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어떻게
음악의 동네가 되었나

한국 대중음악사를 이끈
신촌과 홍대의 흥망성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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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여러 지역 중 ‘젊음’의 거리를 꼽으라면 신촌과 홍대를 빼놓고는 이야기를 할 수 없을 텐데요. 매일 같이 생겨나는 다양한 핫플레이스, 인근 대학교 학생들이 오가며 형성하는 활기찬 기운. 동네를 이루는 현지인들과 방문객들이 끊임없이 뒤엉키며 다채로운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하지만 이 두 곳은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던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 두 지역의 공통점은 바로 현대 대중음악사를 이끈 대표적인 동네라는 것이죠.


주류에서 비주류로의 이동,
신촌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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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카고의 블루스, 디트로이트의 모타운과 같은 이야기처럼 20세기 이후 대중음악은 그 동네를 구성하는 장소, 뮤지션들과 맞물려 일종의 ‘브랜드’적인 가치를 형성해왔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데요. 바로 80년대 신촌의 ‘언더그라운드 신’, 그리고 90년대 홍대의 ‘인디 신’이 등장한 것처럼 말이죠.

지금도 신촌에 가면 오래된 음악 카페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X세대에겐 향수의 장소로, MZ세대에겐 옛 문화로부터 오는 새로운 경험인 뉴트로의 장소로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예로부터 음악 까페(음악감상실)은 음악을 즐기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신인 가수들의 등용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작은 신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신촌은 비주류의 동네였는데요. 인근 대학생을 비롯한 문인, 교수, 예술인들이 왕래했던 장소로는 단연 젊은이들이 성지인 명동이나 종로 일대가 대표적인 동네였습니다. 이런 주류의 무대에서 벗어나 서울의 부도심, 신촌 일대에도 언제부턴가 젊은이들이 모여 음악에 대한 갈증을 달래던 작은 음악감상실들이 197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신촌은 어떻게 한국의 대중음악 속 ‘비주류’의 동네로서 ‘언더그라운드 신’의 태동지가 될 수 있었을까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신촌은 지하철 2호선 신촌역을 중심으로 신촌 로터리와 연세대학교로 이어지는 창천동 일대 그리고 이화여자대학교 및 인근 상권까지도 포함합니다. 기독교 계에서 설립한 대학들이 모이며 미국의 자유주의와 개방적인 문화가 가장 먼저 스며들었던 지역이기도 했죠. 더불어 1980년 성산대교가 개통되며 강남 지역에서 신촌으로 넘어오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젊은이들이 모이는 ‘핫한 동네’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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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부터 라이브 연주를 하는 음악감상실이 신촌에 많이 생기기 시작했고, 1975년 ‘가요 정화 운동’으로 음반에 대한 심의제도가 강화되면서 본격적인 신촌만의 ‘언더그라운드 신’이 활성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의 주류 대중음악과는 차별화된 음악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신촌의 소극장, 음악감상실, 클럽 등에선 다양한 장르의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공연되었죠. 신촌을 무대로 활동했던 밴드에는 ‘신촌파’라는 별칭이 붙으며, 이를 통해 신촌은 대안 음악의 발상지가 되었습니다. 언더그라운드 장르로 대두되는 즉흥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문화가 그 시기 신촌의 장소성 그 자체였던 것이죠. 당시 신촌파로 이름을 알렸던 들국화와 송골매. 그리고 도로또(트로트의 일본 표현)가 아닌 한국만의 블루스를 탄생시킨 ‘신촌 블루스’까지. 주류를 따르지 않는 독자적인 행보와 실험정신으로 대중문화에 한 획을 그은 이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잉여 공간이었던 홍대,
인디 신의 중심지가 되다

이미지 출처: 스트리트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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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 당시 홍대는 어땠을까요? 1980년대 중반까지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아지트였던 신촌이 극심한 상업화를 겪으며 장소의 특색을 잃어가고 임대료도 치솟게 되면서, 1990년대 음악은 새로운 아지트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이때 당대 음악인들이 주목한 장소는 신촌과도 가까우면서 큰 목적성을 띠지 않았던 곳, 바로 ‘홍대 앞’이었죠. 이때부터 신촌의 ‘언더’ 그라운드는 홍대의 ‘인디’로 바뀌게 됩니다.

이러한 동향은 1992년 서울의 5대 부도시권 개발과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건이 발생하며 가속화됩니다. 당시 도시 계획의 직접적인 수혜를 받은 신촌 일대는 교통의 중심지로 부상하며 정부의 ‘건전 문화 거리 조성’ 계획을 진행하게 되는데요. 이때 대다수의 라이브 카페들이 업종 전환을 하거나 가까운 홍대 일대로 이동하게 되죠. 해당 정책으로 신촌의 야간 유동 인구가 5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하게 된 와중, 부유층의 젊은 집단을 일컫는 오렌지족이 등장하게 되면서 압구정동이 새로운 소비 공간으로 떠오릅니다. 성수대교는 이런 압구정동과 강북 지역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통로였지만, 1994년 붕괴되면서 이들을 홍대 앞으로 유입시키는 결과를 만들게 된 셈이죠.

한국 최초의 종합 예술 대학인 홍익대학교라는 특수성 또한 홍대 앞 문화를 이끌었던 장본인이기도 했습니다. 1987년 국내 처음으로 예술학과가 설립되며 1990년대 초반 이후 홍대 주변으로 뮤지션 외에 미학, 인문학을 전공한 청년들이 모이기 시작했는데요. 덜 상업화되고, 문화예술의 기운이 담긴 동네로 홍대 앞이 알려지게 되면서 좀 더 자유분방하고 표현을 중시하는 이들이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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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 음악’이란 기존의 상업적인 대중음악과는 달리 독립된 자본으로 스스로 직접 음반을 만들며 음악적 자유가 특징인 장르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불리는 인디 음악은 1990년대 이후 홍대 앞을 중심지로 선보였던 음악을 지칭하는 용도로 쓰였을 만큼 ‘홍대’라는 장소는 한국의 음악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성을 지닌 곳입니다. 강남에서 기획되고 생산되며 여의도 방송가에 의해 매개된 주류 음악인 대중음악에 대비되는, 예술적이고 실험적인 음악이 맞서 생산됐던 발상지였던 것이죠.


홍대 인디 신이 시작하고 저물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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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스파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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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인디 신의 시작은 1995년 첫 라이브 클럽으로 문을 연 ‘드럭’이었습니다. 카페 같은 장소였지만 밴드 연주가 가능했던 공간이 있던 이곳은, 해외 록 밴드 ‘너바나’의 영향으로 국내에도 펑크 록이 유행을 타게 되며 라이브 클럽의 기능을 갖기 시작했는데요. 드럭의 개장 이후 홍대 일대에 많은 라이브 클럽이 생겨나며 이로써 본격적인 한국 인디 신이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1995년 4월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의 1주기 추모 공연이 열리고, 클럽에서 운영되는 자체적인 밴드가 형성되면서 드럭엔 점점 더 많은 인디 뮤지션들이 모여들게 됩니다. 또한 정기적인 공연 체제가 갖춰지며 인디 1세대인 크라잉넛, 노브레인, 언니네 이발관, 델리 스파이스 등이 이곳에서 연주하기 시작했는데요. 앞서 신촌의 ‘언더그라운드 신’은 외국의 원곡을 완벽하게 따라 하는 것이 절대적인 기준이었다면, ‘홍대의 인디’는 직접 만든 곡과 외국의 곡들을 섞어가며 공연한다는 독특한 문화를 지녔습니다. 저마다의 다양한 뮤지션이 등장하면서 자연스레 라이브 클럽도 각 공간마다 재미난 색깔을 나타내기 시작하며 인디 신의 붐을 맞이하게 되죠. 그렇게 첫 인디 음반인 크라잉넛의 [Our Nation]도 드럭을 통해 세상에 등장하게 됩니다.

스트리트 펑크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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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를 앞두고 버블경제가 최고점에 이르던 1996년 5월, 드럭의 주관으로 홍대 앞과 명동 길거리에서 개최된 ‘스트리트 펑크쇼’는 홍대 앞 라이브 클럽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1990년대 후반, 10여 개의 라이브 클럽에서 50-100개가 넘는 밴드가 활발히 공연을 펼쳤는데요. 오늘날에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장기하와 국카스텐을 비롯한 갤럭시 익스프레스, 눈뜨고 코베인 등 다양한 뮤지션이 한국 음악의 새로운 역사를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경제 논리가 그러했듯, 기회의 땅엔 자본이 들어서기 마련입니다. 홍대 앞 역시 인지도와 상업성이 팽창하고, 댄스 클럽의 수도 비례해 늘어나게 되면서 상업 자본의 유입이 가속화되기 시작했는데요. 인디 신으로 채워졌던 동네에 여러 사업체가 몰리며 지가가 상승하기 시작했고, 본래 홍대를 무대로 활동했던 여러 뮤지션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으며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촌에서의 안타까운 둥지 이동이 또 한 번 발생하게 된 셈이죠.

2000년대로 넘어오게 되면서 신인 및 기성 인디 음악가의 부재, 임대료 상승 문제와 대중의 관심이 감소하면서 홍대 앞은 향락의 성지로 치닫는 클럽 거리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만날 수 있는 ‘클럽 거리’인 홍대의 모습이 이때부터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죠.


오늘날 신촌과 홍대의 모습은 ‘음악’적 특징을 예전만큼 띠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동네 곳곳에 그 명맥을 이어오는 오래된 라이브 클럽들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신촌과 홍대엔 현대 음악의 정신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힙한 카페와 즐길 거리가 넘쳐나는 서울의 이 동네에서, 한국의 ‘대중 음악사’에 얽힌 장소를 찾아 나서 보는 건 어떨까요? 동네 곳곳에 얽힌 우리네 대중음악의 역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 당시를 채웠던 뮤지션들의 선율이 온전히 전해져 올 것만 같습니다.


고수연

고수연

누군가의 관점이 담긴 모든 것이 예술이라 믿습니다.
ANTIEGG와 함께 예술을 기록하고, 세상에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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