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유명해져라, 그렇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쳐 줄 것이다’라는 문장을 아시나요? 이는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작품 철학을 잘 정의한 문장 중 하나입니다(물론, 현재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그는 이 말을 한 적 없습니다). ‘상업 미술’이라하면 가장 잘 알려진 작가로는 앤디 워홀이 있지만 그를 뛰어넘는 예술가가 세상에 등장했습니다. 영국 현대 예술 조류에 속하는 예술가 중 가장 유명하며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현대 예술가로 평가받는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미술계가 주목하는 악동
데미안 허스트는 ‘YBA(Young British Artist)’를 대표하는 영국의 현대 예술가입니다.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1988년 학생 전시회 <프리즈>의 큐레이터를 맡으며 런던 미술계에 첫발을 내디뎠죠. 데미안 허스트의 대표작 시리즈로도 잘 알려진 죽음과 부패를 표현한 포름 알데히드 작품들로 최고 예술가만 받을 수 있다는 터너상을 수상하며 전설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2005년과 2008년에는 미술 전문지 아트리뷰가 선정하는 세계 미술계 영향력 있는 예술가 1위에 오르기도 했던 그지만, 그의 독특한 작품성은 끊임없이 논란을 낳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죽음을 적나라하게 다루기에 관람객들에게 공포심을 유발하며, 이는 생명을 이용해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비윤리적 행태에 근간했다는 점이 그를 향한 비판의 주된 이유입니다.
적나라한 ‘죽음’을 담은 그의 작품들
실제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을 마주하면 알 수 없는 불쾌한 감정과 공포심이 일곤 합니다. 해당 설치 작품은 죽은 뱀상어 사체를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담가 유리 진열장에 넣은 것으로, 높이 2m 길이 5m에 달하는 수조에 앞에 서면 사람이 공포심을 느낄 법한 거대한 크기의 실제 상어가 담겨 있습니다.
뱀상어 사체 작품이 발표된 후 2년 뒤인 1993년엔 더욱 파격적인 작품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암소와 송아지의 사체를 반으로 갈라, 포름알데히드 수조에 넣은 작품 “Mother and Child Divided(분리 된 엄마와 아이)”입니다. 옆에서 보면 겉모습만 보여서 괜찮을까 싶지만, 가운데로 난 길을 통해 작품을 들여다보면 동물들의 장기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리 진열장에 피가 흥건한 소의 머리와 파리, 구더기, 설탕, 살충기, 물을 넣어 구성한 “A thousand year(천년)”이라는 작품도 있습니다. 두 개로 나눠진 유리 상자에 각각 피 흘리는 소의 머리와 파리가 있고, 그 사이는 관으로 연결되어 있죠. 죽은 소의 머리에 접근하는 파리들은 소가 있는 칸에 설치 된 전기장치에 감전되어 죽으며, 소의 머리에서 자라는 구더기들은 동시에 파리를 먹으며 파리가 됩니다. 삶과 죽음이라는 양가적인 현상을 한 공간에 보여주기에 심오한 철학적 내용이 담긴 작품이 라는 감상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표현 방식에 공포심을 느끼며 그의 작품 자체에 불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2007년에 발표된 “For The Love of God(신의 사랑을 위하여)”라는 작품도 세간의 논쟁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백금을 입힌 인간의 두개골 표면에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은 이 작품은 약 735억 원에 거래되며 그에겐 ‘죽음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엽기적인 작가라는 타이틀이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죽음을 다뤘던 작품들은 많았지만, 데미안 허스트가 이를 다루는 방식은 매우 직접적이고 논쟁적이어서 작품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저 비윤리적인 죽음인가?
여기서 잠깐, 그가 죽음을 대하는 이유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봅시다. 그가 이렇게까지 가감없이 죽음을 다루게 된 배경에는 그의 어린 시절이 존재합니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살았던 그는 그만큼 죽음에 노출이 많이 됐던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장례식장에서 일했고 그는 시체 공시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죽음, 시체, 그리고 각종 시약에 익숙해지며 삶과 죽음의 의미에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고, 그때의 경험들이 켜켜이 쌓여 그만의 독자적인 미술 철학을 공고히 할 수 있었지요.
사실 ‘죽음’은 우리 사회에 일상적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아, 사고, 전쟁 등의 이유로 여러가지 죽음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중에는 인간에 의한 인위적인 죽음들도 분명 존재할 것입니다. 교통사고, 폭행, 살인사건 등.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죽음을 접하지만, 당장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이 아니기에 큰 타격을 주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육식 행위만 보더라도 우리는 가공된 육류 식품을 접할 뿐 동물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죽는지 알 수 없죠. 죽음은 일상적으로 벌어지지만, 우리는 그 표면을 직접적으로 마주하지 않은 채 살아 왔기에 데미안 허스트가 보여주는 적나라한 죽음이 부정적인 감정을 야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인생에서 그리고 우리의 주변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의 작품보다 훨씬 잔인하고 폭력적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데미안 허스트라는 예술가는 죽음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죽음을 담고자 했던 작품을 두고 잔인하다고 비아냥거릴 게 아니라, 우리 곁에 늘 존재하고 있는 죽음을 바로 볼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