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장소는 건물이 사라지고 산업이 붕괴된 이후에도 여전히 ‘그곳’으로 남는다. 반대로 어떤 장소는 새로운 건물과 자본, 사람이 유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이전의 장소로 인식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차이를 흔히 ‘본질’의 문제라고 부른다. 그러나 정작 그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묻지 않는다. 그것은 물리적 형태에 있는가, 그곳에 살던 사람들에 있는가, 아니면 기억과 감각 같은 비물질적인 것에 있는가.
일본 세토내해의 섬 나오시마는 이 질문이 가장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사례다. 1980년대까지 산업 폐기물로 오염되었던 이 섬은, 1987년 베네세 그룹의 창업자 후쿠타케 소이치로가 개입하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이후 수십 년에 걸쳐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며, 이곳은 세계적인 예술 섬으로 재구성되었다.
그렇다면 나오시마는 본질을 보존한 것인가, 아니면 완전히 다른 장소로 대체된 것인가.
이 질문은 결국 하나로 수렴된다. 장소의 본질은 ‘무엇이 존재하는가’에 있는가, 아니면 외부의 것이 유입된 이후에도 유지되는 ‘관계의 방식’에 있는가. 그리고 만약 본질이 관계에 있다면, 그것은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설계되는 것 아닐까.
관계를 설계하는 건축,
지추미술관

흔히들 본질은 가장 내면에 있다고 한다. 나오시마 섬을 둘러 보는 보편적인 방식은 가장 안쪽의 미술관부터 관람을 시작해 나오는 것. 종점 정류장인 지추미술관은 땅 속에 묻혀 있다. 건물의 높이는 섬의 지형선과 맞춰져 외부에서는 존재조차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지붕이 없는 안뜰로는 빛이 수직으로 떨어지고, 그 빛은 모네의 수련 연작이 걸린 방 안으로 흘러든다. 오전과 오후, 서 있는 자리에 따라 빛의 각도와 색이 실시간으로 변화한다. 클로드 모네, 제임스 터렐, 월터 드 마리아. 세 작가의 작품만을 위해 맞춤 설계된 공간이지만, 그 설계의 핵심은 작품이 아니라 빛과 시간이다. 건물은 그것을 담는 그릇이기를 포기하고, 대신 조건을 만드는 장치가 되었다.
이 선택은 단순한 건축적 절제가 아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거대한 기획이 장소를 덮거나 지배하지 않도록, 그 사이의 ‘거리’를 설계한 결과다. 자본은 들어오되 기존의 풍경을 압도하지 않고, 새로운 구조는 형성되지만 기존의 질서를 대체하지 않는다. 이때 건축은 형태가 아니라 관계를 만드는 장치가 된다. 무엇을 세우느냐보다, 어떻게 개입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
재생이 실패하는 이유는 자본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자본이 기존의 맥락 위에 군림하려 할 때다. 더 크고, 더 높고, 더 선명한 것으로 덮어버리는 순간, 장소는 갱신되는 것이 아니라 교체된다. 안도가 선택한 방식은 그 반대였다. 그는 보이지 않게 개입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관계를 남겼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이렇게 설계된 관계는, 과연 실제로 유지될 수 있는가.
관계로서의 존재,
이우환 미술관

지추미술관을 나와 바다를 안은 내리막길을 걷다 보면, 이우환 미술관에 다다른다. 세토 내해의 푸른 풍경에 돌과 철판이라는 독특한 물질이 어우러져 있다. 둘은 마주 보고 있지만 끝내 맞닿지 않는다. 이우환은 이 공간을 “태반으로 돌아가는 듯한 사색의 공간”으로 정의했다. 작품이 공간 안에 배치된 것이 아니라, 공간과 작품이 동시에 설계된 것이다. 그 결과가 이 간격이다.
이우환의 ‘관계항’ 연작은 서로 다른 물질을 병치한다. 돌은 섬의 시간과 자연을, 철판은 외부에서 유입된 산업적 질서를 상징한다. 중요한 것은 두 요소가 하나로 통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철판은 돌을 덮지 않고, 돌은 철판에 종속되지 않는다.
작가가 말하는 ‘관계’는 조화가 아니라 거리다. 의미는 사물 자체가 아니라, 그 사이에 형성된 간격에서 발생한다. 다시 말해, 관계는 하나로 합쳐지는 상태가 아니라, 서로를 침범하지 않은 채 유지되는 거리 그 자체다. 그런데 이 간격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두 물질 사이의 물리적 거리, 그리고 그 거리를 의도적으로 설정한 사람의 판단이 필요하다. 관계는 자연 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설계된 조건 위에서만 성립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한 번 만들어졌다고 해서 영원히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 간격은 어떻게 지속되는가. 혹은, 언제 무너지는가.
관계를 유지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스기모토 히로시 갤러리

섬의 산등성이를 따라 세워진 미술관들을 따라 내려 오는 길, 세토 내해의 바람과 파도가 점차 가까워진다. 그리하여 수평선과 시선을 맞추게 되는 곳에는 스기모토 히로시 갤러리가 위치한다.
갤러리 안에는 또 하나의 수평선이 존재한다. 세토 내해와 동등한 위치에 설치된 작가의 ‘씨스케이프’ 연작은 수평선 하나를 경계로 하늘과 바다가 나뉜 장면을 담는다. 단순하고 정적인 구성이지만, 그 한 장의 사진은 장시간 노출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 안에는 셀 수 없는 파도가 겹쳐 있다.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왔고, 그 자리를 또 다른 파도가 덮었다. 수많은 교체와 변화를 품은 바다는 고요하다. 스기모토의 작업이 보여주는 것은 변하지 않는 풍경이 아니라, 변화가 잔상을 남기지 않은 상태다. 이것은 하나의 사실을 드러낸다. 관계는 계속 맺어질 수 있지만, 그것이 자동으로 보존되지는 않는다는 것. 오히려 관계는 유지되지 않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상태에 가깝다.
이 장면은 나오시마의 현재와 정확히 겹쳐진다. 세계적인 관광지로 부상한 이 섬에는 연간 수십만 명의 방문객이 유입된다. 혼무라 지구의 골목에는 상업 시설이 늘어나고, 지가는 상승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난다. 초기의 나오시마에서 관계는 자본과 예술가에 의해 설계되었다. 하지만 지금 그 관계를 실제로 작동시키는 것은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 그리고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방문객들이다. 즉, 관계를 만든 주체와 그것을 유지하는 주체가 더 이상 같지 않다.
이것은 실패라기보다 변화에 가깝다. 관계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언제든 다른 방식으로 변형되거나 소멸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오시마는 지금, 설계된 관계가 새로운 조건 속에서 다시 조정되고 있는 과정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보존할 수 없는 것을 유지하는 방법
본질이 관계라는 말은, 본질이 더 취약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형태는 억지로라도 보존할 수 있지만, 관계는 참여하는 모든 요소가 서로를 침범하지 않을 때만 성립한다. 그리고 그 조건은 고정되지 않는다. 시간과 함께 변하고, 주체가 바뀌며,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2017년 태풍이 섬 내 미술관을 관리하는 베네세 하우스 인근 경사면을 무너뜨렸을 때, 복구 방안으로 콘크리트 사용이 검토되었다. 그러나 베네세가 선택한 것은 달랐다. 스태프들이 섬을 걸으며 고유 식물의 씨앗을 직접 채취해 무너진 경사면에 다시 심었다. 후쿠타케 소이치로가 나오시마를 처음 구상했을 때의 원칙, “존재하는 것을 활용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창조하라”는 말이 이 순간에도 작동하고 있었다.
나오시마는 그 취약함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소다. 이 섬은 어떤 것을 완전히 보존한 것도, 완전히 대체한 것도 아니다. 다만 서로 다른 요소들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공존하도록, 끊임없이 조정되어 왔다. 그래서 나오시마는 완성된 장소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해서 다시 설계되고 있는 관계다.
그리고 그것은 이 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속한 모든 장소와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본질은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롭게 유지되는 방식 속에서만 존재한다.
-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 조경디자인실, 島本来の自然を、未来へつなげ。直島で行われる、自然再生への挑戦, Benesse’s action on sustainability from Benesse (well-being), 2019.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