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몰아붙이는 사람, 완벽한 기준 앞에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 그리고 그 끝에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 사람까지. 영화 속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발전과 성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지금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압박과 성취,
<위플래쉬>

이미지 출처 : 영화 ‘위플래쉬’ 포스터

영화 <위플래쉬>의 주인공 앤드류는 최고의 재즈 드러머를 꿈꾸는 학생입니다. 명문 음악학교에 재학중이던 앤드류는 교수 플레처의 눈에 띕니다. 플레처는 뛰어난 뮤지션을 만들어내지만 동시에 혹독한 교육 방식으로도 악명이 높은 인물입니다. 플레처의 밴드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살아남는 일입니다. 플레처는 완벽한 연주를 위해 앤드류를 무한으로 몰아세우고, 앤드류 또한 인정받기 위해 연습과 경쟁, 긴장 속에 점점 더 깊이 빠지게 됩니다. 더 잘해야 하고, 더 빨리 익혀야 하고, 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은 앤드류의 연주를 넘어 일상까지 침범합니다.

영화 위플래쉬, 앤드류가 플레처 교수의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는 장면
이미지 출처 : 영화 ‘위플래쉬’ 스틸컷

영화〈위플래쉬〉속 앤드류는 치열하게 노력하는 인물입니다. 최고의 드러머가 되고 싶다는 열망과 끊임없이 자기를 증명해야 한다는 앤드류의 압박은 지금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모습입니다. 앤드류의 끝없는 노력과 발전, 위대한 성취를 보여주는 동시에 영화는 묻습니다. 그 순간을 위해 일상까지 밀어내는 것, 그것이 정말 우리를 위한 발전이었느냐고 말입니다.


완벽이 기준이 시대,
<가타카>

영화 '가타카' 포스터
이미지 출처 : 영화 ‘가타카’ 포스터

<가타카>의 부모들은 우수한 유전자를 선택해 결함없는 아이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런 세계에서 인간은 ‘수치’로 매겨지고 분류됩니다. 자연 임신으로 태어난 빈센트는 심장 질환과 짧은 기대 수명을 가져, 태어난 순간부터 열등한 존재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빈센트는 좌절하지 않습니다. 우주비행사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노력합니다. 고문처럼 고통스러운 수술을 견디고, 피부세포와 혈액까지 바꿉니다. 그리고 끝내 해냅니다.

영화 '가타카' 스틸컷
이미지 출처 : 영화 ‘가타카’ 스틸컷

빈센트의 노력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감동적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빈센트의 노력만큼이나 <가타카> 속 세계가 자꾸 떠오릅니다. 빈센트가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 전에 ‘결함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이미 결핍으로 판정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평가로 가득한 지금, 빈센트가 겪은 세상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이유입니다. 더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이 내 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부족한 것으로 만드는 사회에서 시작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지금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말입니다.


​목표 너머의 삶,
<소울>

영화 '소울' 포스터
이미지 출처 : 영화 ‘소울’ 포스터

중학교 밴드부 교사 조는 언젠가 위대한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을 오랜 꿈으로 품고 살아갑니다. 마침내 유명 재즈 밴드와 함께 연주할 기회를 얻은 날, 뜻밖의 사고를 당한 조에게 찾아온 것은 꿈을 이루는 순간이 아닌 죽음의 순간입니다. 오로지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살아온 조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영혼 ‘22’와 만나며, 자신의 꿈과 목표, 삶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영화 '소울' 스틸컷, 조가 재즈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장면
이미지 출처 : 영화 ‘소울’ 스틸컷

누구나 삶의 목표와 소망을 가집니다. 그리고 때로는 목표가 이뤄지는 ‘결말’에 도달하면 기필코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과정에서 현재의 나와 사소하고 아름다운 순간은 ‘나중에’란 말로 미뤄집니다. <소울>은 발전과 성취가 삶의 방향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삶 전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고 역설합니다. 우리는 어느 순간 완성된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영화 속에 나오는 길거리의 햇빛, 친구와의 대화, 아름다운 노래 등 사소한 순간에도 우리의 삶은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더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은 우리를 움직입니다. 그 마음이 있기에 무언가를 배우고, 견디고, 삶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발전만이 삶의 목표이자 정답이 되면 지금의 나는 잠시 미뤄두어도 되는 존재가 됩니다. ‘진짜 삶’은 더 나아진 뒤에야 시작되는 보상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다시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정말 더 나아지기 위해 살아가는 것인지, 아니면 더 나아져야만 괜찮다고 믿게 된 것인지 말입니다. 그 믿음 속에서 지금의 삶을 통과하는 과정으로만 여겼던 것은 아닐까요? <소울> 속 조의 일상처럼, 우리가 오래 그려온 순간이 이미 곁에 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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