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은 오랫동안 ‘보존하는 곳’이었어요. 가치 있다고 여겨진 것들을 안전하게 지키고, 정해진 방식으로 보여주는 공간이었죠. 그런데 요즘의 미술관은 스스로 묻기 시작해요. 무엇을 중심에 둘 것인지, 어떤 이야기를 먼저 꺼낼 것인지요. 연대기 대신 질문을, 거장의 이름 대신 지금의 맥락을 내세우기도 하죠. 공간은 더 유연해지고, 전시는 하나의 메시지처럼 설계돼요. 소장품은 굿즈가 되어 일상으로 스며들기도 하죠. 이 변화는 단순한 전략이 아니에요. 예술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한 태도이죠. 그 태도가 쌓일 때, 어떤 미술관은 기관을 넘어 브랜드가 되기 시작해요.
테이트 모던
– ‘더 큰 이야기’를 공간에 꺼내는 방법

2016년 6월,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은 헤르조그 &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이 설계한 신관 ‘스위치 하우스(Switch House)’를 개관하며 전시 공간을 약 60퍼센트 확장했어요. 이 건물은 이후 ‘블라바트닉 빌딩(Blavatnik Building)’으로 명명됐죠. 겉으로는 단순한 증축처럼 보였지만, 변화의 핵심은 공간의 성격에 있었어요.

신관 지하에 자리한 세 개의 오일 탱크는 퍼포먼스, 영상, 설치 작업을 위한 전용 공간으로 전환됐어요. 테이트는 이를 미술관 맥락 안에서 라이브 아트를 지속적으로 선보이는 공간으로 소개했죠. 전통적인 화이트 큐브를 넘어 시간성과 신체성을 전면에 두는 실험이었어요.
이 리뉴얼의 중요한 지점은 단순히 작품을 더하는 데 있지 않았어요. 무엇을 ‘중심’에 둘 것인지, 모더니즘의 서사를 어떻게 다시 구성할 것인지에 대한 재설정이었죠. 공간의 확장은 곧 관점의 확장이었고, 미술관이 스스로의 기준을 수정하겠다는 선언이었어요.
모마
– 피카소 옆에 링골드를 세운 이유

2019년 10월, 뉴욕 현대미술관(MoMA)은 약 4억 5천만 달러 규모의 확장 공사를 마치고 재개관했어요. 가장 큰 변화는 공간보다 전시 방식이었죠. 회화, 조각, 디자인, 건축, 영상을 매체별로 구분하던 기존 구조를 해체하고, 서로 다른 형식을 하나의 서사 안에 병치했어요. 동시에 컬렉션 갤러리의 상당 부분을 정기적으로 교체하겠다고 밝히며, 완성된 정전을 보존하는 기관이 아니라 그 기준을 계속 재편집하는 플랫폼이 되겠다는 방향을 분명히 했죠.
가장 화제가 된 건 하나의 배치였어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1907년작 ‘아비뇽의 처녀들’이 걸린 공간에 페이스 링골드(Faith Ringgold)의 1967년작 ‘다이’가 함께 설치됐어요. 모마는 이 병치가 여성, 권력, 문화적 차이에 대한 질문을 확장하려는 시도라고 설명했죠. 일부 평론가들은 이를 과감한 큐레이션으로 평가했고, 반대로 두 작품의 역사적 맥락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왔어요.

논쟁이 생겨났다는 사실 자체가 이 선택의 무게를 보여줘요. 링골드는 1960년대 말, 뉴욕 미술관들의 인종·젠더 편향을 비판하며 활동했던 작가였어요. 그런 그의 작품이 수십 년 뒤 모마의 중심 갤러리에서 피카소와 나란히 놓였다는 장면은 미술관이 ‘정답을 전시하는 곳’에서 ‘질문을 설계하는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처럼 읽힐 수 있죠.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 렘브란트 바로 옆에 놓여진 은식기

10년에 걸친 약 3억 7천5백만 유로 규모의 리노베이션 끝에 2013년 재개관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Rijksmuseum)은 그해에만 22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을 맞이했어요. 리노베이션 이전 연간 방문객이 약 100만 명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였죠. 이듬해에는 약 247만 명까지 증가했어요.
수치만큼 주목할 건 전시 방식의 변화였어요. 이전까지 미술관은 회화는 회화끼리, 도자기는 도자기끼리 나누는 매체별 분리 방식을 유지해왔어요. 당시 컬렉션을 총괄했던 타코 디비츠(Taco Dibbits)는 그 구조가 미술관의 조직 체계를 반영한 결과였다고 설명한 바 있어요.

재개관 이후에는 전혀 다른 원칙이 적용됐어요. 재료가 아니라 ‘시간’을 기준으로 삼았죠. 80개 갤러리에 약 8,000점의 작품과 유물을 연대기 순으로 재배치했고,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dt van Rijn)의 회화 옆에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은제 식기와 갑옷이 함께 놓였어요. 예술과 일상, 회화와 공예 사이의 위계가 전시 구조 안에서 자연스럽게 완화되는 방식이었죠.
흥미로운 점은 이 변화가 동시대성을 전면에 내세운 전략은 아니었다는 거예요. 오히려 17세기 렘브란트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그를 둘러싼 사물과 생활 세계를 함께 복원하려는 시도였어요. 과거를 더 충실히 재구성하는 방식이 동시에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만드는 선택이었죠.
뮷즈(MU:DS)
– 기념품을 사러 오프런을 하는 사람들

리뉴얼의 방향이 꼭 전시 공간 안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죠. 박물관 바깥, 상품의 영역에서도 변화는 분명히 감지돼요.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굿즈 브랜드 뮷즈(MU:DS)는 그 사례 가운데 하나예요. 박물관의 서사가 ‘관람’을 넘어 ‘소유’와 ‘사용’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걸 비교적 선명하게 보여줬죠.
‘뮤지엄’과 ‘굿즈’를 결합한 이름의 뮷즈는 2022년 1월 정식 브랜드로 론칭했어요. 그 이전까지는 별도 브랜드 없이 문화상품 형태로 운영돼왔죠. 브랜드화 이후 성장 속도는 빨랐어요. 2020년 약 37억 원대였던 문화상품 매출은 2024년 200억 원을 넘어섰어요. 단순한 디자인 개선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변화였죠.

특정 상품은 상징처럼 기능했어요. BTS 멤버 RM이 구매한 것으로 알려지며 화제가 된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찬 음료를 따르면 얼굴이 붉어지는 취객선비 변색잔은 SNS에서 빠르게 확산됐고, 케이스티파이와 스타벅스 협업 상품도 연이어 주목을 받았어요. 한때는 국립중앙박물관 1층 뮤지엄숍에 전시 관람보다 먼저 줄이 서는 장면도 보였죠.
달라진 건 상품의 외형만은 아니에요. 이전의 박물관 상품이 ‘관람 이후의 기념품’에 가까웠다면, 뮷즈는 방문의 이유가 되기 시작했어요. 유물을 그대로 복제하기보다,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일상의 사물로 번역하는 방식이었죠. 그 결과 문화유산의 서사는 전시장 밖에서도 순환하게 됐어요. 박물관이 공간을 넘어 하나의 세계관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셈이에요.
이 사례들이 의미 있는 이유는 변화의 크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테이트 모던은 스스로의 관점을 점검했고, 뉴욕 현대미술관은 정전의 중심에 다른 목소리를 배치했어요.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은 위계를 낮추는 방식으로 시대를 다시 배열했고,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의 뮷즈는 박물관의 서사를 전시장 밖으로 확장했죠.
이들이 공유하는 건 속도가 아니라 태도예요. 발전은 새로운 것을 더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가진 질서와 관점을 다시 배열하는 과정이에요. 무엇을 더 채울지보다 무엇을 중심에 둘지를 먼저 고민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질문을 반복해야 미술관의 다음 시대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