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하면 어떤 풍경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필자에게는 입장하는 순간 시간 여행을 하듯 오묘한 설렘을 주던 ‘대한극장’에서의 추억이 가장 먼저 스칩니다. 오랫동안 충무로는 한국 영화 산업의 심장이자 꿈의 집결지로 군림해 왔습니다. 하지만 과거 충무로를 수식하던 수많은 단어들은 이제 생명력을 잃었으며, 지금의 충무로는 새로운 생존과 발전을 향해 꿈틀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과거의 흔적을 과감히 지우며 미래를 말하고, 누군가는 흩어진 파편을 붙잡으며 역사적 가치를 외칩니다. 본 글에서는 충무로를 상징하는 세 공간의 변모를 통해, 우리가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무엇을 얻고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그 양면성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잠들지 않는 호텔’로 변신한 극장,
관객의 시선이 머물던 곳에서 발길이 닿는 곳으로

2024년 9월, 충무로의 자존심이자 한국 영화의 산실이었던 대한극장이 66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영업 종료를 알렸습니다. 1958년 미국 20세기 폭스사의 설계로 세워진 대한극장은 1960년대 초 영화 <벤허> 상영 당시 전무후무한 관객 동원력을 기록하며 서울 시민의 문화적 허브가 되었고, 멀티플렉스 시대로 넘어온 뒤에도 충무로의 정체성을 꿋꿋이 지탱해 온 상징적 공간이었습니다.


오랜 침체기를 견뎌온 대한극장의 상영관은 이제 불이 꺼졌지만, 다행히 외관을 유지한 채 새로운 문화예술의 맥을 잇는 장소로 거듭났습니다. 뉴욕에서 시작된 세계적인 이머시브(Immersive·몰입형) 공연 <슬립 노 모어 서울(Sleep No More Seoul)>의 전용 공연장으로 변신한 것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재해석한 이 공연은 정해진 좌석도, 무대와 객석을 가르는 경계도 없습니다. 세 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관객은 고정된 시선으로 스크린을 응시하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직접 공간을 유영하며 서사의 주체로서 극에 참여합니다. 모든 관객이 서로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파괴적이고 실험적인 공연 형식은 대한극장 7층 건물 전체가 ‘매키탄 호텔’이라는 가상의 세계관으로 완벽히 탈바꿈해야 했던 이유와 맞닿아 있습니다.
“산을 옮기는 것만큼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11개 상영관을 평탄화하고 1930년대 스코틀랜드풍 호텔로 재구축하는 데만 1년 이상이 소요됐습니다. 영국 창작진과의 협업 아래, 가구와 소품은 물론 바닥의 먼지 한 톨까지 연출 의도를 담아 설계했습니다. ‘소품 하나도 이유 없이 놓여서는 안 된다’는 철저한 원칙 끝에, 낡은 극장은 비로소 거대한 세계관이 되었습니다.
_미쓰잭슨 박주영 대표인터뷰 중
<슬립 노 모어 서울> 제작사 미쓰잭슨의 박주영 대표는 한 매체 인터뷰에서 대한극장을 매키탄 호텔로 바꾸는 과정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시대를 풍미했던 장소가 사라진 자리에 거대한 주상복합이나 쇼핑센터가 들어섰다는 뉴스를 우리는 흔히 접하곤 합니다. 그에 비하면 대한극장이 상업적 공연장으로 변모한 것은, 아쉬움 속에서도 공간의 생명력을 이어가기 위한 유연한 응답으로 읽힙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영화관의 모습은 사라졌을지라도, 과거에 머무는 대신 새로운 선택을 통해 또 다른 관객을 맞이하고 있으며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공간으로서의 장소적 맥락은 여전히 유효하니까요.
서울영화센터,
아카이브의 ‘뿌리’인가 OTT 시대의 ‘플랫폼’인가

대한극장이 민간 차원의 유연한 변신을 선택했다면, 최근 개관한 서울영화센터는 ‘발전’을 바라보는 공공의 시각차가 얼마나 극명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곳은 본래 영화인들의 숙원이었던 ‘서울시네마테크’, 즉 영화를 보존하고 연구하는 ‘영화 박물관’을 꿈꾸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개관 직전 서울시는 영화를 보존할 유산이 아닌, 육성해야 할 ‘플랫폼 산업’으로 재정의하며 노선을 급선회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시네마테크의 심장인 ‘필름 수장고’ 기능이 제외되었고, 그 결과 센터는 과거를 기억하는 공간보다는 일반적인 복합상영관에 가까운 모습이 되며 오랫동안 이 곳의 건립을 고대해온 영화인과 시민들의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100석 이하 상영관에 도입된 리클라이너와 컴포트석은 시민 편의라는 명분을 얻었지만, 결과적으로 좌석 수를 절반 가까이 줄여 더 많은 시민이 영화를 향유할 기회를 제한했습니다. 또한 상영관의 고정된 스크린 크기와 영화의 화면 비율이 다를 때 나머지 빈 공간을 검은색 가림막으로 가려주는 ‘마스킹’ 시설의 배제, 예술영화 등 희귀 필름 상영 시 필수적인 세로 자막 등을 고려하지 않은 상영관 구조는 역시 전문성 결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급격한 시대 변화 속에서 산업적 효율과 보존의 가치 중 무엇에 더 집중할 것인가’.
발전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불가피한 충돌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영화산업이 침체기를 겪고 있는 지금, 영화를 위한 공공 공간이 하나라도 더 늘어나는 것은 그 자체로 생태계에 큰 의미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화를 단순 콘텐츠 이상으로 아끼는 이들과 새로운 영상 문화를 즐기는 관객 모두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진화해 나가는 것, 그것이 우리 앞에 놓인 가장 중요한 숙제가 아닐까요? 공간의 정체성이 명확히 정립되고 그 안에서 관객이 체감하는 경험이 풍성해져, 서울영화센터가 영화 문화 전반을 지탱하는 든든한 거점으로 서서히 자리 잡아 나가기를 바라봅니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오!재미동’,
연대가 만들어낸 작은 승리

거대한 담론들이 충돌하는 충무로의 지상과는 대조적으로, 충무로역 지하 1층에는 2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작은 문화 사랑방 ‘오!재미동’이 있습니다. 2004년 문 연 이곳은 누구나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극장이자 아카이브이며, 신진 작가들의 전시실이자 영상 제작을 돕는 교육의 장이기도 합니다. 화려한 멀티플렉스나 거창한 센터는 아니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시민들과 독립 영화인들에게 오!재미동은 영화적 일상을 가능케 했던 소중한 아지트였습니다.


하지만 이 작고 소중한 공간은 지난 2025년 11월, 서울영화센터 개관과 함께 폐관 위기에 처했습니다. 서울시는 ‘기능 중복’과 ‘효율성’을 이유로 예산을 삭감하며 일방적인 종료를 통보했습니다. 산업적 논리와 행정적 편의라는 ‘발전의 속도’ 앞에서, 한 공간이 20년 넘게 쌓아온 무형의 가치와 커뮤니티의 역사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공간의 사라짐을 용납할 수 없었던 시민들과 영화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끈질긴 항의와 투쟁, 그리고 오!재미동이 개인의 삶에 미친 영향을 기록하는 연대의 물결은 변화를 만들어 냈고, 2026년 1월, 오!재미동은 극적으로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시설을 확충하고 첨단 기술을 도입하는 것만이 발전을 위한 길인가? 오!재미동의 부활은 우리에게 ‘진정한 발전’이 무엇인지를 되묻게 합니다. 때로는 산업적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네트워크를 지켜내고 계승하는 것 또한 발전의 중요한 축이 됩니다. 공간이란 그 곳을 찾는 이들이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관계를 맺으며 계속해서 가치를 만들어갈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생명력을 얻으니까요.
발전은 단편적인 선악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한극장의 화려한 변신, 서울영화센터의 복합적 충돌, 오!재미동의 소중한 생존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충무로의 미래를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일테니까요. 다만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과거의 시간을 무의미한 퇴보로 치부해버리는 태도일 것입니다. 역사는 사후의 해석으로 완성되지만 그 역사를 써 내려가는 지금, 우리는 어떤 가치를 우선순위에 둘 것인지 끊임없이 반문해야 합니다. 충무로의 변화가 낡은 것을 지우는 과정이 아닌, 과거와 미래가 겹쳐지며 더 깊은 층위의 문화적 경험을 위한 성숙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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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씨네21, 시네마테크의 정체성도 잃지 않겠다, 서울영화센터를 둘러싼 그간의 잡음과 이후 방향성(2025.08.21)
- 3.시사IN, 엇갈린 서울시와 영화계, 시네마테크는 왜 영화센터가 됐나(2025.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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