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가치를 담은 제품이나 프로젝트는 그 자체의 외적인 아름다움과 분리되어 생각되곤 합니다. 어떤 브랜드는 자신들의 메시지 전달에만 치중한 나머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심미성을 등한시하기도 하죠. 바꾸어 말하자면 심미성을 충족시켰을 때 더 수월하게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셈입니다. 일단 멋지게 만들고 나면, 그 안에 메시지를 넣는 건 어쩌면 쉬운 일일지도요.
에덴파워코프(EDEN power corp)는 스스로를 ‘트로이의 목마’에 빗대는 이상한 브랜드입니다. 여기서 그들이 말한 ‘트로이의 목마’는 이들이 창조하는 패셔너블한 디자인의 의류와 그래픽 디자인입니다. 멋을 찾는 얼리어답터들이 이들의 옷을 소비하고 나면, 옷에 숨어있는 메시지가 역할을 하기 시작하죠. 바로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것입니다. 패션을 자신들의 선전수단이라고 밝힌 이 브랜드는 어떤 철학으로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을까요?
소재 선정에서 생산까지
환경을 생각하는 브랜드 정신
에덴파워코프(EDEN power corp)는 2019년, 아이작 라로즈(Isaac Larose)와 플로렌스 프로벤처 프룩스(Florence Provencher Proulx)에 의해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래픽 디자인을 옷에 얹어보자는 아이디어였죠. 그러나 패션업계에 오랜 시간 몸았던 아이작과 플로렌스는 의류 생산이 산출해내는 환경파괴를 못본 척 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이들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기로 마음 먹는데요. 패션과 그래픽 디자인을 환경 문제를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환경 친화적인 생산방식을 구축하는 겁니다.
에덴파워코프를 그들이 추구하는 메시지로 알게된 사람은 손에 꼽을지도 모릅니다. 그보다는 큼직한 그래픽과 미래지향적인 외양을 한 유틸리티웨어에 눈이 가니까요. 이들이 선보이는 제품들은 특별한 메시지를 떼놓고 보더라도 패셔너블합니다. 브랜드의 목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환경 문제를 알리는 것입니다. 멋있는 옷을 샀는데, 알고보니 파괴된 환경과 지속가능성을 상기시키는 메시지가 들어있던 것이죠.
이들은 재료의 수급에서 생산까지, 옷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서 환경 친화적인 방식을 고수합니다. 재사용된 의류나 삼베(hemp)같은 친환경 섬유를 사용하는가 하면, 와인 찌꺼기, 랍스터, 버섯 등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소재를 활용해 염색을 합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바로 균사체(mycelium)와 버섯을 이용한 제품군인데요. 버섯의 생존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균사체를 길러 만든 벽돌, 와인쿨러, 화분을 비롯해 야생 버섯을 수렵해 만든 인조가죽 모자를 선보였습니다. 세련된 모양새를 갖추고 있어, 누가 말해주지 않는다면 원료를 상상하기 힘듭니다.
SF소설에서 출발한 브랜드 DNA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다
에덴파워코프의 그래픽 디자인은 단순합니다. ‘SOLAR’, ‘GARDEN’ 같은 단어가 힘 있는 타이포그래피로 표현된 것이 대부분입니다. 몰아치는 파도의 두터운 물결을 연상시키는 이 서체는 소설 『듄』의 두 번째 에디션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는데요. 아이작은 자신들의 DNA가 『듄』에 있다고 말합니다.
『반지의 제왕』의 대서사에 비견될 정도로 방대한 세계관을 가진 『듄』은 척박한 모래 행성 ‘아라키스’에서만 얻을 수 있는 ‘스파이스’라는 희소자원을 둘러싼 우주적 세력들의 서사를 다룬 대하소설입니다. 소설을 집필한 프랭크 허버트는 기자 출신으로, 기사를 쓰기 위해 오리건 주의 모래언덕을 조사하게 되는데요. 해당 지역의 모래언덕이 주변 생태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걸 목격하고, 이를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듄』의 세계관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듄』은 환경과 생태학을 다룬 첫 소설로 평가되기도 하죠.
에덴파워코프의 곳곳에서 『듄』의 DNA를 찾을 수 있습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아라키스 행성, 그리고 행성에 거주하는 프레멘 부족의 이름은 각각 가방의 이름으로 사용됐죠. 소설에 등장하는 모래벌레의 모습을 담은 티셔츠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아이작은 『듄』과 에덴파워코프가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며, 해답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환경위기의 심각성을 선전하는 브랜드
두 디렉터는 에덴파워코프라는 브랜드가 자신들의 프로파간다 도구라고 말하며 ‘트로이의 목마’에 빗댑니다. 일단 멋에 이끌려 구매를 하고 나면, 머지않아 그 안에 숨어있는 입체적인 메시지를 발견하게 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라고요. 환경을 되살린다는 거창한 명분이 없어도, 모두가 멋을 추구하며 환경문제를 선전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얼마전 작고한 패션계의 대부, 이세이 미야케의 말처럼 에덴파워코프의 메시지는 그들의 팬이 옷을 착용하는 순간 완성되는 것이죠.
SOLAR(태양 에너지), ACIDIFICATION(해양 산성화), PERMACULTURE(지속 가능한 농업) 등 이들이 티셔츠 위에 얹은 그래픽은 그 자체로 환경문제의 관심을 촉구하는 좋은 선전물이 되어 줍니다. 해양산성화와 그 복원을 주된 문제의식으로 설정한 ‘대양(OCEAN)’ 시즌에서 아이작은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현실적이고 중대하며, 우리는 바다를 복구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위한 작업복을 디자인한다’고 말했는데요. 어쩌면 이것이 에덴파워코프가 유틸리티웨어를 기반으로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우리 모두가 환경문제에 참여하는 작업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매년 1000억 개의 옷이 생산되고, 330억 개의 옷이 버려진다고 합니다. 섬유산업의 환경파괴는 세계 2위 수준이라고요. 이들이 배출하는 탄소는 바다를 산성화 시키고, 생산된 옷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플라스틱 합성섬유는 미세 플라스틱을 배출해 지구상 모든 생물의 체내에 축적되고 있죠. 해양생태계는 이미 엄청난 속도로 파괴되고 있습니다.
철학자 자크 라캉의 말처럼,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들입니다. 타인이 존재하는 한, 우리의 욕망은 끝나지 않을 테죠. 그렇기에 멋이라는 욕망을 원료삼아 나아가는 패션산업의 환경파괴는 막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에덴파워코프는 욕망을 끊어내는 게 아닌, 이용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합니다. 소비를 멈출 수 없다면,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해답을 찾을 것이고, 산업은 성장할 것입니다.