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에서 N년차, 이제 저는 연극과 뮤지컬을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로 섬기는 한 명의 관객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사랑하고 때로는 증오하며 여러 극장들을 떠돌다 보니, 막연히 가깝게 느껴지는 시공간들도 생겼는데요.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최소한 10번은 가본 것 같은 어느 날의 뉴욕, 혁명의 바람이 온 나라를 집어삼킨 18세기 프랑스, 나라 잃은 설움으로 얼룩진 일제강점기의 경성. 전부 무대 위에서 익숙하게 만나온 탓에 제 기억 속의 풍경처럼 느껴지는 곳들입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마음 깊은 곳에 남아있는 곳은 바로 영국입니다. 안개 낀 런던의 거리, 이름 모를 이들의 마음이 녹아 있는 오래된 건물, 삶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전쟁 그리고 무대를 통해 영원불멸의 삶을 얻은 수많은 작가들. 이유는 나열하기 벅찰 정도로 많지만, 아주 개인적인 것도 한 가지 있습니다. 대학로에서 만난 저의 첫사랑, 연극 <어나더 컨트리>의 배경도 영국이기 때문입니다. 초연과 재연을 합쳐 서른 번 가까이 이 작품을 보며 학교와 성장 그리고 발전의 가치에 대해 고민해 보곤 했는데요. 오늘은 제가 너무나 사랑했던 <어나더 컨트리>를 시작으로 삶을 치열하게 고민하게 만들었던 영국 학교 배경의 연극 두 편을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혼란으로 가득 찬 시대,
앞서 성장한 사람들

연극 <어나더 컨트리>는 영국의 극작가 줄리안 미첼 손에서 태어난 수작입니다. 1982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된 후 유수의 상들을 휩쓸며 평단과 관객의 많은 사랑을 받았죠. 1984년에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우리에게 ‘킹스맨’으로 익숙한 영국 배우 콜린 퍼스가 바로 이 작품으로 데뷔했습니다.
연극은 1930년대 영국 명문 학교를 배경으로, 자유분방하고 아름다운 소년 ‘가이 베넷’과 마르크스 사상에 심취해 있는 이단아 ‘토미 저드’의 이상과 좌절을 다룹니다. 두 사람 모두 체제와 시대에 순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때, 그 질서에 의문을 품은 소년들이죠.
먼저 가이는 영리하고 야심이 큽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규칙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필요한 건 실력보단 ‘적절한 태도’라는 사실을 일찍 깨달았죠. 그래서 그는 체제에 저항하면서도 타협하고, 비웃으면서도 계산합니다. 그의 선택은 늘 시스템 밖을 향해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에 가깝습니다. 주변을 둘러싼 사회시스템이 유달리 그에겐 가혹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그는 같은 성별의 학생을 사랑하고 있거든요.
한편 토미 저드는 가이와는 다른 형태로 시대와 불화합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한 이상주의자로, 학교 안의 계급 구조와 권위주의를 정면으로 거부하죠. 귀족 출신 학생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특권, 선배라는 이유만으로 행사되는 폭력, 성적으로 서열을 매기는 시스템 모두가 토미에겐 타파해야 할 부조리입니다. 그가 바라는 ‘지상의 지상, 그냥 지상’이란 결국 부조리가 없는 세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역시 이루지 못하고, 신념을 위해 스페인 내전에서 싸우다 전사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되죠.
이렇게 가이와 토미를 필두로 함께 학교를 채우는 다른 소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질서에 순응하거나 균열을 냅니다. 그들의 방황은 단순한 청춘의 혼란이 아니라,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대의 예고처럼 보입니다. 그들을 품기에 시대는 너무 낡았으니까요. 이들이 바라보고 있는 건 미래에 가깝습니다. 그렇기에 한 발 앞선 성장은 축복이라기보다 고립처럼 보입니다. 시대가 아직 받아들일 준비를 하지 못한 감정과 생각을 먼저 품은 사람은, 늘 외롭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발전은 정말 인간을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드는가

앞에서 만나본 <어나더 컨트리>가 시대를 앞서간 개인의 고독을 그렸다면, 같은 영국 학교를 배경으로 한 또 다른 작품은 시대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발전’의 본질을 묻고 있습니다. 바로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입니다.
1930년대 파시즘과 대공황의 시대에서 반세기가 흐른 1980년대 영국 북부의 한 공립학교. 겉으로만 보았을 때 <히스토리 보이즈> 속 소년들은 <어나더 컨트리>의 가이나 토미보다 훨씬 발전된 사회에 살고 있는 듯 보입니다. 시대는 새로운 물결 속에 있고, 정보는 넘쳐나며, 제도는 섬세해졌죠. 어떤 의미로는 기회가 이전보다 훨씬 넓어졌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옥스브릿지’ 특별반에 들어가 명문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소년들은 분명 1930년대의 학생들보다 더 개방적인 환경에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하지만 교실 안에서는 여전히 낡은 질문들이 반복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배우고,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가. 이 물음 앞에서 두 명의 교사가 등장합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헥터 선생은 학생들에게 지식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가르칩니다. 셰익스피어의 구절과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이 삶을 지탱하는 방패가 되어줄 거라 믿는 사람이죠. 반면 옥스퍼드 출신의 신임 교사 어윈은 입시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전략을 강조합니다. 역사를 비틀어 해석하고, 면접관의 눈길을 사로잡을 ‘차별화된 관점’을 만들어내는 법. 그에게 지식은 목적이 아니라 대학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죠.
완벽히 다른 방향을 걷고 있는 두 교사 사이에서 학생들은 흔들리고 또 흔들립니다. 헥터의 수업에서는 문학 속 구절을 암송하며 웃고, 어윈의 수업에서는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의 비극도 관점을 전복하는 사고를 위한 훈련 도구로 삼죠. 더 많이 알고, 더 빨리 판단하고,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시대가 요구하는 ‘발전’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정작 이 모든 과정 속에서 그들이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있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기 교실 한편에서 조용히 흔들리는 소년이 있습니다. 바로 ‘포스너’입니다. 똑똑하고 섬세한 아이지만, 세상이 요구하는 방향에 어울리지 않는 소년이기도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유대인이에요. 힘도 약하고 동성애자인데다가 쉐필드에 살고 있어요. 완전 좆된거죠.”
1930년대 가이 베넷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체제 밖으로 밀려났다면, 1980년대 포스너는 여전히 같은 이유로 자신을 설명해야 합니다. 겉보기엔 분명 발전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의 외로움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포스너의 외침은 그래서 유난히 또렷하게 들립니다. 지식은 늘어났고 시스템은 빠르게 발전했지만 인간의 마음은 그 속도에 발맞춰 나가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죠.
아이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신 정답을 찾는 법을 배우고, 자신을 이해하기보다 평가 기준에 맞추는 데 익숙해집니다. 극 중 아이들을 자라 ‘사회를 지탱하는 훌륭한 기둥’이 됩니다. 하지만 과연 이게 본질적인 의미의 발전일까요? 소년들의 보며 우리는 다시금 고민합니다. 사회는 ‘성장’ 혹은 ‘발전’이라 주장하며 우리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말 그러한지 의문이 남을 뿐입니다.
가이 베넷이 살던 시대와 포스너가 살아가는 시대 사이에는 분명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제도는 정비되었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늘어났으며, 얼핏 보기엔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여온 듯 보이죠. 그러나 두 인물을 살펴보며 우리는 묻게 됩니다. 사회가 주장하는 발전이 정말 인간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들었는지,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게 된 사회 안에서 개인은 정말 발전했는지 말이죠.
이것이 바로 <어나더 컨트리>와 <히스토리 보이즈>가 함께 던지는 질문이자 우리에게 보여주는 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발전이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며, 인간은 언제나 그 과정 속에 있다는 거죠.
시대는 빠르게 변하지만, 인간의 감정과 자아는 그보다 섬세하게 움직입니다. 때로는 사회를 앞서가기도 혹은 더디게 움직이기 하죠. 그렇기에 사회와 인간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시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발전의 본질을 인간의 관점에서 다시 정의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높은 곳에 도달하는 결과가 아니라, 흔들리고 의심하고 다시 선택하는 과정 자체로 말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1930년대의 가이처럼 투쟁하고, 1980년대의 포스너처럼 외로워하며, 2026년의 대학로 객석에 앉아 그 시차를 메울 답을 찾고 있으니까요.
끝으로 <히스토리 보이즈>는 3월부터 새로운 프로덕션과 함께 다시 무대에 오릅니다. 링크아트센터 페이코홀에서 6월까지 만나보실 수 있으니, 혹시 소년들의 치열한 수업이 궁금하시다면 한 번 방문해 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저도 3월에는 ‘옥스브리지 특별반’ 수업을 들으러 학생들과 함께 등교할 예정이니까요. 함께 객석에 앉아 수업을 들을 수 있길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