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아이돌
나쁜 문화일까

일본의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언더돌 문화
독특한 문화로 재탄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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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키하바라의 한 사설 공연장. 짙은 남색 원피스에 고양이귀 머리띠를 한 여성이 무대 위로 오른다. 오늘 단독으로 공연을 펼칠 아이돌 ‘히라기 리오(20)’다. 무대 아래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는 노란색 옷을 입은 팬들이 있다. 그 수는 많게 잡아도 서른 명 안팎. 아이돌 공연이라기보다는 동네 동호회 모임 같다. 대부분 중년 남성들이지만 젊은 여학생들과 미처 드레스코드를 맞추지 못한 와이셔츠 차림의 직장인도 눈에 띈다.

공연이 시작되고, 리오는 ‘아키하바라, 오타쿠의 성지’를 열창한다. 팬들은 열성적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을 춘다. 비록 작은 규모의 공연이지만 리오는 최선을 다해 무대에 임한다. 공연이 끝난 뒤 팬들과 인사하는 시간(Meet&Greet)을 갖는다. 리오는 팬들과 악수를 나누며 근황을 묻고, CD와 굿즈를 판다. 리오는 한 팬이 최근 머리를 자른 걸 알아본다. 아이돌과 팬들 사이의 간격이 얼마나 좁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장면은 2017년 방영된 다큐멘터리 <도쿄 아이돌스>의 일부분이다. 다큐멘터리는 일본의 언더그라운드 아이돌 문화를 조명했다.


언더그라운드 아이돌,
그들은 누구인가?

이미지 출처: Gurashiijapan

언더그라운드 아이돌(언더돌)이란 방송 출연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는 대신, 공연장을 빌려 라이브 공연이나 이벤트를 위주로 활동하는 아이돌을 통칭한다. (언더돌은 ‘지하 아이돌’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어감이 좋지 않아 바꿔 부르는 추세다) 우리나라로 치면 홍대클럽이나 길거리에서 공연하는 인디가수, 래퍼 정도로 볼 수 있다. 정확히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데뷔 조건이 까다롭지 않고 진입장벽이 낮은 탓에 일본에는 이런 언더돌이 굉장히 많다고 한다. 이들 대부분은 콘서트와 음반 판매, 체키(즉석사진) 등을 통해 수익을 낸다. 언더돌의 궁극적인 목표는 많은 인기를 얻어 기획사와 계약을 맺고 아이돌 산업의 중심으로 편입되는 것이다.

일본에서 언더돌이 등장한 배경은 복합적이다. 우선 1980년대 아이돌 황금시대가 끝나면서 방대한 팬덤이 갈 곳을 잃게 되는데, 이들의 수요를 분산 흡수하며 언더돌 팬덤이 성장했다는 분석이 있다. 또 친근함과 접근성을 강조한 차세대 아이돌 모델(AKB48도 데뷔할 당시부터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이란 슬로건을 대대적으로 내걸었다)의 대성공으로 언더돌 문화와 인프라가 폭발적으로 확산한 배경도 있다. 현재는 아이돌 산업 자체 하향세와 코로나19가 맞물리며 어려운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온라인 매체를 통해 수요를 유지해왔기에 열풍이 사그라들지 않을 거라고 보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미지 출처: kimstim

언더돌의 가장 큰 특징은, 아이돌 산업의 중앙 시스템으로부터 분리된 채 독자적인 활동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즉, 다른 아이돌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무한 경쟁에서 자유롭다는 뜻이다. 부담이 낮아진 만큼 자신의 개성을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으며, 이는 언더돌만의 매력을 형성하는 토대가 된다. 팬들과 인간적으로 친밀함을 쌓을 수 있다는 점도 기존 아이돌 문화와 구분되는 지점이다. 다큐멘터리 <도쿄 아이돌스>에는 언더돌이 팬들과 자전거 여행을 떠나거나, 오래 응원해준 팬에게 손편지를 써주는 장면도 나온다. 이런 과정을 통해 팬들은 아이돌의 성장을 직접 돕는다는 효능감과 모성애를 느끼게 되며, 이는 물심양면으로 아이돌을 지원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언더그라운드 아이돌,
성장의 서사

언더그라운드 아이돌 문화에 이질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한국 아이돌 문화와 서사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아이돌은 완성된 상태로 대중 앞에 선보여진다. ‘혜성처럼 등장한’ ‘대형신인’ 등의 수식과 함께 데뷔 무대에 많은 관심이 쏟아진다. 완벽함에 대한 추구는 끝이 없다. 노래와 춤은 물론 비주얼, 인성, 학습능력 등 어디 하나 모자란 게 없는 ‘완성형’ 아이돌의 수는 증가하고 있다. 그만큼 소속 아이돌을 다른 아이돌과 차별화시키기 위한 기획사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하는 등의 홍보는 물론, 아이돌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팬들과의 접촉을 줄여 희소성을 높이는 전략도 그중 하나다. 수요가 유지되고 ‘만나기 어려운’ 이미지가 굳어질수록 가치가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전략들로 인해 아이돌과 팬들간 물리적·심리적 장벽이 형성된다.

이미지 출처: OH! press

반면 일본의 아이돌 문화는 미숙함으로부터의 탈출, 성장의 서사를 중요시한다. 애초에 일본에서 ‘아이돌’이란 용어는 ‘스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를 칭하는 개념으로, 이미 미숙함을 어느 정도 내포하고 있다. 팬들 역시 실력보다는 성공에 대한 열망과 노력하는 자세를 기대한다. 하지만 노력만으로는 당연히 꿈을 이룰 수 없으며, 성공은 팬들의 도움과 운을 필요로 한다. 언더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팬들의 물질적 지원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한국과는 정반대로, 팬들이 아이돌보다 높은 위상을 점유하게 된다. 팬들의 기대와 요구가 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은 언더돌 문화가 잇따른 경제불황으로 자존감이 낮아진 중년 남성들의 지배욕을 해소하며 성장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정리하면 한국 아이돌을 관통하는 건 완벽의 서사이며, 팬들은 아이돌을 추앙하는 존재로 남는다. 반대로 일본 아이돌 문화는 성장의 서사를 선호하며, 그 서사 속에서 팬들은 아이돌을 구원하는 존재가 된다. 과거 순위 조작 논란으로 물의를 빚은 ‘프로듀스 시리즈’는 일본식 성장형 서사를 대대적으로 실험한 무대였다. 결과적으로 프로듀스 시리즈는 큰 인기를 얻었고, 한국에도 그런 서사가 통한다는 걸 증명했다. 이를 기점으로 아이돌이 부족함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형식의 프로그램도 폭증했다. 언더돌 문화를 배양하기에 충분한 환경인 셈이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이미 언더돌로 활동 중인 그룹이 존재한다. 얼마 전 SBS에도 방영된 ‘소공녀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이미지 출처: 스브스뉴스 (캡쳐)

언더그라운드 아이돌,
정말 나쁜 문화인가?

하지만 언더그라운드 아이돌을 향한 시선은 곱지 않다. 다큐멘터리 <도쿄 아이돌스>는 언더돌 문화의 순기능보다는 폐해를 꼬집는 데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각종 매체에서 다뤄진 내용보다 더욱 어두운 면이 있다는 점도 잘 알려져 있다. 언더돌 문화는 ‘나쁜 문화’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을까. 가장 큰 문제는 아이돌을 보호하는 장치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아이돌과 팬들 사이의 장벽이 얇아질수록 범죄에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한 극성 팬이 언더돌을 스토킹해 범죄를 저지르거나, 팬들의 괴롭힘에 시달린 언더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져 사회에 충격을 안기도 했다. 언더돌의 주된 활동인 라이브 공연과 특전회에서도 성추행, 성희롱 등으로 인한 피해 신고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연령 제한이 없어, 정신적으로 미숙한 어린아이들이 데뷔한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다큐멘터리 <도쿄 아이돌스>에서는 열네 살과 열 살의 언더돌 ‘아무’와 ‘유주’의 이야기를 전한다. 물론 가족들도 동의하고 본인도 행복해하지만, 아버지, 할아버지뻘 되는 팬들에게 둘러싸여 악수를 하는 모습은 얼굴을 찌푸리게 만들기 충분하다. 정서발달이 덜 된 어린아이를 언더돌 문화에 노출시키는 게 과연 용인될 수 있을까. 이 같은 문제들에 언더돌 팬덤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부정적으로 변해갔다. 언더돌 문화는 ‘연애와 결혼 시장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혹은 ‘잘못된 욕망을 합법의 경계에서 해소하려는’ 남성들의 장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언더돌 문화도 몇몇 문제점을 개선하면 충분히 매력적인 문화가 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소공녀 프로젝트’ 경우, 형식은 언더돌 문화를 그대로 차용했는데 공연을 보기 위해 모인 이들은 이삼십 대의 젊은 남녀들이었다. 기존 문법에서 벗어난 문화를 찾는 젋은 세대의 수요를 바탕으로 언더돌 문화가 융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 이유다. 다만 선결돼야 할 과제가 있다. 바로 위의 문제들을 해결해 아이돌과 팬 모두 행복한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렵지 않은 문제다. 한국은 이미 수준 높은 아이돌 문화를 갖고 있다. 이미 선진화된 아이돌 관리 시스템을 구축한 한국 기획사들은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아이돌을 보호하고, 부적격한 이들의 데뷔를 막는 방지턱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Pixabay

한국의 아이돌 연습생은 수천 명, 지망생을 합치면 수만 명이라고 한다. 필자 주변에도 연습생이 두 명이나 있다. 훗날 이들을 방송에서 볼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마 0.1%도 안 될 것이다. 안타까운 건 0.1%에 못 들더라도 아이돌이 되기 위해 들인 노력과 희생한 시간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오로지 극소수만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는 한국 아이돌 문화 속에서 너무 많은 청춘이 낭비된다. 5년에서 10년 뒤, 방대한 규모의 연습생들이 경제 활동을 할 연령이 되면 큰 사회 문제로 떠오를 거란 전망도 나온다.

한국에 언더돌 문화가 정착된다면 그런 낭비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연습생들은 응원해주는 팬들을 보며 보람과 성취를 느낄 수 있고, 좋은 퍼포먼스를 통해 데뷔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기획사도 투자 리스크를 줄일 수 있으니 윈윈이라 하겠다. 아이돌 산업에 관한 한, 한국의 인프라는 충분하다. 남은 건 언더돌 문화를 향한 부정적인 인식을 걷어내는 일이다. 그렇게 언더돌을 대중음악의 한 분야로 인정하고 지원한다면 하나의 독특한 문화로 재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언더그라운드 아이돌, 배척해야만 하는 나쁜 문화일까?


현우주

현우주

흑백의 세상에서 회색지대를 찾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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