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회에 살아갑니다. 사회 속에 디자인은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윤택하게 합니다. 그리고 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영역 안에서도 존재감을 내비칩니다. 이 글은 사회의 디자인이 아닌 범위를 좁혀 ‘사회적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사회적 디자인이 두드러지는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와 ‘세월호 사건’ 두 가지 사례를 통해서 디자인이 과연 사회 공동체를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냈는지 살펴보고 담론을 펼쳐보고자 합니다.
‘사회적 디자인’이 무엇인가요?
사회적 디자인은 ‘사회’와 ‘디자인’의 합성어입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사회를 위한’ 즉 ‘사회의 공동체적 가치를 위한 디자인’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습니다. 공동체적 가치란 정치, 경제, 사회적인 복합 요인으로 인해 발생한 부정적인 문제들에 대해 해결을 제안하는 영역입니다. 현대 사회는 그 복잡성과 거대성으로 인해 개인의 차원에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사회적 디자인은 이러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에 대해 발언하며 해결을 제시하는 모든 과정을 일컫습니다. 또한 뚜렷한 당장의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아도 사회의 그런 측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태도와 그 과정, 그 결과물까지 다양한 양태를 포함합니다.
서구에 대표적인 사례중 하나는 윌리엄 모리스의 예술공예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이 있습니다. 예술공예운동은 기계 대량 생산에 대해 비판하고 수공예를 지향하는 19세기에 일어난 문화와 사회적 운동입니다. 그는 디자인을 물건이나 상품의 수준이 아닌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는 요소라고 말했습니다. 즉 환경을 통한 민주적 생활, 예술적 삶을 주장하였고 이를 통해 산업화시대의 열악한 환경을 조명하였습니다.
청계천 을지로 보존 연대의 이야기
한국 사회에서의 디자인은 어떠한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첫번째로 살펴볼 사례는 청계천과 을지로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2018년 청계천 을지로가 재개발 지역으로 아파트 건설을 위해 철거된다는 정책 발표가 전해졌습니다.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재개발을 시행하고자하는 정부의 생각은 청계천 을지로의 일대는 도시, 건축, 생활사적 가치가 있는 곳일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근현대사 녹아있는 지역을 해치려는 발표였습니다.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재개발 소식을 접하고 2019년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결성되었습니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수표도시환경정비사업 등의 이름으로 재개발 될 위기에 처한 청계천-을지로를 지키고자 작년 연말 결성된 예술가, 디자이너, 메이커, 연구자, 시민들의 모임입니다. 가치를 기록하고 알리고 지킬 수 있도록 상인들과 함께 활발히 활동합니다. 이들의 활동중 디자인의 역할이 눈에 띄는 세가지 사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청계천-을지로 재개발 반대 : 포스터 궐기’
우리는 자기 생각과 마음을 글이나 대화가 아닌, 그림이나 그래픽으로 표현하여 전달할 수 있을까요? 디자인하는 행위는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도상을 통해 시각언어로 구현하는 일입니다. 글 쓰는 행위는 이야기를 언어를 통해 구현하는 일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디자인과 글은 분명히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디자인으로써 나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매체로 포스터가 사용되는데요. 포스터가 사회적인 맥락에 닿아있을 때 어떠한 모습일지는 청계천-을지로 재개발 반대 : 포스터 궐기를 통해 엿볼 수 있었습니다. 포스터와 깃발이 빽빽하게 모여있는 사진을 보면 때때로 디자인으로써 목소리를 전달하는 일은 사람에게 더 큰 울림을 전합니다. 빳빳한 팻말과 펄럭이는 천 너머로 시각언어뿐 아니라 몸으로써 언어와 글로서의 언어까지 모든 언어로써 그들의 고군분투를 전하고자 하는 외침이 들립니다.
둘째. 로컬 브랜드 ‘메이드 인 을지로’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을지로를 바탕으로 로컬브랜드 ‘메이드 인 을지로’를 공개합니다. ‘메이드 인 을지로’는 지역을 보존하려는 신념을 실체화하여 내보입니다. 네 가지 디자인으로 선보였는데, 재개발로 인해 몇십 년의 전통과 함께 철거되고만 ‘영진정밀’과 그 외 을지로의 간판 글씨를 본뜬 레터링으로 제작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은 악세사리 배지와 동시에 그들의 입장에 지지와 응원을 보냅니다. 그럼에 있어 배지는 단순한 굿즈 제품이 아닌 사람들 간의 신념을 주고받는 간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을 지니고 있습니다.
셋째. 포럼 ‘도시의 시간과 공간의 기억법’ 및 웹사이트 ‘청계천, 을지로, 산업 유통 생태계’
올해 3월,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청계천과 을지로의 산업유통생태계 및 사회적 자본을 시각화한 웹사이트와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오픈 포럼을 열었습니다. ‘청계천 을지로 일대는 예술가들, 기술자들, 메이커들이 재료를 사고 새 작품을 구상하고 시제품을 만드는 중요한 장소라는 가치를 드러내고자 했다’ 합니다. 그리고 ‘연대의 연구자, 예술가, 아키비스트, 활동가, 과학자, 데이터 디자이너, 지역 상인들이 협업하여 사라질 위험에 처한 이 장소의 공간의 가치를 어떻게 가시화할 것인가 하는 고민에서부터 시작하였다.’라고 말합니다.
특히 이 활동 같은 경우는 웹사이트가 눈에 띕니다. 청계천을지로의 생태계를 고민하고 가치를 정보디자인의 측면, 웹디자인의 측면에서 데이터화하고 웹사이트 형태로 실체화했습니다. 이를 통해 산업 생태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정보를 시각적으로 쉽게 와닿게 풀어냄으로써 공감을 끌어내며, 지도 위로 곳곳으로 움직이는 모션그래픽은 생태계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메세지를 은유적으로 전달합니다. 웹사이트는 복잡하거나 구조화되지 않은 데이터를 시각적으로 표현하여 그 뜻을 명확하고 분명하게 보이게 하는 정보디자인으로써 주제를 확실히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이야기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디자인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보인건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의 디자인 뿐만 아닙니다.
2014년 4월 16일에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아픈 역사가 기록됩니다. 정부의 잘못된 대응과 무력함으로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을 포함한 탑승객 470여 명을 실은 여객선이 진도군 인근 바다에 침몰한 전 국민의 깊은 분노와 안타까움이 깊게 베인 ‘세월호 침몰 사건’입니다.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사건으로 유가족 및 일부 단체가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 힘쓰고 있으며 올바른 법을 제정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건 이후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표명하며 공감했습니다. 그 속에 디자인은 어떠한 형태로 위로와 공감을 드러냈을까요.
첫째. 세월호 참사를 향한 공감과 위로를 담은 디자인 굿즈들
노란 리본, 포스터, 캘리그라피, 달력 등 다양한 상징물 등 다양한 굿즈가 양산되고 배포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전 국민적 고통과 요구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여 공감과 치유를 동시에 끌어냈습니다. 더 나아가 시민들의 지지와 공감의 역할을 내치는 하나의 단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정기적 혹은 비정기적으로 디자인 굿즈, 다큐멘터리, 전시 등 다양한 형태로 사람들의 세월호에 대한 사유와 언어를 내비치고 있습니다. 적극적인 형태로는 디자인 굿즈를 제작하여 클라우드 펀딩을 통해 거두어들인 수익금을 단체에 기부하는 사례들도 나타납니다. 달력을 제작하여 ‘가슴에 새겨야만 하는 어느 날에 대한 기억’을 떠오르게 하고, 가죽 팔찌를 통해 ‘지겹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위로를 전하기도 합니다. 또 4·16 재단에서 0416 생일 달력을 제작하여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생일을 통해 ‘아픔을 기억하자’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 외에 수많은 굿즈가 만들어져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과 전국에 4.16운동을 펼치는 활동가 지원을 위해 도움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두번째. 세월호를 기억하고 그린 디자인
또한 젊은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와 디자이너들은 애도의 마음을 그래픽을 통해 사회에 담담히 내비친 흔적도 보입니다. 그중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 실천은 작업을 통해 ‘모든 삶의 무게는 반드시 같다. 영문도 모른 채 스러져 간 인명은 외면해서는 안 될 또 다른 나의 모습이다. 숭고한 모든 삶이 서로 닿아있음을 바로 보며, 이 모든 비극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길 소원한다.’고 전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디자인을 통해서 추모의 마음을 공유하고 역사의 기록으로 보존하는 일은 지금까지 전해지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디자인으로 관심을 끌며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게 합니다. 그리고 사회적 디자인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심미적 표현들로 어떻게 사회 구성원의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해내고, 그 문제해결을 위한 공공적 역할을 하는가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와 세월호 사건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공동체가 디자인을 통해 사회를 향한 문제점을 시사하고 드러냈다는 점과 디자인의 관점으로 문제를 재해석하고 관심을 촉구하는 점입니다. 이를 통해 ‘사회적 디자인은’ 사회적 문제들을 제시하고 목소리를 표출하는데 커뮤니케이션 역할을 하며 여러 영향력을 불러일으킨다는 점도 엿보입니다.
그럼에 있어 디자인의 영역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디자인은 상업적인 영역에 익숙하지만, 사회적인 영역으로까지 적극적으로 경계를 넓힌다면 어떤 세상이 만들어질까하는 상상을 더 해봅니다. 들여다보면 디자인에 대단한 힘은 없지만, 디자인을 소비하고 행하는 주체인 사람에게서 큰 힘이 있기에, 우리는 이상적인 세상도 충분히 그려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역을 위해 디자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디자인은 할 수 없지만, 사람들의 신념과 용기로 인해 가능합니다.’고 말입니다.
안타깝게도 두 사례는 아직 진행형인 사건입니다. 청계천과 을지로 지대는 재개발 사업이 철회되지 않으며 몇 차례의 철거가 진행되고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또한 세월호 침몰 사건은 그 당시 청와대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드러나야 하지만 꽁꽁 싸 매인 채 7년째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지역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하는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와 세월호 진상규명을 바라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애환은 아직 해결되지 못하고 세상에 남아있습니다. 서서히 꺼져가는 관심 속에 그들의 아픔은 짙어집니다. 그리고 사회적 디자인에는 오늘 제시한 ‘로컬’과 ‘사건’ 분야뿐만 아니라 환경, 소외, 가난, 전쟁, 기아, 환경, 과다 소비, 인종갈등, 지역갈등, 도시 범죄, 청소년 문제, 노인 문제, 복지 등 여러 분야도 끊임없이 야기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디자인’은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고민합니다. 우리가 ‘평등’이라는 수평선 위에 존재하고 개인의 권리가 존중받는 행복한 사회를 꿈꾼다면 이러한 고민에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요.
‘시위에 참여하고 운동에 참여해주세요.’와 같은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을 강요하는 바가 아닙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의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태도와 그 과정, 공감’을 함께하면 어떨까요. 그것 또한 물결을 일으키는 움직임이며 중요한 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선순환이 더 나아가 거대한 파도로 일어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큰 파도가 아픔을 잠재우고 우리가 모두 시원하게 숨을 쉬는 그날이 오길 꿈꾸어봅니다.
- 박지나 오주은 조현신, 사회적 디자인, 누하, 2015
- 월간디자인, 디자인 윤리와 사회적 책임 편
-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포럼2
- 청계천, 을지로, 산업 유통 생태계
- 세월호 아카이브 웹사이트
- 4.16 기억저장소 웹사이트
- 4.16 재단 웹사이트
-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디자인, mdesign.designhouse.co.kr/article/article_view/104/70282?per_page=28&sch_txt=
- 4.16달력 – “기억하라 그리고 살아라”
- 눈먼 자들의 국가 – 그런 배를 탔다는 이유로 죽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http://everyday-practice.com/wop/#1489394258193-bbea2c2e-52e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